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0일


장산에서 길을 잃었다. 


이 번 산행의 목적은 장산 정상에서 장산동국아파트까지 내려오는 최단길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내려가는 길은 성불사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봉전망대를 거쳐 성불사 위 약수터에서 성불사쪽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이 길이 애매하다. 길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일까? 아니면 내가 길을 잘못 접어든 것일까? 너덜을 따라 가는 길은 그 흔적이 애매하다.


결국 너덜길에서 성불사 내려가다가 길을 잃었다. 길 위에서 길을 잃은 것이라면 걱정도 않겠지만, 이건 숫제 길 자체가 없음에야 초보 산행인에겐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길이 아닌 숲 속에는 거미가 사방에 거미줄을 쳐 놓았고, 가시 돋힌 망게 덩굴은 성긴 나무가지 사이에 실타래처럼 얽혀있었다.  
 
발 밑에서는 썩은 나무가 우지끈 부러지고, 돌 위에 내디딘 발은 미끄러지고, 풀위에 디딘 발은 움푹 풀섶속에 빠져들었다. 눈 앞에 길은 흔적도 없고 되돌아가려 몸을 돌려도 길이 없다. 
 
살다보면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길은 사라지고 어찌 해야할 지 앞이 캄캄할 때가 있다.
 
길이 없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숨 막히며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 
 
(고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이 없을 땐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는 희망이 필요하다. 절망에서 벗어날 유일한 출구는 한줄기 빛과 같은 희망이다. 희망이 없다면 인내는 무슨 소용이랴? 
 
'아픔을 이겨내는 건...희망을 기억하는 것이다.'
"희망 가운데 기뻐하십시오. 환란 중에 인내하십시오" (로마12:12)  
 
길을 잃었으나 깊은 산속이 아니니 어떻게든 조금만 내려가면 된다는 사실에 그나마 마음 한 편을 다독거렸다.   
 
게다가 산에서 길을 잃으면 개울을 따라 내려가면 인가에 이른다는 말이 생각났다. 물길따라 젖은 바위를 조심조심 내디디며 내려가다 성불사에 이르렀다. 온 몸이 땀으로 후줄근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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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La La Land

LA LA Land

LA LA LA and...


LA(로스엔젤레스)에서 꿈을 쫓는 두 젊은 남녀의 이야기


남자의 꿈은 자신의 재즈바를 가지는 것이다. 거기에서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재즈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하지만 LA에서 재즈피아노를 연주하며 돈을 벌어 자신의 재즈 바를 가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활해 나가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현실은 남자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장르의 음악을 하도록 끊임없이 밀어붙인다. 


여자는 LA의 헐리우드에 입성하고 싶은 배우 지망생이다. 고향을 떠나 온 지 여러해가 되었지만 번번히 오디션에서 떨어진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그녀는 계속 이러한 생활을 해야 하는지 고민스럽다. 


그러다 어느날 우연히 여자는 레스토랑에서 남자가 연주하는 피아노를 듣고 호감을 느낀다.

서로의 호감이 점점 사랑으로 발전하게 되고, 여자와 함께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픈 남자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려한다.


.....


.....


그리고 마지막 반전. 


지인중 한 사람은 집에서 잠자리에 들 때, 당시에는 뜬금 없이 느꼈던 그 마지막 장면이 뒤 늦게 생각나서 먹먹해지는 가슴을 안고 잠들었다고 ...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가 이 바로 이 마지막 장면에 압축되어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산다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의미한다.


La La Land 를 보고나서 우연히 이 감독 전작 '위플래시'가 겹쳐져 보였다.

이 영화는 가능성이 있는 드럼연주자를 극한까지 밀어붙여, 마치 채찍을 휘둘러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흘리며 분투하도록 밀어붙여 그 잠재력을 폭발시키도록 하는 한 지휘자의 이야기이다. 이 지휘자의 조련을 견디다 못해 정신병을 앓고, 때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그 드럼연주자는 극한을 이겨내고 잠재력을 폭발시킨다.


현실에 안주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절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앞으로 밀고 나아가도록 하는 강력한 힘이다. 사랑한다면 꿈을 쫓도록,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야한다. 이렇게 본다면 La La Land는 제2의 위플래쉬인 셈이다.


LA LA LA ...nd 세 개의 꿈 그리고...나의 꿈이란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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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에게로 곧장 가고자 하나

길은 무심하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풀꽃

솔나무

너의 모습이 보인다


달빛 내린 길

그리움을 밟으며 너에게로 가는 길위에

걸음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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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는다. 그 속에 어렴풋한 풍경이 떠 오른다. 기억속에 남은 사진은  내가 찍은 사진의 풍경과 그대로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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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골 장대 - 청소년 수련원 - 구름고개산장 - 금련산 헬기장 - 금련사 - 도시고속도로 굴다리

2시간 반...


