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로> / 버지니아 울프 지음 / 이미애 옮김 / 민음사 <뉴욕 타임지 선정 100선>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중략>

 

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중략>

 

 

 

버지니아 울프, 영국의 여류 작가. 자주 발생하는 정신 질환이 두려워 나이 육십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포기해야만 했을까? 어릴 때의 상처가 너무 깊었던 탓일까? 어린 시기에 격었던 가족들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의 고통.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시절 의붓 오빠들의 못된 짓으로 인해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연약한 영혼. 평생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해 준 남편의 품도 피해야만 했던 영혼. 인생은 빛이 보이지 않아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1부, 램지씨 가족은 지인들을 초대하여 등대섬이 보이는 해안의 별장으로 온다. 막내 제임스는 램지부인에게 등대로 가자고 한다. 램지씨는 날씨때문에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제임스를 실망시킨다. 램지부인은 손님들이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신경을 쓴다. 2부,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별장은 황폐해진다. 세월의 바람이 온 별장을 휘집고 다니며 황량하게 만든다. 그동안 램지 부인도 세상을 떠났고, 수학적 재능을 갖춘 아들 앤드루와 아름다운 딸 프루도 죽었다. 수려한 시적 표현들이 바람에 날리는 벚꽃처럼 2부를 가득채우고 있다. 3부, 10년후 램지씨 가족이 다시 별장을 찾아온다. 다시 초대된 손님들 가운데 노처녀 릴리 브로스코도 있고, 램지부인을 경원시하던, 이제는 유명한 시인이 된 노친네도 함께 한다. 릴리는 10년전에 완성하지 못한 그림을 완성하려 애를 쓴다. 아들 제임스는 억지로 램지씨를 따라 10년전에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등대에 도착한다. 그 순간 릴리의 마지막 한 획으로 그림이 완성된다. 그리고 소설은 끝이 난다.  

 

여성의 마음속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버지니아 울프는 램지부인과 릴리 브로스코에게 자신의 여성적 감성을 섬세하게 불어넣는다. 아마도 그들은 버지니아 울프의 분신이 아닐까? 그들의 마음 속 풍경, 섬세한 여성적인 감성을 따라 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자욱한 안개 속에서 길을 잃게 된다. 뿌연 안개가 자욱해지며 목적지가 어디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워진다. 작중 인물인 릴리 브로스코도 어떻게 해야 자신이 보는 것을 제대로 재현해 줄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램지씨와 제임스가 등대에 도착하는 순간 릴리 브로스코의 그림도 완성이 되는데, 도대체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릴리는 목적지에 도달했지만, 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시간은 창조적일까? 파괴적일까? 생각의 방향은 양극단으로 가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양극단이 옳은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것이 양극단의 사이에 존재한다. 시간도 마찬가지. <등대로>에 나타난 시간은 파괴적이며 예측 불가능성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 시간은 우리의 바램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가족의 기둥 역할을 하던 램지 부인은 죽고, 장래가 촉망되던 아들 앤드루는 폭탄과 함께 산화하고, 아름다운 딸 프루는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다. 10년전 막내 제임스의 등대로의 희망의 불을 무자비하게 꺼버린 램지씨는 등대로 향한다. 10년전 등대로 가고 싶어했던 제임스는 이제는 억지로 아버지의 손에 끌려 등대로 향한다. 그러나 아내의 괼시를 받던 무능력한 아편쟁이 시인 노친네는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 

 

등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시간의 흐름에 도도하게 맞서고 있던 릴리 브로스코, 그녀는 변한 게 없다.  세월과 함께 변하지 않은 것은 없어 보이건만, 그리고 시간은 뜬 구름처럼 정처없이 흘러가건만, 그녀는 바람 한 점없는 호수의 잔잔한 수면에 떠 있는 나뭇잎 마냥 변한게 없다. 릴리는 여전히 노처녀로 10년전의 그 그림에 매달려 있다. 멈춰선 릴리의 눈에 흘러가 버린 세월이 열차 차창밖 풍경처럼 스쳐 지나간다. 릴리는 마지막 붓질로 그림을 마무리한다. 미래는 등대처럼 찾아 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법. 릴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모습이다. 버지니아는 릴리처럼 자신의 지나온 삶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문장을 시작하고 싶었을런지 모른다. 불이 보이지 않아도 미래는 다가 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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