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에 오르는 길은 수도 없이 많이 있지만, 정상으로의 최단코스는 재송동 장산 동국 아파트에서 출발하는 코스이다.  재송동이라는 마을 자체가 이미 산 중턱까지 올라 앉아있어서 정상까지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장산 동국 아파트 뒷길로 해서 정상으로 15분쯤 올라가자면 장산 너덜길과 만난다. 단숨에 정상으로 가는 길은 시간을 단축시키기는 하지만 그만큼 힘든 길이기도 하다. 

 

정상이 원래 목적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비껴서서, 장산 둘레길로 조성된 너덜길을 따라 폭포사 방향으로 향한다. 재송동에서 해운대 대천공원까지 3시간을 걷는다. 바쁠 것도 없고 서두를 없는 길, 천천히 무리하지 않고 편안하게 걷는다. 잔뜩 찌푸린 구름은 을씨년스럽고, 가랑비 마저 뿌린다. 바짝 마른 낙엽위에 바스락 거리는 소리는 가랑비 떨어지는 소리이다. 가랑비는 소리없이 너덜 바위위에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 계속 내릴 비일까? 오다 말 비일까? 하늘을 쳐다 본다.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었다. 큰 비만 아니라면 맞아도 괜찮다.


재송동 위 너덜길은 부산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길이다. 이 길을 걸으면 산의 풍경은 볼 품이 없고 그 보다는 탁 트인 도시의 모습이 시원스레 눈에 들어온다. 이 길을 걸으면 한 쪽에서는 웅웅거리는 도시의 낮은 소음이, 또 다른 쪽으로는 겨울 산의 적막함이 느껴진다. 마치 도시의 소음과 산의 고요한 적막함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경계선에 서 있는 듯 하다. 도시의 소리, 아마도 자동차 소리인듯한 소음은 길 따라 늘어선 건물에 이리저리 부딪히며 먼지처럼 공중으로 떠 올라 넓게 펼쳐진 공간으로 퍼져나간다. 장산의 적막한 공간으로도 어김없이 침입해 들어온다. 인류가 종말을 고하고 기계만 남은 세계를 묘사하는 '나인'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보고 들었던 잔인한 기계소리. 웅웅거리는 낮은 소리에 산은 다만 삭막한 겨울의 침묵으로 답한다. 떨어진 낙엽을 적시는 가랑비 소리오 이따금 들리는 새들 소리는 적막의 소리인양 소음으로 ㄴ껴지질 않는다. 생명의 자취를 찾아 보기 힘든 겨울 산의 삭막한 정경. 이것이 장산의 모습일까?  

 

 

 광안앞바다와 광안대교 너머로 이기대도 보인다.

 


 

표지판에 성불사 위 길이라고 씌여있는 곳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다. 조금만 목을 축인다. 저 쪽에 중봉 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를 지나온 산행인 한 명이 두산 위브 아파트로 내려가는 길을 묻는다. 지난 번에 가 본 길이라 자신있게 대답한다. 성불사 내려가는 길 따라 가면 그리고 갈 수 있다고. 하하하...이 산을 잘 아는 사람처럼 정확한 대답을 해 주고 나서 산사람이나 된 듯 으쓱하는 기분이 든다. 아마 이 너덜길 따라 대천공원까지 걷고 나면, 이 쪽 산 길은 어느 정도 파악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중봉 전망대 올라 가는 길은 데크길로 잘 만들어져 있다. 데크길 아래에는 옛길이 허름하게 무너져 가고 있다.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은 길, 하얀 빛이 섞인 회색으로 퇴색해가는 통나무들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지가 꽤 되었음을 보여준다. 얼마나 더 지나야 완전히 그 길의 모습을 잃게 될까? 중봉 전망대를 올라가는 계단 이쪽과 저쪽의 장산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면 앙상한 가지만을 남긴 나무들로 황량해 보이는 우중충한 산은 문득 해송의 푸른 빛이 아직도 겨울을 견디고 있는 살아있는 산으로 앉아 있다. 이 쪽으로는 도시의 회색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아래로 보이는 것은 숲. 넓게 펼쳐진 숲과 능선, 조금씩 내리는 가랑비가 소나기로 내리게 되면 온 공간이 푸른 빛을 바탕으로 희뿌연 비안개로 뒤덮여 장관을 이룰 것만 같은 그런 풍경이다. 중봉 전망대에 산불감시 초소에 근무하는 분은 하루 종일 이야기할 사람도 없이 혼자서 어떻게 지낼까? 카톡카톡소리에 희색을 띠며 스마트 폰을 살펴본다. 그리고는 처음 보는 사람인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안부쪽에서 올라왔습니까?" "아뇨, 재송동쪽으로 올라왔습니다. 이리로 계속 가면 억새밭으로 갈 수 있는가요?" "한 15분쯤 가면 억새밭이 나올 겁니다."

 

 

중봉전망대 올라가는 데크길

 

중봉전망대에서

 

 

정상의 억새밭을 향해 올라가는 길, 산불 감시원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해가 지기전에 빨리 내려가셔야 할 겁니다." 억새밭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초행길에 날이 어두워지면 낭패인데. 그래 억새밭은 다음 기회에 미루자. 찌푸린 날씨라 더 빨리 어두워질 거야. 산속에서는 금방 해가 지고, 해가 지면 순식간에 어두워진다는 말이 문득 생각이 난다. 늦기전에 내려가자. 되돌아 가는 것이 낫겠다. 그래서 억새밭을 뒤로 하고, 다시 너덜길로 내려온다. 이제는 하산하는 길이다. 조금 내려서자니 도시의 풍경은 완전히 가려진다. 오른쪽은 윽녀봉과 안부로 이어지는 능선에 가리었고, 뒤쪽은 중봉 능선에 가려진다. 능선사이에 갇혔다. 도시의 소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한층 도드라진 고요가 자리잡는다.  깊은 산 속이란 느낌이 와락 달려든다.

 

오락가락하는 비도 제법 내렸나 보다. 내려가는 길이 축축하다. 물기있는 길은 미끄럽다. 나무 뿌리를 밟으면 미끄러질 수 있다. 조심 조심. 10여분이 지나 넓은 체육공원에 이른다. 대천공원에 인접한 체육공원이다. 여기서부터는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잘 닦여진 넓은 길을 따라 내려간다. 길 옆 계곡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린다. 그러고 보면 장산 북면에는 이런 물많은 계곡이 없었던 듯, 그래서 더 적막 강산이었는지도. 

 

 

대천공원 양운폭포

 

 

대천천

 

폭포사의 지붕

 

 

장산 북면은 버려진 땅이라면 이 쪽은 축복받은 땅이다. 계곡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엄청나다. 이 대천천을 따라 대천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시민들이 이 길로 장산의 억새밭과 정상으로 올라간다. 어린이들을 위한 생태숲도 조성되어 있어 꽃과 나무를 배울 수 있는 좋은 학습장 역할도 하는 것 같다. 

 

다음 산행이 가능하다면 그 코스는 대천공원에서 시작하여 장산마을을 지나 억새밭까지 가는 길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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