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어른을 위한 동화 느낌? 인생의 여명기에 읽어야 할 책이기는 하겠지만, 여전히 인생의 황혼녘에도 유효한 이야기가 아닐런지. 산티아고라는 한 양치기 청년이 꿈을 찾아 기나긴 여행을 하면서 여러가지 가르침을 얻고 마침내 꿈을 이룬다는 상투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코엘료는 신비주의적인 감성과 성경과의 만남을 통해, 신비주의를 인생의 스승으로 승화시키는 동시에 성경을 신비주의에 동화시키는 연금술을 선보인다.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드러나 있는 신비주의는 서양의 합리적 과학이나 이성적 철학과는 궤도를 달리하고 있다.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세계, 마음과 우주의 합일을 통한 '자아의 신화'를 이룬다는 개념은 도저히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세계는 아니다. 합리, 이성에 기초를 세계는 보편 타당한 세계로서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세계이다. 그러나 코엘료가 <연금술사>에서 다루고 있는 세계는 그와는 다르다. 오롯이 그것을 느끼는 개개인만이 사적인 경험의 세계이다. 경험한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는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온 우주와 합일의 순간을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살렘의 왕 멜기세덱이라고 주장하는 한 노인이 산티아고에게 말한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48쪽)

 

자아의 신화란 무엇인가? 아마도 산티아고가 꿈 꾸었던 것, 그가 찾고자 했던 보물이 자아의 신화가 아닐까? 코엘료가 <연금술사>를 통해 독자의 마음속에 심어주려 했던 것은 '꿈을 쫓는 일을 그만 두지 말라. 계속 그것을 추구하는 한 온 만물은 당신이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줄 것이다.' 아마 이런 말이 아니었을까? 연금술사가 평범한 납을 가지고 금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우리네 평범한 인생도 금과 같은 인생, 자아의 신화를 완성한 인생, 꿈을 이룬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게다.

 

만약 자아의 신화를 향해 나아가지만 마지막까지 그 곳에 도달하지 못한 인생은 어떠할 건가? 코엘료는 그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은, 제자리에 안주해 있는 사람이 결코 알 수 없는 다양한 경험, 가르침,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거라고...꿈을 이루지 못한 인생도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나름대로의 성공한 인생이라고...

 

이러한 인생을 가능하려면 먼저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마태6:22) 마음의 보물을 깨달았다면 '행동'해야 한다. 왜 평범한 산티아고가 살렘왕 멜기세덱의 선택을 받아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한 이른바 계시란 것을 얻게 되었을까? 왜 그는 사막의 오아시스의 연금술사를 만나 자아의 신화를 이룰 수 있는 가르침을 얻게 되었을까? 그는 애초에 꿈과 관련해서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꿈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이었다. 부모는 산티아고가 신부가 되기를 원했지만 산티아고는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 꿈을 위해 아버지를 설득시켜 안달루시아 지역을 돌아다니는 양치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산티아고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던 것이다.

 

꿈은 행동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연금술사>의 막바지에 이르러 산티아고가 드디어 꿈에서 보았던 피라미드가 보이는 언덕에서 만난 병사는 산티아고와는 달랐다. 산티아고는 꿈을 찾아 스페인에서 바다를 건너, 사막을 건너, 그리고 운명적인 사랑도 사막의 오아시스에 남겨놓은 채, 이집트의 피라미드까지 왔지만, 그 병사는 산티아고와 동일한 꿈을 꾸었지만 결코 사막을 건너는 바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 병사가 꿈을 좇아 사막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 스페인의 어느 평원에 있는, 양치기가 양떼를 몰고 와서 종종 잠을 자던 곳, 다 쓰러져 가는 교회에 찾아와 교회앞의 무화과 나무 아래를 파보았더라면 보물을 차지할 수 있었을 터인데...

 

 

<연금술사>의 초중반부의 안개처럼 희뿌엿게 보이지 않던 점들이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이해되는 것은 작가의 치밀성때문이리라. 다만 산티아고가 찾은 자아의 신화, 즉 꿈이 단순한 물질적 보물이었다는 것이 슬프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인 자아의 신화가 물질적 보물이었다니...차라리 이것은 하나의 은유로 받아들이고 싶다. 사실 <연금술사>에 나오는 왕, 집시여인, 영국인, 연금술사등도 모두 은유가 아니었던가? 그래도 나는 허무한 생각이 든다. 자아의 신화가 그것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울로 코엘료는 언어의 연금술사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다음의 나르시스(나르키소스)이야기는 코엘료의 작품인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인가?

 

호수는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제 그럴 수 없잖아요."

 

"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 

연금술사는 감탄을 터뜨렸다.  (14~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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