산 길을 걷는다. 사방에 온통 호흡하는 존재가 지천이다. 땅 속에 뿌리를 박은 채 싹을 낸 이후로 지금껏 한 자리에서 평생을 보낸 존재들. 사월 중순의 신록에 햇빛이 비치니 밝은 초록이 바람에 펄렁거리며 부드럽게 펼쳐지는데, 한 가지로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 보면 잎 모양이 서로 달라 수많은 개체들이 엉겨 있음을 알게된다. 이 모든 풀들은 제 이름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이름을 모르는 나는 그 개별성을 인지하지도 못한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존재의 확인이며, 다시 만남의 기반이다.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존재에 이름을 붙일 수는 없지 않는가? 존재를 인지하여 이름을 붙여 다른 것과 구별할 수 있다면, 이후에라도 다시 만났을 때 이름을 불러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다시 만남을 인지하는 것이다. 나는 이 풀들을 다시 만나고 싶으나, 수 많은 풀들을 구별하는 것 조차 힘들다.


개별적으로 보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보이는 이 사태에 예외가 되는 것은 꽃이다. 분명히 구별되는 도드라진 색으로 꽃은 잎사귀와는 다르다. 연분홍 진달래는 숨어 있지만, 주위의 초록빛속에 숨어 있다. 숨어 있는 초록을 찾기는 힘들어도 연분홍 진달래는 숨어 있지만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꽃은 다시 눈길을 잡아 당긴다.


진달래는 왜 숨어 있는가? 사실은 숨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달래는 군락을 이루지 않을 뿐이다. 하나의 개체에서도 꽃은 군락을 이루지 않고 개별적으로 핀다. 한 가지에 진달래 한 꽃, 게다가 진달래는 수줍게 홀로 핀다. 철쭉은 군락을 이루어 철쭉제니 뭐니 하지만, 진달래제란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드넓은 숲 속에 여기에 하나, 저기에 하나, 이 가까이에 한 두개, 저 멀리 하나, 이렇게 개별적으로 피다 보니 숨어 핀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닌가? 진달래의 소박한 색도 그렇다. 철쭉은 진한 분홍으로 자랑하지만 진달래는 연분홍으로 수줍다. 숲 속에서 도드라지기 보다는 숲 속에 스며 있는 진달래다 보니 마치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연인같다.


산을 오르다 시야가 툭 트인 곳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저 아래에 보여야할 수평선이 훌쩍 키가 커져서 내 눈 높이에까지 올라와 있다. 높이 오를 수록 수평선은 높아진다. 사람의 꿈도 자꾸 커지는 걸까?


청소년 수련원 운동장이 저 위다. 나무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난다. 아이들은 꽃을 보기보다는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넘치는 힘을 발산하려면 저렇게 소리치고 뛰어야 하리라. 하지만 인생의 저녁에 접어들면 힘을 발산하기 보다는 힘을 아껴야 한다. 뛰어다니고 소리치는 것 보다는 느긋하게 바라볼 뿐이다. 꽃은 적극적인 행동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관조의 대상이다. 그래서 아마 나이가 들면 꽃이 좋아지나 보다.


키가 작아 땅 가까이 낮은 곳에 핀 보라색 꽃에 흙이 묻어 있다. 어제 밤 비 방울에 튄 흙이 묻었나 보다. 숲을 흔드는 바람은 땅 가까이에서는 약해지겠지만, 그래도 꽃잎을 조금이나마 흔들어 대겠지. 질량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존재하는 잡아당기는 힘, 중력은 어김없이 흙을 지면으로 잡아 당긴다. 좌우로 흔드는 힘과 아래로 잡아당기는 힘은 결국 흙을 꽃잎으로부터 분리해 내고 땅에 떨어지게 하리라. 그리고 결국은 꽃도 떨어진다. 꽃에 묻어 있는 흙은 꽃에 동화되지 못하고, 표면에서만 잠시 어울리다가 결국 헤어진다. 꽃은 본체인 듯 하나, 그 역시 줄기로부터 떨어진다. 꽃은 본체가 아니었다. 단지 생식의 계절에 생식을 목적으로 피어나 아름다움을 흘리다가 떨어져 버리는 수단인 것을, 그러면 본체는 뿌리? 줄기? 풀은, 나무는 그 무엇을 위해 뿌리를 내리고 물과 양분을 빨아 당기는가? 풀은, 나무는 그 무엇을 위해 초록 엽록체로 빛을 받아들이고 물과 양분을 사용하여 열매를 만들어 내는가? 본체는 생명이로구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갈 때, 이마와 등줄기에는 땀이 축축하고, 허파는 가쁜 숨을 몰아쉰다. 이럴 때는 생각할 여유가 없다. 아무 생각이 없다. 단지 오르는 일에만 모든 것이 집중될 뿐, 인생의 힘든 여정에서도 아마 그럴 것이다. 생각할 시간이나 여유가 있다는 것은 오히려 사치이다. 먹고 사는 것이 바쁜 사람에게는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이다. 하지만 그런 사치를 즐기고 싶다. 생각하며 살고 싶다. 왜 내가 살고 있는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행복한가?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일까?


