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숙 지음/ 휴머니스트

 

고흐는 고갱과 과격한 싸움중에 격분하여 자신의 귀를 자르기까지 할 정도로 정신병이 깊었다. 결국 발작이 심해져 서른 일곱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생전에 단 한점의 그림만이 형편없는 가격에 팔릴 만큼 고흐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오늘날에는 고흐의 그림은 한 점에 800억원에 팔리기도 한다. 

 

빈센트 반 고흐, 그는 인상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들과 달랐다. 인상주의자들이 자연의 풍경이나 도시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냈다면, 고흐는 자신의 마음을 그려 넣었다. 고흐는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그림을 그렸다. 

 

그는 물감을 덩어리째 발라 두껍게 색을 입혔다. 그의 그림은 일그러져 있으며 구불구불하고 거칠어 보인다. 강한 색깔과 꿈틀거리는 선들 때문에 불안한 느낌도 준다. 고흐는 '마음'을 그릴 줄 아는 화가였고, 그 그림들로 자신의 마음을 고치고자 한 화가였다.

 

고흐의 작품 <까마귀 나는 밀밭>은 폭풍이 몰아치는 밀밭의 풍경이다. 고흐의 화풍이 잘 나타나 있다. 묘하게도 이 그림 앞에 서면 화가의 힘겹지만 열정적이었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 하다.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 나는 밀밭>, 1890년, 

 

 

고흐와 이름이 비슷한 고갱, 그들은 서로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다. 고갱은 고흐가 아주 존경하던 화가였다. 한 때 고호와 같이 생활하기도 했었다. 고갱은 그림을 위해 가족, 직장등 안정된 삶을 모두 버리고 방랑생활을 한다. 그리고는 먼 남태평양의 섬 타히티에서 생을 마친다.  

 

폴 고갱은 원근법에는 아예 신경을 쓰지 않고, 명암마저 사라진 그림을 그렸다. 인상주의 화가들과 고흐가 붓질을 짧게 해서 찍어 바르듯 색을 칠한 데 비해 고갱은 색을 넓고 고르게 칠했다. 

 

폴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고갱이 자신의 유언을 표한한 그림으로, 태어나 늙기까지 인간의 삶을 담았다. 원시적이면서도 부드러운 고갱만의 화풍이 잘 표현돼 있다

 

야수파 마티스, 마티스와 함께 한 화가들의 그림은 색채가 아주 화려하고, 형태는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어 애들이 장난친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한 미술평론가가 이를 보고 그림들이 야수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앙리 마티스는 실제처럼 혹은 아름답게 그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색깔들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어떻게 하면 색깔들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지에만 신경을 썼다. 세잔이 형태의 단순화를 연구했다면, 마티스는 색들의 관계를 연구했다. 

 

두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황폐되었고, 사람들은 절망감에 빠져있었다. 마티스는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되도록 쉽게 그림을 그렸으며 밝고 환한 색을 사용했다. 마티스의 그림을 보면 '나도 저렇게는 그리겠다'는 마음이 든다. 이에 마티스는 '바로 그런 마음이 들도록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소.'라고 대답했다고.

 

마티스의 <붉은 방>, 여인이 차를 따르는 모습을 그리기보다는 붉은 색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초록, 노랑, 파랑 등 생의 향연을 그린듯하다. 화사한 이 그림은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앙리 마티스 <붉은 방>, 19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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