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의 칼날 - 찰스 길리피스 지음/ 이필렬 옮김

 

20세기 물리학의 제2혁명을 초래한 19세기 물리학의 한계

 

19세기 물리학은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전물리학은 절정에 달했다. 당시의 대물리학자들은 뉴턴 물리학이 자연의 구조를 구석구석까지 아우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광입자의 복사와 운동, 원자와 분자들 사이의 화학 결합, 전기, 자기, 열현상에서의 에너지 흐름과 교환등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이 역시 고전물리학으로 그 원리가 밝혀질 것으로 낙관하고 있었다. 

 

단지 소수의 철학자들만이 그 기초의 문제에 대해 번민했을 뿐이었다. 20세기에 물리학에서 혁명이 일어나리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 혁명은 고전 물리학이 사물의 형상과 완전히 부합하지 못한 점이 있었기에 필연적이었다. 19세기 물리학은 두가지 결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는 뉴턴의 공간 개념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입자론적 기계론에 관련된 것이었다.

 

공간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의 운동은 물체에 내재해 있는 본질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는 것은 아래로 향하는 본질때문이며, 가벼운 물체가 위로 뜨는 것은 그러한 본질이 그 속에 있기때문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 플라

그림)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학당의 일부- 플라톤(왼쪽)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천상에 있는 이데아세계를 설파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지상 현실세계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논증하고 있다.

 

갈릴레오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철학적 설명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운동은 다른 물체와의 관계의 변화라고 보았다. 이러한 운동론은 상대 운동과 절대 운동이라는 개념으로 인도하였다. 즉 어떤 물체가 움직일 때 무엇에 대해 움직이는가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뉴턴은 공간을 모든 운동의 기준틀로 잡았고, 그것이 절대적인 좌표계라고 보았다. 뉴턴은 그 좌표계안에서 모든 운동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

그림) 갈릴레오(왼쪽) 피사의 사탑에서 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른쪽)

 

반면에 라이프니츠는 뉴턴의 절대 공간에 반대하였다. 공간은 실체가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간의 관계라고 보았다. 진공은 아무 것도 없는 무 자체였다. 예를 들어 라이프니츠의 공간에 어떤 물체가 하나 있다면, 그 물체의 운동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냥 정지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비교할만한 대상이 없기때문이다. 이렇듯 공간상의 물체의 운동은 다른 물체와의 상대적 관계하에서만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 라이프니츠의 공간 개념이었다.  

 

표준모형_세상의 기초         DNA 정보 저장 왜 3진

그림) 뉴턴(좌)         ,                                        라이프니츠(우) 

두사람은 누가 먼저 미적분을 발견했는가의 문제로 격렬한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뉴턴의 절대 공간 개념은 사물의 형상을 올바로 반영한 것이 아니었다. 아인쉬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해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공간은 시간과 결합하여 시공간을 형성하며, 수축되기도 하며, 늘어나기도 하고, 심지어는 구부러지거나 휘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20세기의 물리학은 19세기 물리학의 결함을 보완하게 되었다.

 

광전효과의 발견 - 알      키즈 사이언스 - 우주 

왼쪽 사진)아인쉬타인의 젊은 모습 - 광전효과의 발견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특수상대성원리와 일반상대성원리로는 노벨상을 타지 못했다.  

오른쪽 그림) 일반상대성원리: 중력에 의해 휘어진 공간의 모습을 그래픽으로 볼 수 있다. 중력이 무한대로 강해지면 블랙홀이 된다. 중력에 의한 공간의 휘어짐은 1919년 아서 에딩턴경의 관측에 의해 증명되었다.

 

기계론

19세기 물리학은 많은 물리학적 현상들을 입자의 운동과 충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간상에서 중력이 전달되는 현상이나, 전자기론에서 다루던 장의 현상 - 빛의 파동적 특성과 전자기 유도현상등은 그러한 역학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간에서 이러한 힘을 전달하는 매체를 가정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19세기 물리학은 에테르라는 실체가 공간을 채우고 있어, 공간상의 현상의 전파를 위한 매질의 역할을 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20세기 상대성이론은 에테르의 필요성을 제거해 버림으로, 에테르는 상대성 이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물리학은 또한 자연의 통일성, 즉 물질과 에너지의 상호관계를 이해해야만 했다. 19세기 물리학은 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 힘을 전달하는 유체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 유체는 실체로서, 연장(공간상의 일정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보존법칙을 따른다는 점에서 수학적으로 취급할 수 있었다. 이 유체는 열을 전달하는 열소로서 칼로릭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이 칼로릭의 문제를 연구하는데서 열역학이 출발하게 되었다. 이 열역학은 에너지학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보존의 법칙)과 제2법칙(엔트로피의 법칙)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칼로릭 개념은 에너지와 엔트로피라는 개념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제 2 열역학 법칙....

그림) 에너지보존의 법칙 - 우주에 있는 전체 에너지는 언제나 동일하다. 늘어나지도 줄지도 않는다.

엔트로피의 법칙 -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체 우주의 무질서도는 높아져 간다.

 

기계론으로 자연과 그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한 전제조건이었던 에테르나 칼로릭은 상대성 이론과 에너지학이라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다. 이들은 20세기 물리학의 혁명을 초래한 19세기 물리학의 결함이었던 것이다.  

 

과학이 지닌 객관성의 칼날은 여지없이 비객관적인 요소들을 잘라버렸다고나 할까? 그러나 형이상학은 언제나 과학의 곁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어떨 때는 과학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 객관성의 칼날이 얼마나 예리하든지 간에 형이상학적 특성을 완전히 도려내지는 못할 듯 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