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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이 해운대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다면, 황령산은 광안리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황령산 동쪽에는 광안 대교가 가로지르는 광안 바다, 북쪽으로는 망미동과 연산동, 서쪽으로는 서면과 문현동, 남쪽으로는 대연동. 이렇게 사방으로 시내로 둘러싸인 황령산과 금련산은 도심의 바다에 떠 있는 섬이다.

 

남천동 신협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나서, 이른바 인문학 거리의 입구로 이어지는 KBS홀 울타리를 따라 올라 간다. 예전에는 대통령별장이었던 부산시관사의 담장을 따라 올라가 산길로 접어든다. 구불 구불한 2차선 도로를 따라 차를 타고 황령산 정상인 봉수대 바로 아래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 도로 오른쪽으로는 금련산이요, 왼쪽으로는 황령산이다. 매번 차를 타고 왔던 이 길을 오늘은 걸어서 올라간다. 흙길은 도로와 만났다 헤어졌다 하며 위로 위로 향한다.

 

뒤 돌아 보니 저기 멀리 두개의 나지막한 산봉우리. 이기대 백련사가 자리잡은 동산이다. 작은 산봉우리 아래쪽이 이기대 입구인 동산말, 또는 동생말이라 불리는 곳이다. 두개의 봉우리 오른쪽에는 이기대의 장자산. 그리고 그 너머에는 부산의 상징인 오륙도가 있다.

 

 

금련산 청소년수련원 앞에서 황령산쪽으로 향해 있는 작은 오솔길, 지난 여름 저물녘, 햇살이 비스듬히 파고 들던 숲, 그 숲속으로 향한 작은 길, 매혹적인 여인이 손짓하듯 유혹하던 길. 나는 그 숲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싶었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저녁 무렵의 신비함이 나를 잡아 당겼다. 그런 기억에 사로 잡혀 또 다시 나는 이 길을 향한다. 이 작은 길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내가 가고자하는 바람 고개까지 이어져 있는 길일까? 허...참! 허망하게도 이 길은 산림관리 차량만이 허용된 임도로 연결되어 있었고, 나는 그 길을 따라 다시 청소년 수련원 앞으로 나오고 말았다.

 

청소년 수련원 입구에서 다시 출발이다. 큰 길가로 나 있는 흙길을 밟으며 위로 올라가다 보니, 숲으로 향한 또 다른 길이 열려져 잇다. 그래 이 길이 바로 바람 고개로 향해 있는 그 길, 황령산 등산지도에서 보았던 그 길이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황령산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와 있는 골짜기를 돌아서, 이제 나는 청소년 수련원을 업고 있는 능선이 보이는 건너편에 섰다. 저쪽 산등성이에 스노우캐슬이 보이고, 그 너머로 이기대의 동생말이 보인다. 그리고 용호동의 메트로 시티 아파트도.

 

 

겨울산은 황량한 느낌이 든다. 잎을 다 떨군 휑한 가지 사이로 차가운 겨울 햇살이 거침없이 차가운 대지를 데우는 숲은 무채색 숲이다. 삭막한 숲이다. 그러나 때로는 푸른 소나무 숲도 지나치게 된다. 햇빛이 잘 드는 양지 쪽, 산등성이쪽은 낙엽수 숲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두 산등성이 사이에 끼여 골짜기처럼 급하게 내려 앉아 있는 산 비탈쪽은 소나무군락이 자리잡고 잇다. 양쪽 산 등성이에 가려져 빛을 많이 받지 못하는 숲에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허술한 가지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는 숲은 밝지만 삭막하고, 햇살이 파고들 틈이 없는 소나무 숲은 어두워 보이지만 상쾌한 풍성함이 있다.   

 

 

 

저기 위 능선에 안테나 탑이 있는 곳이 황령산 정상이다. 황령산 정상에서 보면 부산항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어라...이건 또 뭘까? 마치 석기시대의 흔적처럼 보이는 이 곳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운데 평편한 큰 바위, 그 둘레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작은 바위들. 마치 식탁처럼 놓여져 있는 돌들, 이런 모양이 한 두개가 아니다. 열 개는 넘을 듯한데... 한 쪽에 보니 황령쉼터라고 쓰여져 있다. 이 쉼터 옆에는 또한 돌을 쌓아 만든 높이 6미터 이상되는 돌탑이 있는데...

 

 

 

 

태양을 등지고 선 돌 탑,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무슨 종교 기념탑인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알고보니 이 탑의 이름은 황탑이라고 한다. 이 곳은 황령산의 봉수대 아래에 있는 암석지역인데, 무속인들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황탑산우회의 초대회장 김광세님이 직접 주변을 정리하고 돌탑을 조성하고 등산객을 위한 쉼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근 일년 가까이, 아니 일년이 넘게 걸렸는지도 모른다. 혼자 힘으로 이런 곳을 조성했다니 대단한 정성이다.

 

 

 

 

저기 사자바위.

