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 선정 100권에 선정된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

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현성 옮김/ 문예출판사

 

 

아침에 곤히 자고 있는데, 생면부지의 사람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그리고 당신이 체포되었다고 말한다. 영문을 모르는 당신은 체포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 질문은 묵살되고 만다. 체포한 사람들도 윗선의 지시에 따라 행동한 것일 뿐 체포 사유를 알지 못한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당신은 일상적인 자유를 다시 얻게 된다. 예심판사를 만나 심리를 받고 소송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당신에게는 체포된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다. 무슨 죄로 체포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변호하고 무죄임을 입증해야 한다면...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심판>의 주인공인 요제프 K가 이러한 처지에 놓여 있다. 그는 유망한 은행원이다. 그는 자신의 일상 업무를 처리하면서 동시에 소송을 준비해야 한다. 처음 체포될 때의 당황스러움은 점차 사라지고, K는 자신의 업무처리 능력을 바탕으로 소송을 잘 진척시킬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K는 변호사나 기타 여러 사람으로부터 재판 사무소 관련 사항에 대해 하나씩 알게 되면서 그는 어쩔 수 없는 무력감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K는 자신이 완전히 무죄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소가 경솔하게 제기되지는 않으며, 일단 고소를 하면 재판소에서는 피고의 죄에 대해 굳게 확신하고, 그러한 확신을 버리게 하기는 어렵다고한다. 아니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탈리아 고객에게 성당을 보여주려고 방문한 대성당에서 K는 한 신부를 만난다. 신부는 "판결은 단번에 내려지는 게 아니고, 소송절차가 진행되며 점차적으로 판결로 이어지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신부는 법률입문서에 쓰여 있는 것을 하나 이야기해 주는데, 아마 이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카프카가 <심판>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나타난 부분이라 생각된다.  

 

법 앞에 문지기가 서 있다. 한 시골 사람이 이 문지기에게 법 안으로 들여 보내달라고 간청한다. 문지기는 지금은 들여보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 나중에는 들어 갈 수 있느냐고 묻자, 문지기는 '그럴 수는 있지만 지금은 안 돼.'라고 대답한다. 법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항상 열려 있고 문지기는 옆으로 물러서 있기때문에 시골 사람은 몸을 구부리고 그 안을 들여다보려 한다. '그렇게 들어가고 싶거든 내가 금지하는 것을 어기고라도 들어가 보게나. 그러나 내겐 권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둬. 그리고 나는 가장 낮은 문지기에 지나지 않아. 문마다 문지기가 서 있으며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권력이 강하지. 세번째 문지기를 보면 나도 겁이 나.' 라고 문지기가 껄껄 웃으며 말한다. 

 

시골 사람은 이런 난관을 예상하지 못했었고, 누구나 언제라도 법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문지기가 입장을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문지기는 의자를 내주며 문 옆에 앉게 한다. 여러날 여러해 동안 그는 거기 앉아 있다. 시골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갖은 애를 쓰고 간청을 해서 문지기는 지쳐버린다.

 

문지기는 때때로 시골 사람에게 간단한 심문을 하며, 그의 고향이나 그 밖의 여러가지를 묻는다. 그러나 그것은 높은 사람들이 괜히 해보는 것과 같은 뜻 없는 질문이고, 결국은 언제나 아직 들여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여행을 위해 잔뜩 준비를 해갖고 온 시골사람은 대단히 가치 있는 것까지도 모두 문지기를 매수하기 위해 써버린다. 문지기는 무엇이든 다 받기는 하되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해보지 않았다고 후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받는 것뿐일세.'

 

여러해 동안 시골 사람은 끊임없이 문지기를 지켜보았다. 다른 문지기들이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리고 시골 사람은 이 첫번째 문지기만을 법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유일한 장애물로 여긴다. 처음 몇 해 동안 시골 사람은 이 불행한 재난을 큰 소리로 저주하지만 늙어서는 그냥 혼자 투덜거린다. 그는 어린아이같이 되었고, 여러 해 동안 문지기를 관찰한 끝에 문지기의 털외투 깃에 벼룩이 있는 것을 알아채고는 문지기가 마음을 돌리도록 도와달라고 벼룩에게 애원한다.

 

마침내 그는 시력이 약해져서 주위가 정말로 어두워진 것인지 자신의 눈이 흐려진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제 암측 속에서 법의 문들을 꿰뚫고 영원불멸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인지한다. 이제 그는 오래 살지 못한다. 죽음을 앞둔 그의 머리 속에서 지난 세월 동안의 모든 경험이 한 가지 질문으로 집약된다. 그것은 이제까지 문지기에게 물어 본 적이 없는 질문이다. 굳어진 몸을 일으킬 기력도 없어 시골 사람은 문지기에게 눈짓을 한다. 서로 키다 다르기때문에 문지기는 허리를 깊숙이 구부리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이제 또 무엇을 알고 싶은 거지? 당신은 지치지도 않는군.' 문지기가 묻는다. '모든 사람은 법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오랜 세월동안 나밖에는 아무도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이죠?' 시골사람이 묻는다. 문지기는 이미 시골사람의 최후가 가까워진 것을 깨닫고 멀어가는 그의 귀에 들릴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친다. '이 문은 당신만을 위한 것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들어갈 수 없었어. 이젠 가서 문을 닫아야지.'

 

이 문지기와 시골사람에 대해 신부와 K는 이야기를 나눈다. 마침내 신부는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단지 필연적이라고 생각해야만 합니다.'라고 말한다. K는 '비참한 의견이군요. 거짓이 세계의 질서가 되는군요.'라고 말한다. 

 

 

묘한 소설이다.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한 것이 틀림없다. 아무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어느 날 아침 그는 체포되었기때문이다.' <심판>의 첫 문장이다. 첫 말 '누군가'는 독자의 시선을 확 잡는다. 읽는 내내 누가 K를 고발했을까? 무슨 죄로 K는 체포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꾸며낸 것 같지 않은 사실. 기묘한 느낌을 준다. 소설 <심판>은 거대한 메타포인 듯 한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심판>에 나오는 사법제도와 같은 것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자신이 죽을 때까지 그 죄목을 알지 못한다는 설정이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분명 카프카는 이 소설을 통해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텐데... 그것이 무엇일까? 

 

온통 들여다 볼 수 없는 음모, 비밀, 숨기는 것, 속이는 것, 보여줄 수 없는 것, 보여지지 않는 것들로 가득찬 인간 존재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권위와 절차, 기밀, 또는 숨겨야 하는 것들로 가득찬 정치, 경제, 종교등 사회 시스템에 대한 것인지... 짙게 풍겨지는 또 하나의 뉘앙스는 아마 종교나 그 종교에서 대변하는 신의 처사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아닐런지... 인간은 애초에 태어나면서부터 심판의 대상이 되었고 살아가면서 행한 죄악에 따라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기독교적 사상에 신랄한 비판을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아닌가? 대성당에서의 문지기와 시골사람의 이야기속에 카프카가 하고 싶었던 핵심이 있는듯 한데, 그게 무엇일까? 

 

그러고 보면 카프가는 <심판>이라는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인생, 존재, 종교, 제도등의 문제에 있어 끊임없는 질문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나서도 계속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질문들이었기때문이다. 아마 오랫동안 ?가 내 머리속을 방황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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