인공적으로 숲을 조성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표식이 있을까?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는 것이 그 표식중 하나이다. 또한 단일 수종이 자라고 있다는 것도 그렇다. 자연적으로 조성된 숲은 제 마음대로 자라난다. 얼키설키 얽혀져 있기도 하다. 불균질은 자연의 표식이라면 균질은 인공의 표시이다.


내려오는 길이 더 험하다. 아래로 잡아 당기는 힘에 완전히 자신을 맡겨서는 안된다. 어느정도 그 힘에 반발하며 움직임을 통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넘어지고 미끄러질 수 밖에 없다. 내려오는 길에 작용하는 힘...내려오는 길은 통제가 어렵다. 오르고 내리는 길보다는 가파르지 않은 둘레길이 좋다. 오늘도 나는 정상을 외면해 버리고 만다. 정상을 버리고 둘레를 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그렇다. 정상을 노크하기보다는 둘러간다. 정상으로 향한 가파른 길보다는 멋지게 숲속으로 난 오솔길을 걷는다. 중력이 잡아당기는 힘을 극복하는 길보다는 중력을 즐기며 걷는 길이 좋다. 이것도 내 인생인 것을 누가 뭐라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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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비 내려 꽃잎을 두드린다

꽃 몽우리를 두드리며

'계세요'하던 두드림이

이제는 마구 꽃잎을 두들겨

이별하게 만든다.


봄 비 내려 꽃잎을 씻긴다

꽃 몽우리 씻기면서

빨라 나오라하더니

이제는 꽃잎위에 앉은 먼지를

이별하게 만든다.


봄 비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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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과 암술을 아울러 꽃술이라 그러지.

꽃술의 아름다움은 단지 그 색상과 형태에만 있는 건 아니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꽃술의 힘이 아름다움이다.   


꽃잎의 아름다움도 그렇다.


어린 꽃술이 자라날 때에 꽃잎은 어린 꽃술을 감아 보호한다. 

때가 되어야 꽃잎이 벌어진다. 벌과 나비가 찾아들고 생명은 잉태된다.

꽃잎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생명의 태동을 듣는다. 


꽃잎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 목련이다. 

꽃술을 감싸고 있는 꽃 봉우리가 가장 아름답다. 


제 할 일을 다한 목련꽃잎은 느긋하게 활짝 늘어져 있다.    

꽃술을 떠나 땅에 널브러진 꽃잎에는 누런 검버섯이 피어있다.   

세월속에 주름진 얼굴이 그 속에 보인다. 


아직 피지 않는 꽃봉우리의 꽃잎이 가장 진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

뜨거운 찻잔속 물 위에 꽃잎 띄우고 기다리면 피어나는 하얀 물안개속에 목련향이 사르르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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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15분 남짓 걷는 길이지만 봄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이 길에서는 산수유나무, 매화나무, 동백나무, 벚꽃나무, 목련나무를 만날 수 있다. 날마다 죽어 있던 것 같은 나무가지에 꽃망울이 조금씩 올라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봄을 즐기는 나의 방식이다. 


올 봄 이 길을 걸으며 보게 된 바로는 동백꽃이 가장 먼저 첫 꽃을 피웠다. 매화가 가장 먼저 피는 꽃이 아닐까들 생각하겠지만, 최소한 내가 날마다 걷는 이 길에서 나의 두 눈으로 본 바는 그와는 달랐다.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동백나무에는 아직 피지 못한 꽃 몽우리가 있을 뿐이지만 양지 바른 곳에서는 이미 몇 일 전부터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 동백나무의 두툼한잎은 갑옷 비늘처럼 번득이며 겨울의 찬 바람 맞으며 동백나무를 지켜왔다. 동백나무 잎은 겨울을 이긴 승장의 도도함이 있다. 하지만 봄이 오면 동백꽃이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한다. 봄 기운이 살랑이면 동백나무 가지 끝에는 마치 준비나 하고 있었던 것처럼 조그만 연두색 몽우리가 부풀어 오른다. 봄 바람이 몽우리를 흔들면 몽우리 끝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다. 봄 볕이 따사로워지면 꽃잎이 조금씩 벌어지면서 불그스레 짙어져 간다. 붉은 빛이 짙어지면 온통 시선은 붉은 꽃에게로 모인다. 조명이 오롯이 무대의 주인공을 비치면 주인공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듯, 오로지 동백나무에는 붉은 꽃만 있는 듯 느껴진다. 밤을 지배하는 것은 까만 밤하늘이다. 그러나 그 밤하늘을 지배하는 것은 밤하늘에 총총히 박히 별들이다. 금모래를 뿌려놓은 듯 희뿌옇게 빛나는 별은 밤하늘의 주인공이요, 까만 밤하늘은 다만 배경일 따름이다. 동백꽃이 피는 그 때부터 동백나무는 새 신부를 위한 들러리요, 주인공을 위한 배경일 뿐이다.