 

 

 

바람고개 다가가면서 아주 인상적인 숲을 지난다. 인공조림된 편백나무 숲. 멀리서 보니 편백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쭉쭉 뻗어 있다. 어두컴컴한 숲 속. 울창한 숲속에 햇빛이 비쳐들 틈이 없다.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음기가 가득한 숲처럼 느껴진다. 차가운 겨울에 햇빛도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숲. 몸이 으슬 으슬 떨린다. 여름이면 정말 시원한 숲일텐데...

 

 

 

편백나무 숲을 지나자 곧 바람고개이다. 바람고개 등산 안내 지도 앞에 한참동안 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어떤 길이며, 황령산에는 어떻게 길이 나 있는지 살펴본다.

금련산 청소년수련원 옆을 지나가는 초록색길이 정상으로 나 있는 도로이고, 노란색 길이 차량통행이 제한된 임도인 듯하다. 내가 걸은 숲 길은 이 두 길 사이에 있는 분홍색 길이다. 

 

길과 방향을 파악한 후 갈미산 쪽으로 하여 남구 도서관쪽으로 내려온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 도서관에 들린다. 신협도서관에 책을 반납한 후 산행, 그리고 산을 내려 와서 다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 아주 보람있는 산행이다.

 

 

2015-11-22

 

가을이 갑니다

기어이 가을이 떠나갑니다

 

제 새끼 버려두고

제 새끼 나뒹구는 꼴을 내버려두고

가을은 떠나가고 있습니다.

 

미워서 미워서

머리 끄댕이를 잡아 당기고 싶지만

가는 마음도 편치만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가야만 하는 길인 것을

 

 

가는 가을 끝자락이라도 붙잡아 보려고 장산에 올랐다. 부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산의 동쪽 하늘 아래 누워있는 장산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북풍으로부터 해운대를 지켜주고 있는 장산은 해발고도 634m로 부산에서 세번째로 높은 산이다. 장산에서 서쪽으로 쳐다보면 부산에서 가장 높은 금정산(802m)의 줄기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남쪽으로 바라보면 광안대교를 마주하고 있는 금련산이 광안리 바다쪽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다.

 

장산 기슭에서 200~250m에 이르는 고도에 이르기까지 장산 자락을 타고 올라 앉은 재송동의 아파트 단지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조성된 아파트라 한다. 재송동 상단에 자리잡은 글로리 아파트 부근에 차를 세워놓고, 거기서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장산 정상에 이르는 가장 짧은 등산로를 타는 것이다. 그 길이 좀 가파르기는 하다. 우리는 가파른 길보다는 허리로 둘러가는 길을 선택하여 걷는다.

 

장산은 돌이 많은 산이다. 등산로 초입부터 돌로 만들어진 길이 놓여있다. 

 

 

많은 돌들이 깔려 있는 산비탈을 너덜겅 또는 너덜이라고 하는데, 장산에는 이런 돌무더기들이 흘러내리듯이 형성된 너덜지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긴 것은 300m정도의 흘러내린 것도 있으며, 너비는 30~40m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런 너덜지대를 처음 보면 꽤 인상적이다. 이번에 통과한 너덜지대는 비교적 작은 너덜겅인 듯 한데, 아마도 너비는 20m, 길이는 100m쯤 될 듯하다.

 

너덜겅을 가로 지르니 옛생각이 난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있을 때.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를 손에 쥐고 뒷산이었던 장산을 올랐던 때. 그 때 처음 장산을 올랐었다. 멀리서만 보았던 너덜지대. 그 가운데 내가 있었다. 그 때의 강렬한 인상. 당시의 일기를 들추어보니,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고민 끝에 선택된 표현이 '돌의 나라', 사방에 거대한 돌들이 경사지를 흘러내리는 듯한 광경에 꽤 놀랐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난 니나를 사랑한 의사 슈타인이었다. 슈타인이 생의 한 가운데 서 있었던 것처럼 난 너덜겅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너덜겅을 따라 올라가는 등산로도 있는 것 같았지만, 아내와 딸을 위해 편한 길을 간다. 장산의 숲에도 가을은 깊어가고 있었다. 아니 떠나가고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널찍한 임도에 이르게 된다. 재송동 옥천사에서 우동 성불사까지 시원스레 연결된 임도. 우리는 우동 성불사쪽으로 내려간다. 이제 우리는 산 등성이를 지나 장산의 동쪽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아마도 장산의 남동쪽 끝자락 부근을 둘러가는 둘레길로 접어든 것이다. 성불사를 지나 우동 We've 아파트 쪽으로 내려와서 삼환 아파트를 가로 질러 홈플러스까지 내려오니 산행시간은 1시간여정도. 아주 심플한(?) 산행이었다.

 

홈플러스 부근에서 딸아이와 함께 마카롱을 먹고 집사람과 커피를 마신 후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며 기다리라고 한다. 나는 마을 버스를 타고 재송동 종점으로 가서 차를 회수해 온다. 원점으로 귀환하는 산길이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 산행의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아쉬운 느낌이 든다. 혼자 걸으면 나 가고 싶은 길을 마음대로 갈 수 있었을텐데. 정상쪽으로 올라가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 걸었다는 데 의미를 두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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