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나절의 광안리 바닷가란 어떤 모습이라 해야할까? 광안리의 밤 풍경하면 휘황한 불빛과 북적이는 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조명아래 빛나는 광안대교가 떠오른다. 하지만 아침 나절의 광안리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날이 새면 햇살이 모래사장에 비치고, 어느 듯 밤 풍경은 눈이 부신 듯 손등으로 눈을 가리고 뒤전으로 사라져 버린다. 무심히 밀려들었다 밀려가는 작은 파도만이 모래사장의 발치를 간지럽히며 희롱할 뿐 북적대던 모습은 간 곳 없다. 조용한 해변로와 바닷가 모래밭에는 혹 조용한 아침 산책을 즐기는 외지인들만 몇 눈에 띌 뿐 인적조차 드물다. 간 밤의 화려한 모습은 찾을 길 없고, 무심한 상쾌한 바다 바람만 이따금 지나가는 것이다.  

 

오늘 아침은 뭔가 수상하다. 깊은 바다가 일렁이는 것처럼 뭔가 술렁거림이 있다. 해변로의 차량통행을 제한한다는 표지판들, 차량을 통제하는 노란 플라스틱 바리케이트, 모래 사장과 접한 화단을 둘러싼 출입금지 황색띠, 교통봉을 가지고 한가롭게 차량을 통제하는 경찰관과 해병동우회 동지들...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설레임의 물결이 모여 술렁거리는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오늘은 부산 불꽃 축제의 날이다.  

 

첫 불꽃 축제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해지는 사건이었다. 서울갔다 내려오는 길이었는데, 지하철이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찬 지하도로며 승강장은 처음이었다.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무슨 난리가 난 줄 알았다. 바닷가 5킬로미터 되는 지점에서 타고 오던 택시도 결국 교통에 갇히고 말았다. 광안리로 향하는 도로는 이미 주차장이 되어 있었고, 보도에는 수많이 사람들이 바닷가로 향하고 있었다. 제1회 부산 불꽃 축제였다. 그날은 2~3킬로미터를 걸어 재송동 어머니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곳 아파트 베란다에서 멀리 광안대교를 바라보며 불꽃 축제를 보았다.

 

해마다 돌아오는 불꽃 축제는 어떻게든 나를 불러들였다. 한 번은 광안리 바닷가로 내려가다 인파에 막혀 해변에 가까이 접근을 하지도 못한 채 다만 건물들 사이로 불꽃이 터지는 장면을 아쉽게 바라보아야만 했다. 또 한번은 광안대교를 사이에 두고 광안리 해변과는 반대쪽에 위치한 해운대 마린시티에서 불꽃축제를 관람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광안대교가 정면에 잡힐 듯이 내려다 보이는 황령산 중턱에 올라가 어두운 산 위에서 불꽃 축제를 즐겼다. 덕분에 산을 내려올 때는 캄캄한 숲속을 후래쉬를 비치면서 조심조심 내려오는 밤등산을 해야만 했다. 

 

오늘, 이번 불꽃 축제는 아주 다른 느낌이다. 집이 바로 불꽃 축제의 현장까지 걸어 2~3분 거리에 있는 까닭에 그 분위기가 상당히 가까이 느껴진다. 예비불꽃이 '평'터지는 소리에 집안 공기가 흔들리자, 이미 마음은 다급해 지고 있다. 불꽃 터지는 큰 소리를 유난스럽게 무서워하는 딸아이는 집에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나는 혼자서 아파트 단지를 관통하는 벚꽃길을 따라 바닷가로 나선다. 차량 통행이 금지된 벚꽃길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차 없는 4차선도로를 메우고 한 방향으로 걷고 있다. 길 양쪽으로는 장사치들이 불을 밝히고 갖가지 먹거리를 팔고 있다.  

 

 

이미 광안리 바닷가 모래사장과 광안대교가 정면으로 보이는 알짜배기 해변로는 꽉 차서 들어설 공간도 없고 출입도 통제되고 있다. 아쉬우나마 해변도로의 가장자리에서 불꽃이 잘 보일만한 장소를 찾아 인파를 헤치며 이리 저리 다니는 사이에 어느 듯 이 공간도 좁아지고 있다. 해변에 접한 아파트 앞에는 경비아저씨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고, 조금 높은 지역이란 곳은 모두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이 거리도 이제 꽉 차버린다.

 

 

거리의 가로등이 하나씩 꺼지고, 화단의 나무위에 올려 놓은 반짝이 등불도 모두 꺼지자, 광안대교 위 밤하늘은 오랫만에 불빛없는 캄캄한 하늘이 된다. 사람들의 카운터다운과 함께 어느 순간 '슝'하고 불꽃탄이 하늘 높이 솟아 오른다. "펑,펑,펑!!!"  불꽃 축제가 시작되었다.    

  

 

 

  

 

  

불꽃 축제가 막바지에 다가가자 불꽃은 절정을 향해 달린다. 이 마지막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세상의 모든 불꽃이란 불꽃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쏟아 퍼붓는 듯한 장렬함으로 하늘을 불사르는 불꽃 폭풍은 밤하늘을 대낮처럼 환하게 만들고, 전쟁통을 방불케하는 엄청난 굉음이 동이에 그리고 연이어 "펑, 퍼벙, 퍼버벙, 퍼버버벙!" 하고 하늘을 뒤흔들며, 마지막 필사의 힘을 다 할 때, '와우!' 하는 탄성이 밤하늘로 퍼진다. 그리고는 천천히 마저 타지 못한 불꽃조각이 떨어지며 사그라든다.

 

 

 

언제나 깨달음은 순간적으로 오는 것일까? 불꽃이 절정에 달하여 그 화려함이 극으로 치달을 때, 어디로서인지 모를 순간적인 전율이 자르르 흐르면서, 찰라의 아픔이 송곳처럼 파고 든다. 인생이란 불꽃과 같은 덧없는 것이란 말은 더할 나위 없는 진부한 말일 뿐이건만, 오늘 이 순간 그것은 진부한 고요를 깨뜨리는, 호수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처럼 새로운 의미의 파문을 일으킨다. 인생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불꽃과 같이 짧다. 나는 이 짧은 생을 마치기 전에 언제 한 번 불꽃처럼 불타 올랐던 적이 있었던가, 언제 한 번 불꽃처럼 아름다웠던 적이 있었던가? 찰라의 짧은 순간마저도 막을 수 없는 불꽃의 장렬한 몸부림, 그 아름다운 생의 모습에, 마음 한 켠에서는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언듯 비치다 조용히 사라진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냐"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함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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