매실이 매화나무의 열매라고? 정말? 그러고 보니 매실이란 매화나무 열매라는 뜻이 아니던가? 매화꽃은 동백꽃이 나올 즈음에 서로 앞서거니 뒤서니니 하며 거의 같이 피어난다. 화무십일홍이라고 꽃이 핀들 한 때이지만, 그래도 매화꽃은 동백꽃 보다 쉬이 진다. 강인해 보이는 동백꽃과는 달리 매화꽃은 섬세한 만큼 연약해 보인다. 부드러운 봄 바람에 매화향처럼 매화 꽃잎은 하늘거리며 떨어진다. 막 피어난 그 어린 꽃잎의 앙징맞은 모습이란...규중 처녀가 대문밖에 발을 내딛는 듯 하다.  


산수유. 매화꽃이 하나 둘 피어나면 그 때에 산수유 나무도 꽃 몽우리를 내민다. 끝에 노란 빛이 감돌다 어느새 피어나는 산수유. 산수유 꽃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봄 햇살에 선연한 노란빛깔은 마음 속에 봄 바람을 가득 불어 넣는다. 


한 켠에서는 솜털 가득한 목련 몽우리가 부지기수로 나무 끝에 매달려 있다. 우유빛 목편꽃이 피어난다. 꽃들도 피는 순서가 있나 보다. 동백, 매화, 산수유, 목련...산수유와 목련은 같이 올라 오는 것 같기도 하다. 동백와 매화도 어울려 피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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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잘 드는 창가에 앉으니

얼굴 가득 햇살이 내려 앉는다

스르르 눈을 감는다. 


눈꺼풀 속 세상엔

주홍 바다가 너울거린다

분홍 안개 구름이 일어난다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나른하게 내려앉는 하느님의 선물


잠결 세상 속

햇살 가득한 봄 꽃 만발한 사이엔

봄의 여인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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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길. 

걸어가는 길 곳곳에 이런 저런 나무들을 본다.


산수유나무.

가지 끝에 조그만 산수유 꽃봉우리

노란 꽃잎 꽃 봉우리에 어린다.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어린 꽃잎


벚나무

아직 벚꽃은 


동백나무

동백꽃은 붉은 피를 토하는 놈들이 꽤 있다. 

아직 열리지 않은 봉우리를

밀어내느라 머리가 분홍으로 변한

봉우리도 수두룩하다.


엄마 배속에 잠들어 있던 아이가

머리를 디밀며 세상으로 나오듯이

꽃잎들도 머리를 디밀고 있다. 

생명의 탄생은 소란스럽다.


매화, 하얀 매화.

어제 드문 드문 달려 있던 어린 매화,

오늘 화사한 매화꽃들이 풍성하다.

하얀 머리 꼭지를 보이며 아우성치는

새끼 매화들도 하얗다. 


봄은 남쪽에서 온다.

봄은 바람타고 온다.

봄은 땅 밑에서 솟아난다.

나무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봉우리로

땅에서 솟아나는 봄의 출구는 봉우리이다. 

봄은 꽃잎을 밖으로 밀어 낸다.

봄은 봉우리 속에 잠자고 있는 어린 꽃잎을 밀어댄다.


봄은 아우성이다.

여기서도 아우성, 저기서도 아우성

바깥 세상으로 아우성치는 꽃잎들의 아우성으로

봄은 소란스럽다,


여기서는 동백꽃 봉우리가 펑

저기서는 매화꽃 봉우리가 펑,

산수유 봉우리도 펑

아직은 여린 소리이지만

곧 소란스러운 소리가 난리를 치겠지.


윙윙대던 겨울 바람 수그러들고

화사한 봄 바람이 불어드니

땅에서 솟아나는 봄

하늘에서 내려오는 봄

서로 만나 이야기 꽃을 피운다.


두런 두런, 수근 수근거리는 봄의 소리가

온 마을에 가득하다.

들어보자.

맑은 눈으로 들어 보자.

꽃들이 태어나 울어대는 소리를 보자.

꽃봉우리들이 불꽃처럼 터지는 소리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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