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2

 

가을이 갑니다

기어이 가을이 떠나갑니다

 

제 새끼 버려두고

제 새끼 나뒹구는 꼴을 내버려두고

가을은 떠나가고 있습니다.

 

미워서 미워서

머리 끄댕이를 잡아 당기고 싶지만

가는 마음도 편치만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가야만 하는 길인 것을

 

 

가는 가을 끝자락이라도 붙잡아 보려고 장산에 올랐다. 부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산의 동쪽 하늘 아래 누워있는 장산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북풍으로부터 해운대를 지켜주고 있는 장산은 해발고도 634m로 부산에서 세번째로 높은 산이다. 장산에서 서쪽으로 쳐다보면 부산에서 가장 높은 금정산(802m)의 줄기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남쪽으로 바라보면 광안대교를 마주하고 있는 금련산이 광안리 바다쪽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다.

 

장산 기슭에서 200~250m에 이르는 고도에 이르기까지 장산 자락을 타고 올라 앉은 재송동의 아파트 단지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조성된 아파트라 한다. 재송동 상단에 자리잡은 글로리 아파트 부근에 차를 세워놓고, 거기서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장산 정상에 이르는 가장 짧은 등산로를 타는 것이다. 그 길이 좀 가파르기는 하다. 우리는 가파른 길보다는 허리로 둘러가는 길을 선택하여 걷는다.

 

장산은 돌이 많은 산이다. 등산로 초입부터 돌로 만들어진 길이 놓여있다. 

 

 

많은 돌들이 깔려 있는 산비탈을 너덜겅 또는 너덜이라고 하는데, 장산에는 이런 돌무더기들이 흘러내리듯이 형성된 너덜지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긴 것은 300m정도의 흘러내린 것도 있으며, 너비는 30~40m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런 너덜지대를 처음 보면 꽤 인상적이다. 이번에 통과한 너덜지대는 비교적 작은 너덜겅인 듯 한데, 아마도 너비는 20m, 길이는 100m쯤 될 듯하다.

 

너덜겅을 가로 지르니 옛생각이 난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있을 때.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를 손에 쥐고 뒷산이었던 장산을 올랐던 때. 그 때 처음 장산을 올랐었다. 멀리서만 보았던 너덜지대. 그 가운데 내가 있었다. 그 때의 강렬한 인상. 당시의 일기를 들추어보니,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고민 끝에 선택된 표현이 '돌의 나라', 사방에 거대한 돌들이 경사지를 흘러내리는 듯한 광경에 꽤 놀랐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난 니나를 사랑한 의사 슈타인이었다. 슈타인이 생의 한 가운데 서 있었던 것처럼 난 너덜겅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너덜겅을 따라 올라가는 등산로도 있는 것 같았지만, 아내와 딸을 위해 편한 길을 간다. 장산의 숲에도 가을은 깊어가고 있었다. 아니 떠나가고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널찍한 임도에 이르게 된다. 재송동 옥천사에서 우동 성불사까지 시원스레 연결된 임도. 우리는 우동 성불사쪽으로 내려간다. 이제 우리는 산 등성이를 지나 장산의 동쪽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아마도 장산의 남동쪽 끝자락 부근을 둘러가는 둘레길로 접어든 것이다. 성불사를 지나 우동 We've 아파트 쪽으로 내려와서 삼환 아파트를 가로 질러 홈플러스까지 내려오니 산행시간은 1시간여정도. 아주 심플한(?) 산행이었다.

 

홈플러스 부근에서 딸아이와 함께 마카롱을 먹고 집사람과 커피를 마신 후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며 기다리라고 한다. 나는 마을 버스를 타고 재송동 종점으로 가서 차를 회수해 온다. 원점으로 귀환하는 산길이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 산행의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아쉬운 느낌이 든다. 혼자 걸으면 나 가고 싶은 길을 마음대로 갈 수 있었을텐데. 정상쪽으로 올라가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 걸었다는 데 의미를 두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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