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읽다 /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대략 비슷한 시기에 벚꽃이 동시에 피어나듯, 피서 인파도 그렇게 개미떼처럼 몰려드는 바람에 유명한 여름 관광지는 발디딜 틈 없이 붐빈다.  휴가란 차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바가지에 치이고...이렇게 사서 고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이런 고생을 사서 하더라도 남들 다 가는 휴가철에 집에 남아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보따리를 들쳐매고 고난의 길을 떠나는데, 차라리 가까운 조용한 곳을 찾는 것은 어떨까?

 

휴가 첫째날은 집 앞에 있는 광안리 바닷가에서 한나절을 물놀이하며 보냈다. 둘째날은 가까운 황령산 기슭게 있는 수영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논어를 읽다." 논어를 읽고 그 행간을 읽어내는 서로 다른 독법이 있다. 공자를 성인으로 우르러 보며 공자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심오한 진리가 담겨 있는 듯이 그 의미를 읽어내려고 하는 것이 그 한 편이라면, 또 다른 편에는 공자도 농담도 하고 실수도 하는 한 인간으로서 바라 보며 그러한 맥락에서 논어를 읽는 방법도 있다. 양자오는 "논어를 읽다."에서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주기 위해 애쓴다. 공자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제자인 자로는 때로는 공자의 잘못을 지적하며 화를 내기도 하고 대어들기도 한다. 이것은 공자와 그의 제자간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된다. 공자는 일방적인 가르침을 베푸는 스승상을 따르기보다는 제자들과 서로 상호 작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스승은 학생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특히 자신이 말하고 가르치는 내용에 대한 학생들의 의문과 반박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 정진하는 사람이어야한다."

 

퇴계 이황과 기대승간의 치열한 이기론 논쟁이 생각난다. 기대승은 이황보다 나이가 한 참 어린 후배이다. 그런 그가 당시 유림에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대성리학자 이황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황은 어린 기대승의 문제 제기를 배척하지 않고, 겸손하게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으로 인정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 나간다. 이황은 공자가 보여준 스승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의문과 반박은 자신의 이론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임을 기억해야겠다. 

 

최근에 읽고 있는 신영복의 <담론>에서 독법이라는 말을 보았다. 논어에 대한 양자오의 독법과 신영복의 독법은 상당히 다르다. 양자오는 논어가 기록될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논어를 이해해야 한다는 독법을 가지고 있다. 신영복님은 논어에 나타난 사상들이 오늘날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논어를 읽고 있다. 서로 다른 독법이다. 이 두가지 독법을 결합시키면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바탕에 서서 현실을 바라보면서 현실을 개조해 나가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한창 더위가 지나갈 무렵 오후 3시경에 도서관을 나와 자동차로 황령산 중턱에 있는 청소년 수련관에 들린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광안 앞바다와 광안대교이다. 푸른 바다에 걸쳐진 광안대교의 하얀색이 눈에 두드러진다.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모호하다.

 

 

 

 

 

 

청소년 수련원에 있는 숲속 도서관에서 식물도감을 꺼내서 이전에 보았지만 이름을 몰랐던 꽃들을 찾아 본다. 산에서, 정원에서 보았던 꽃을 도감에서 만나니 묘한 반가움이 스친다.

보라색 '꿀꽃', 클라우드님이 어렸을 때 먹곤 했다는데, 아마도 꿀이 있는 모양이다.

 

덩굴에 피는 '계요등', 닭오줌등굴이라는 뜻이란다. 아직 냄새는 맡아 보지 않았는데, 지린내가 나는 모양이다. 꽃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줄기나 잎을 만지면 고약한 냄새가 나기때문에 구렁내덩굴이라고도 부른단다.

 

청소년 수련원 둘레 산책길을 어슬렁거리다 선선한 선들 바람이 부는 해질녁과 마주 대한다. 서산 가까이 기울어진 태양은 마지막 광선을 비스듬하게 쏘아낸다. 숲 사이를 뚫고 나온 빛이 길가에 서 있는 나무 기둥 위에 짙은 명암을 새긴다. 어둠에 자리를 내어 주며 생명을 마감하려는 빛은 죽음처럼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불현듯 저녁 햇살이 가득찬 숲을 걷고 싶은 충동이 인다. 숲속으로 향한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흙 길의 부드러운 촉감 때문일까, 오솔길은 아스팔트 길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사랑스런 숲 길을 오랫동안 걷고 싶다. 산을 그리 좋아 하지는 않는데, 무슨 까닭일까? 여름 한 낮의 열기는 서늘한 저녁 바람에 쫓겨 사라지고, 온 몸을 스치는 상쾌함이 날 행복하게 만든걸까? 아니며 빛과 어둠이 자리바꿈을 준비하는 이 즈음 특유의 뭐라 말할 수 없는 정겨운 분위기 때문일까? 황령산 중턱에서 우연히 마주친 서늘한 숲 바람 부는 저녁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기억이 될 것 같다. 이렇게 이틀간의 휴가는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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