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명소 하면 해운대!  해운대하면 해수욕장! 이것은 일종의 화석처럼 변하지 않는 공식처럼 되어 있다.

여름에는 땀을 식혀주는 바닷 바람이며, 뜨거운 몸을 식혀주는 차가운 바닷물 때문이라도 해수욕장이 최고로 치이겠지만, 봄이라면 누가 뭐라 해도 달맞이 길이 가장 멋진 명소일 것이다. 한 쪽으로는 해송숲과 바다, 맞은 편엔 멋진 카페들이 즐비하니 어우러진 아름다운 언덕 길이 달맞이 길이다. 해운대 미포를 떠난 길은 해월정, 청사포를 지나 송정 바닷가에 이른다. 

 

4월의 달맞이 길은 아름답다. 벚꽃 잔치가 벌어지는 때는 물론이거니와 벚꽃이 가지를 떠나는 때라면 더 좋다. 그 때가 되면 소나무 무성한 숲 사이로 언듯 언듯 보이는 푸른 바다는 여느 때와 다름이 없으려니와, 도로 위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성한 벚꽃의 하얀 향연은 운치를 한결 더해 준다. 더구나 꽃잎이 가지에 작별을 고하며 영원한 고향을 향해 떠나는 꽃잎들의 영결식은 더욱 찬란하다. 꽃잎은 일직선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공기의 흐름과 저항에 따라 몇번이나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짧은 공간을 횡단하며 떨어지는 꽃잎이 자세를 바꿀 때마다 눈물 어린 미소가 반짝거린다. 그리고 그 슬픔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마냥 행복하게 꽃잎을 머리에 이고 걷는 사람들...     

 

달맞이 길 정점에 자리한 해월정, 해월정에 달이 뜨면 해운대 앞바다는 보름달이 뿜어내는 마력에 홀린다. 하얀 달은 부드러운 빛을 질펀한 까만 바다에 뿌려대고, 부드러운 은빛가루는 바다 한 복판에 은빛 찰랑이는 길을 놓는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의 은빛 달길을 가지고 있다. 모든 길은 달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 앞 정면에서 시작되어 저 멀리 까만 하늘과 닿아 있는 수평선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다. 넓게 시작된 길은 점점 폭을 좁혀가다가 달과 가장 가까운 수평선에서 끊어진다. 은빛 달길위에는 수만 수억의 은빛 비늘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달빛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힘이 있다. 문득 벚꽃이 흐드러진 달 밤에 달맞이 길을 찾으면 어떨까? 갑자기 내년 봄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긴다. 

 

달맞이 언덕에는 아름다운 세개의 길이 있다. 첫째는 달맞이 길이요, 둘째는 동해선폐선 철길이요, 세째는 문탠로드이다. 달맞이 길은 차도와 보도가 어우러진 길이요, 철길은 기차가 달리지 않는 해안 폐선이요, 문탠로드는 달맞이길과 해안철길 사이 소나무 숲 속을 관통하는 오솔길이다. 문탠 로드는 달빛이 숲을 비출 때 가장 강한 마력을 뿜어대는 길이다. 달빛이 소나무사이로 달빛을 흘릴 때 이 길은 가장 신비한 생명력을 얻는가 보다. 숲 사이로 보이는 달빛 가득한 바다와 숲 사이로 비치는 달빛에 홀리고 싶은 마음을 한 쪽에 가두어 둔다. 추석 지나 다음 보름달이 뜰 무렵, 이 길을 걸어보자고 마음속으로 약속해 본다.

 

갈매기와 길을 형상화한 이정표, 길이라고 읽는다. 갈맷길이라고 읽는 사람은 센스쟁이!

 

 

문탠로드 입구 표지판이다. 달빛 기운 가득한 길!

 

 

 

햇살이 스며드는 오솔길. 소나무는 아니 해송은 볼 때마다 더 멋져 보인다.

 

 

세찬 바다 바람이 숲을 휩쓸 때면 소나무 숲은 머리를 흔든다. 쏴쏴 하는 소리가 파도소리인지 바람소리인지...

 

 

문탠로드 전망대

 

저 앞 쪽에 보이는 해안은 이기대 해안, 이기대 왼쪽 끝에 점점이 멀어지는 섬들이 오륙도, 오륙도 너머 영도가 보인다. 영도에는 부산의 또 다른 명물 태종대가 있다. 

 

가까이 당겨본 오륙도. 왼쪽 끝에 뽀족한 등대가 희미하게 보인다. 등대섬이다. 그 오른쪽에 가장 큰 형의 모습을 한 굴섬과 송곳섬, 조금 떨어져 있는 수리섬, 그리고 조금 외롭게 떨어져 있는 우삭도. 우삭도는 왼쪽의 큰 솔섬과 오른쪽에 매미처럼 붙어 있는 방패섬 두개로 이루어져 있다. 밀물이 들면 우삭도는 솔섬과 방패섬 두개로 나누어지고, 썰물이 나가면 두 섬은 하나의 우삭도가 된다. 등대섬과 굴섬, 수리섬은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서로 떨어져 있는 섬이다.

 

문탠로드는 또 다시 다섯개의 길로 나누나 보다. 이 길은 한 바뀌 순환하는 길이다.

 

삼포해안길은 해운대 미포, 청사포, 송정의 덕포로 이어진 길. 문탠로드는 삼포길의 일부, 삼포길은 갈맷길의 일부이다.

 

문탠로드 오솔길에서 청사포의 쌍둥이 등대를 바라본다. 바로 아래에 동해폐선길이 살짝 보인다.

 

문탠순환길에서 벗어나 동해폐선철길로 들어선다. 숲 사이로 나란히 달리는 철길은 영원히 만나지 못할 평행선이지만 결코 멀어지지 않는 선이기도 하다.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이렇게 영원히 함께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철길 나무 침목 위로 하얀 꽃을 피운 쑥부쟁이. 구절초와 비숫하다. 쑥부쟁이는 꽃잎이 더 가늘고, 구절초는 꽃잎 끝이 더 둥글다. 봄에 꽃을 피우는 데이지와 가을에 꽃을 피우는 구절초도 많이 닮아 있는 품이 서로 닮은 꼴로 달리는 선로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철길 옆에 장승들이 무더기로 서 있다.

 

햇살이 하얗게 내려 앉은 해운대 앞 바다. 해풍에 무심히 흔들리는 풀. 바람이 일면 풀은 눕는다든가.

 

풀과 나무, 숲과 바다와 함께 걷다가 인간이 만든 도시를 만나는 이 길은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하더라. 광안대교의 모습도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동해선 아래 해안에는 분단의 아픔이 가시지 않은 철조망길이 보인다.

 

동백섬 너머로 해운대 마린 시티가 자연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온다. 그리고 해운대 백사장... 

 

가는 길 다르고 오는 길 다르다. 해운대에서 송정으로 걸으면서 보는 풍경과 그 반대로 걸으면서 보는 풍경이 다르다. 산을 오르면서 보는 산과 내려오면서 보는 산의 모습이 다른다. 고은 시인은 '내려 갈 때 보았네, 올라 갈 때 못 본 그 꽃'이라고 노래했지만, 난 '가는 길과 오는 길은 다른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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