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가 선정 100권중 <간디 자서전> 함석현 옮김 / 한길사

 

간디(1869~1948)은 1922년 인도의 시성 타고르에 의해 '마하트마'라는 칭호를 얻은 이후 마하트마 간디라고 불린다. 마하트마라는 말은 '위대한 영혼'이란 뜻이다.

 

간디는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남아프리카에서 변호사로 활동한다. 남아프리카에서의 인도인의 열악한 환경과 차별등을 보고 경험한 후에 인도인의 인권과 공민권을 개선하기 위해 자신을 바친다.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의 신망을 얻은 이후 인도 본토에서도 농민과 노동자를 위한 법적 투쟁을 벌이면서 점차 영향력있는 지도자로 인정받게 된다.

 

간디는 1차세계대전이전에는 영국 정부의 여러 방침에 협조적이었고, 영국과 인도의 신뢰와 우의로 인도정부의 자치권을 획득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의 배신으로 반영독립에 힘을 쏟는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 파키스탄과 인도의 분리 독립에 반대하여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화해를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한 힌두교 광신자에 의해 암살당한다.

 

왜 간디는 '마하트마'(위대한 영혼)이라고 불릴까? 간디가 '위대한 영혼'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가 진실로 그러했기때문이다. 그에게는 다른 정치지도자들에게서 보기 힘든 숭고함과 순수함이 있다. 정치세계에서는 권력을 잡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책략을 사용하거나, 기만하고, 심지어 신의를 져버리는 등의 일을 서슴지 않는다. 속일 수만 있다면 비합법적이며 불법적인 행동도 불사한다. 그들에게 원칙과 진리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불신을 갖고 무관심과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다 그 이유가 있다.

 

그러나 간디에게는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해 흐르는 원칙이 있었다. 간디의 근본사상은 '사티아그라하'이다. '사티아'라는 말은 '진리'를, '그라하'는 '파악, 주의'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티아그라하'는 진리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 나간다는 진리주의라 할 수 있다. 간디의 모든 행동 이면에는 이 진리에 대한 추구와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 간디는 자신의 인생을 진리를 파악하기 위한 실험의 장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그는 평생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 진리는 그의 종교이며 그의 하나님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이러한 정신은 탁한 물 속의 연꽃처럼 그 숭고함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간디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었다.

 

 

간디의 '사타아그라하'정신은 '브라마차리아'와 '아힘사'와 맥을 같이 한다. 간디의 브라마차리아는 자기정화, 금욕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간디는 어린 시절 힌두교 교의를 어기고 육식을 한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늘 지니고 있었다. 이후 그는 엄격한 채식주의를 늘 고수한다. 그리고 채식주의와 아울러 1906년 이후 일체의 성생활을 멀리하는 금욕주의 생활을 유지한다. 또한 모든 개인 재산을 포기하는 맹세를 하고, 공공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희생적인 생활과 소박한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간디는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 자기자신을 먼저 깨끗이 한 이후에 자신을 진리의 대의에 바치는 희생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것이 브라마차리아의 정신이었다.

 

간디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힘사'이다. 아힘사는 '불살생'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로서 간디의 비폭력정신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간디는 기독교에 비해 힌두교가 우월한 점을 '아힘사'에서 찾았다. 모든 생물에 대한 불살생, 비폭력, 동정, 자비등을 포괄하는 아힘사는 간디의 채식주의와도 맥이 닿아있다. 뿐만 아니라 간디의 '비폭력저항'정신의 근본원리이기도 하다. 간디의 반영투쟁의 근본원리는 비폭력저항이다. 이는 수동적 저항의 일종으로, 영국 정부에 대한 비협조, 시민적 불복종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간디는 영국정부에 대한 투쟁에서나, 압제적인 지주나 권위에 대한 투쟁에서나 항상 진실, 진리를 추구했다. 민중들의 불만이나 불평을 직접 조사하여 확인하지 않고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또한 잘못된 관행이나 압제등이 시정되기를 바라고 비폭력 법적 투쟁에 나섰지만 결국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사람에 대한 미움은 갖지 않았다. 투쟁하기 이전에 먼저 그들과 만나 상황을 진실되게 전달하고, 그들의 합리적 조치를 요구하고 양해를 구한 후에 행동을 취했다.

 

간디는 '위대한 영혼'이었다. 간디는 불완전한 인간이 갖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숭고하고 순수한 영혼을 지닌 인물이었다.     

 

 

 

<간디자서전>에서 발췌한 세문장

 

" 힘은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씨알이 그들 스스로 내세우는 진리를 위해 고통받을 각오를 할 때 그 자체가 곧 힘이란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불법이 있다고 느껴져 반항할 때 그 정부는 질서 있고 점잖은 이런 불복종에 대해 관용의 자세를 갖기때문입니다. ...제가 쓰고 있는 혼의 힘, 바꾸어 말해서 사랑의 힘을 널리 일반화하여 쓸 수 있다면 저는 전세계의 악에라도 능히 대항하는 인도를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때를 가리지 않고 제 생활에서 고통을 달게 받는다는 이 영원한 법칙을 나타내려고 제자신을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 인도 총독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진리에 대한 열의보다 강했다. 그래서 진리의 헌신자가 사티아그라하 투쟁의 열의 때문에 자기의 거룩한 이상을 한 번 양보해 버렸다. 이 행동의 기억은 지금도 가슴에 맺혀 있어서 내 마음을 후회로 가득채우고, 나는 늘 산양유를 언제나 그만 두나 그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유혹중에서도 가장 기묘한 열의, 즉 봉사하자는 열의 때문에 지금도 그것을 놓지 못하고 있다." - 우유를 먹지 않겠다고 맹세한 맹세를 깨뜨리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한 말. 간디의 채식주의는 우유나 달걀등도 먹지 않겠다는 아주 타이트한 것이었다.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 의사의 권유와 회유로 산양유를 섭취하게 된다. 원래 우유를 먹지않겠다고 맹세한 것은 이윤을 위해 암소로 부터 우유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기 위한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해 들은 이후부터이다. 산양유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의사의 회유에 간디는 굴복하였다. 그가 살고 싶었던 이유가 인상적이다. "봉사하자는 열의"가 가장 큰 유혹이었다고...  

 

"나는 언제나 사람은 자기 잘못은 돋보기로 보고, 남의 잘못은 그와 반대로 보아야 둘을 정당하게 비교하여 평가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다고 여기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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