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즈 지음/ 최세희 옮김 /다산 책방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우문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우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깊은 사유로 이어지는 질문이었다. 그 사유는 역사를 보는 눈을 단번에 바꾸어 버렸다. E.H. 카아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희했지만, 여전히 역사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과거를 완전히 재구성할 수 있는 역사는 없다는 것이다. 줄리언 반즈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통해 역사의 한계를 통렬히 지적하고 있다.

 

고등학교 역사시간, 역사교사 조헌트 영감은 질문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입니다." 토니가 대답했다. 

조 헌트 영감은 이렇게 반문한다. 역사는 "또한 패배자들의 자기 기만이기도 하다는 것 기억하고 있나?"

"역사는 생 양파 샌드위치입니다. 죽자고 반복하니까." 또 다른 학생이 대답한다

에이드리언은 라그랑주의 말을 인용하여 말한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줄리언 반즈는 이렇게 역사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그의 소설은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인 셈이다.  

 

토니는 대학에 진학하여 베로니카라는 여학생을 사귄다. 하지만 그 둘은 헤어지게 되고. 베로니카는 토니의 절친인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된다. 에이드리언은 토니에게 편지를 보내 묻는다. 베로니카와 사귀어도 되냐고. 토니는 이에 대한 그 둘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회신을 보낸다. 그러나 얼마 후 토니는 에이드리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에이드리언이 자살한 사건을 토니의 인생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 역사적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는 왜 자살을 했을까? 그는 이런 유서를 남긴다. "삶은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 만일 내가 바란적이 없는 그 선물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결정대로 행동을 취할 윤리적, 인간적 의무가 있다."  에이드리언은 왜 삶이라는 선물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한계로 인해 그의 자살의 이유는 미궁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뭔가 드러나지 않는 진실이 있을텐데. "그 자실이란게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나 혹은 우리에 대한 함축적 비판이 담긴 건지 모르겠다는 거야."라는 말에서 풍기는 미묘한 뉘앙스는 분명히 뭔가가 있다는 예감이 들게 한다. 그게 무엇일까?

에이드리언이 역사시간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하나의 사유 방식이 있는데, 그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 사건 - 예를 들어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까지도 - 에 대해 우리가 진실하게 할 수 있는 말은 '뭔가 일어났다'는 것 뿐입니다." 그렇다. 진실하게 할 수 있는 말은 에이드리언이 자살을 했다는 것 뿐이다. 그 자살의 진실은 어둠에 파묻혀 있다. 그이 자살은 "바로 우리 코 앞에 벌어지고 있는 역사, 가장 분명해야 함에도 그와 동시에 가장 가변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토니는 인생의 말년에 뜻하지 않게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게 되면서 그의 젊은 날의 역사를 재구성하게 된다. 베로니카의 엄마가 사망하면서 토니 앞으로 유산을 남긴 것이다. 그 유산 목록에는 놀랍게도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동안 미스테리로 남아있던 에이드리언의 죽음의 비밀이 밝혀질 것인가? 역사의 진실이 수면에 떠 오를 것이란 기대는 토니만의 기대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베로니카는 한사코 그 일기장을 내어주지 않으려한다. 베로니카는 단지 그 때 토니가 에이드리언에게 보냈던 편지의 사본과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의 한 페이지를 복사한 사본을 보내온다. 그리고 토니는 실제 일어난 일과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일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 같지는 않은 법이다,"

 

소설의 결말은 충격적이다. 나는 이것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어리둥절해 하며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두 번, 세 번을 읽고 나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한 동안 정신이 얼떨떨해졌다. 그리고 일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다시 첫 페이지부터 정신없이 읽기 시작했다. 토니의 충격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토니는 중얼거린다. "과거 조 헌트 영감에게 내가 넉살 좋게 단언한 것과는 달리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 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아니고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가깝다는 것을." 그러난 줄리언 반즈가 역사에 대해 정작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학창시절 역사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조 허트 영감은 학생들에게 1차세계대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나키즘적인 몇몇은 '모든게 우연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 세계는 끊임없는 카오스 상태로 존재하며 오로지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모종의 원초적 본능 즉 의심의 여지없이 종교로 부터 기인한 숙취에 다름 없는 그것이, 일어날 법 했거나 그러히 않은 사건에 의미를 부여한 데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한 대수롭지 않는 덜 떨어진 한 동급생은 "혼란이 있습니다. 거대한 혼란이 있습니다."라고 중얼거린다. 에이드리언은 이렇게 대답한다. "사실 책임을 전가한다는 것은 완전한 회피가 아닐까요. 우린 한 개인을 탓하고 싶어하죠. 그래야 모두가 사면을 받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개인을 사면하기 위해 역사의 전개를 탓하거나, 그도 아니면 죄다 무정부적인 카오스 상태 탓이라 해도 결과는 똑 같습니다. 제 생각엔 지금이나 그 때나 개인의 책임이라는 연쇄 사슬이 이어져 잇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책임의 고리 하나 하나는 모두 불가피한 것이었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모두를 비난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사슬이 긴 것은 아니죠. 하지만 책임 소재를 묻고자 하는 저의 바람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공정한 분석이라기 보다는 제 사고 방식의 반영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중점적인 문제 아닌가요. 주관적 의문 대 객관적 해석의 대치, 우리 앞에 제시된 역사의 한 단면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가가 해석한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줄리언 반즈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 모든 대답을 온통 뭉뚱거린 혼란스러운 대답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한 줄, "거기에 축척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역사는 연쇄 사슬이다. 이 연쇄 사슬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각 사람의 행동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의 흐름 속에 축적이 되고, 연쇄 사슬로 이어진 개인들의 축적된 책임이 한계치에 도달할 때 역사적 사건은 필연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 너머에 우리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혼란이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혼란이.

 

 

 

 

그 외 밑줄 그은 말------------------------------------------

 

*사건이 변모해 가면서 확신으로 굳어진 덕분에 꽤 사실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게 된 몇 몇 기억들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 탄생, 성교, 그리고 죽음. 이것이 엘리엇이 말한 인생의 총체이지.

* 에이드리언은 원칙이 행동을 이끌어야한다는 관념에 근거해 우리에게 사유를 인생에 적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도록 촉구했다.

* 상상력의 첫번째 의무는 위반하는 것이다.

* 진정한 문학은 주인공의 행동과 사유를 통해 심리적이고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진실을 드러내야 했다.

* 그러나 동시에 역사가들은 사건에 대한 본인의 설명에 어느 정도 회의적으로 접근해야 해.

* 가장 멀리 내다보는 관점이 가장 의문스러워 보일 때가 종종 있지. 그리고 정신 상태가 행위로부터 추론 될 수도 있고.

* 우리는 충동적으로 결정한 다음 그 결정을 정당화할 논거의 하부 구조를 세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를 상식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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