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F. 막스 뷜러(1823~1900)/ 오영훈 옮김/ 도서출판 북스토리

 

 

동화같은 소설이 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그렇고,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그랬다.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도 그렇다. 아름다운 사랑을 회상하며 쓴 이 잔잔한 서정시같은 이야기는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이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한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 하 순수해서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황순원의 <소나기>가 오버랩된다. 

 

 

<독일인의 사랑>은 한 편으로는 아름다운 동화와 같은 느낌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읽기가 쉽지만은 않다. 아름답고 수려한 직유와 은유가 문장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어 그 실체를 잡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신과 신앙을 논하는 이야기는 그들의 젊음에 비하면 상당히 놀랄 정도의 깊이가 있다. 그들의 풋풋한 생각속에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신의 섭리가 숨어 있다고 믿는 경건한 종교심이 숨쉬고 있다. 그들의 대화속에는 마음 속에 숨은 사랑, 표현하지 못한 들끊는 사랑의 열정, 사랑의 불꽃을 잠재우고 담담한 사랑으로 살아가려는 마음등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다.  

 

<독일인의 사랑>에는 사랑을 마음 속에 간직한 재 우정으로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소녀의 사랑과 열병같은 사랑을 숨길 수 없어 어떤 희생을 치루어서라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려는 소년의 사랑,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희생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멀리서 바라보는 노의사의 사랑이 보인다. 사랑은 인류 공통 감정으로 국경이 있을리 없지만, 지역의 풍토나, 개인의 성격에 따라 사랑이 표현되는 주된 방법은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을 듯하다. 햇살이 강렬한 밝은 지중해 연안의 남유럽의 사랑법과, 험한 날씨에 햇빛을 그리워해야만 하는 북유럽의 사랑법은, 풍토가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사랑법도 다소 다르지 않을까?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보아서는 독일인 특유의 사랑법이 있다는 작가의 믿음이 엿보이는 것도 같다.   

 

<독일인의 사랑>은 지난 날을 돌아보게 만들어 아름다웠던 인생의 봄을 다시 생각나게 하고, 다시 한 번 사랑이 뭔 지를 생각하도록 마음에 조약돌을 던지지만, 군데 군데 번역의 미흡함으로 인해 아리송한 부분이라든지, 또는 부적절한 표현으로 감정선이 끊는 아쉬움이 있어 다른 번역판으로도 한 번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간단히 <독일인의 사랑>의 줄거리를 요약해 본다.

 

회상!  어린 시절, 순수함이 더럽혀지지 않는 그 시절의 회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린 시절은 막 피어나는 신록과 같은 천진난만한 순진 무구의 세계이다. 이는 회상이라는 불완전한 망원경을 통해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세계를 돌아 보는 것이기에, 그리고 망각과 미화라는 강력한 질량에 의해 그 떨어진 사이의 시공이 휘어져,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왜곡되어 보이는 걸까? 어찌 되었건 어린 시절 두뇌 깊숙이 각인되었던 아름다움은 전 생애에 걸쳐 그리움으로 불쑥 불쑥 튀어 나온다. 엄마와 함께 창문에서 보았던 밤 하늘의 별, 풀 밭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동안 코 속으로 흘러들던, 엄마가 들고 있던 오랑캐꽃의 향기, 부활절날 교회 창문밖으로 들려오던 잊을 수 없는 하모니...

 

그러한 기억들은 어린 시절의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다. 그런 기억위에 영원히 지울 수 없을 것 같은 또 하나의 숭고한 기억이 덧붙여 진다. 마리아! 심장병을 앓고 있어 언제 생명의 촛불이 꺼질 지 모를 소녀, 언제나 말없이 그녀의 동생들과 그가 함께 노는 모습을 지켜 보던 마리아. 견진성사를 받았던 날, 마리아는 동생들에게 자신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잊지 말아 달라면서 하나씩 반지를 주는데... 그와 눈이 마주친 마리아는 자기가 가지고 가려고 마음 먹었던 마지막 반지를 주면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한다. 그는 반지를 되돌려 주며, 더듬거리면서 '너의 것은 모두 나의 것이야'라고 말한다.

 

 

어느새 고교 생활도 지나고 대학의 화려한 시간도 지난 때, 그는 여름방학을 지내려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마리아가 어떻게 지내는 지 궁금해하며 그녀가 살고있는 성 주위를 서성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마리아로 부터 방문해 달라는 편지를 받게 되고, 둘은 어린 시절의 친구로 만나 신과 믿음, 사랑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행복해 한다. 그는 자신이 마리아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지만, 차마 말하지 못한다. 다만 <파 묻힌 생명>이라는 시를 읽어 보라는 것으로 고백을 대신한다.   

 

다음 날, 자기 가족의 존경하는 주치의이자 마리아를 돌보고 있는 늙은 의사가 찾아 온다. 어젯밤 마리아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하면서 더 이상 마리아를 만나지 말라고 당부한다. 진정 마리아를 사랑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갈등에 휩싸인 그는 마리아를 떠나 여행길에 오르고, 깊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 방황하는 그는 무엇이 마리아를 위해 나은 것인지 끝없이 고민한다. 자신이 사랑한다는 것을 꼭 알리고 싶은 그는 마리아를 만나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는 시골의 성에 내려와 있는 마리아를 방문한다.

 

마리아는 그와 자신 사이에 우정과 같은 사랑이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느다. 노의사가 마리아를 사랑하듯, 그리고 마리아도 노의사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것처럼, 그런 사랑이 그와의 사이에서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마리아가 생각하는 사랑과는 다르다. 그는 마리아에 대한 자신의 열렬한 사랑을 고백한다. 이에 마리아는 고통스러워 한다. 자신이 원한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그를 만난 마리아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한다. 둘 사이의 관계를 알게된 아버지가 둘의 만남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그는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워서라도 자신의 사랑을 지키겠다고, 영원히 그녀의 고통을 함께 지고 가겠다고 말한다. 

 

그 날 밤 그는 불안한 밤을 보낸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그를 찾아온 노의사는 마리아의 죽음을 알린다. 그리고 노의사는 마리아에 대한 숨겨진 사랑을 고백한다. 마리아는 자신이 사랑하던 연인의 딸. 지독히 가난했던 그들. 그러던 차에 젊은 후작이 그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랬던 그 남자는 그녀를 영원히 떠난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 그녀가 후작의 첫 딸을 낳으면서 세상을 떠날 때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그 딸이 마리아였다. 연인을 잊지 못하는 의사는 마리아를 돌보며 마리아가 하루라도 더 살아 자신의 사랑이 끝나지 않기를 바랬다는 것이다. 

 

노의사는 그에게 '자네도 나처럼 참고 견뎌야 되네, 쓸데없는 슬픔 때문에 단 하루라도 허비해서는 안되네. 될 수 있는 대로 인간들을 위해 애써 주게나.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이 세상에서 마리아와 같이 아름다운 영혼을 보고 그녀를 알게 되었고 또 사랑하다 잃어버렸다는 것을 신에게 감사하게나'라고 말한다. 마리아를 만났던 것 자체를 행복으로 여기고, 그녀에 대한 사랑을 승화시켜 온 세상을 사랑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어떤 사랑이 올바른 사랑법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연인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음에도 사랑을 반드시 고백하고 확인해야만 했던 끓어 오르는 무모한 열정적인 사랑? 아니면 들끓는 사랑을 억제하고 다만 친구처럼 서로 존중하며 우정으로 간직하려는 호수처럼 잔잔한 사랑? 자신의 사랑을 내던지고 연인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랑? 올바른 사랑법이란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랑법일 텐데. 하지만 모두의 행복이라는 그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서로 어긋난 사랑법은 일견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마리아는 그의 사랑을 확인한 그 날 밤 생명의 촛불이 꺼질 때 행복했을까? 더 누리지 못한 행복을 안타까워하며 눈을 감았을까? 아니...모든 것에 신의 섭리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이 조차도 신의 사랑이라 여겼을 지도 모른다. 언제 생명의 불씨가 꺼져 버릴 지 모를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사랑이란 자신에게 과분한 것이라고 생각한 마리아.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생명의 나날을 보낸 것 자체를 신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 마리아를 사랑한 그는 행복하게 되돌아 볼 수 있는 사랑이 있었음에 감사했을 것이고, 그 사랑을 승화시켜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 것에 감사했을 것이다. 그 둘은 신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올바른 사랑법이란 결국 신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막스 뮐러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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