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피천득/ 범우, <자전거여행> /김훈/ 생각의 나무

 

피천득 수필집 <수필>과 김훈의 에세이집 <자전거여행>

 

 

수필!

글쓰기에는 수필만한 것이 없을 듯하다. 온갖 주위의 사건이나 사물들에 자신의 생각을 투영하여 글을 쓸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이렇듯 자유롭게 써 내려간 수필에는 글쓴이의 인격과 개성, 생각과 사상이 아무래도 은연중에 스며들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에는 피천득이 진하게 배여있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을 읽으면 소심하면서도 자상한 할아버지,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할아버지가 느껴진다. 그 할아버지는 딸 서영이를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그 할아버지는 청초한 여성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로맨티스트이다. 선생의 눈에는 더러움이라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애써 그것을 피하고 아름다움만을 노래하려는 것일까? 선생의 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일 뿐... 아름답지 않다고 느낀 것을 소재로 한 유일한 예외는 <인연>에 나오는 아사코와의 세번째 만남일 것이다. 하지만 아니 만남만 못했던 만남조차, 아사코에 대한 선생의 아름다운 회상을 훼손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선생의 수필을 읽으면서, 그냥 읽어나가기에는 아깝다고 느껴졌다. 선생의 글을 아껴 하루에 하나씩 읽으면서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고, 방안 가득한 커피향에 취해듯, 수수하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배여있는 유려한 문장에 취하고 싶었다. 

 

선생의 수필 중 <인연>이나 <유순이>와 같은 글은 남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스토리가 있는 선생의 글을 읽으면, 그것이 아주 짧은 에피소드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단편 소설 한편을 읽는 느낌을 준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그 때의 풋풋한 로맨스를 편안하게 그려낸 이야기는, 마치 그 이야기가 우리 자신의 이야기였던 것인양 느끼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우리는 피천득 선생의 글을 읽고 우리의 지나간 젊은 때를 추억한다. 기억은 지나간 시간의 두께만큼 희미해 지는 것이겠지만, 희미한 만큼 오히려 아름답고 순수해 보인다. 아픔과 슬픔은 시간의 안개에 가려 아련해지고, 추억은 다만 그리움을 불러 일으킨다.  

 

자전거 여행!

김훈의 글은 난해하다. <자전거 여행>에서 김훈을 읽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김훈의 사유의 방식이 어렴풋이 느껴지면서, 그 사유의 깊이에 감탄한다.

여행이란 움직임과 멈춤의 반복이다. 서로 상반되는 이 동작의 반복이 여행을 만들어 내듯, 김훈의 사유는 서로 모순되는 관념들을 하나로 묶어내려는 처절한 시도로 난해하다. 치명적인 봄의 관능을 노래하는가하면, 삶의 터전에 자리 잡은 무덤, 소가 매를 맞는 낙원등의 이야기는 양극단을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자전거가 달리는 길은 이미 몸과 하나가 되고, 지친 몸을 잠시 의탁하는 곳에서 그의 사유는 시간을 거슬러 또 다른 여행을 한다. 먼 옛날 그 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서로 통합되기를 질기게 거부해온 것들의 교차점을 모색한다. 부석사에서 그는 신라를 대표하는 고승, 의상과 원효의 서로 상반되는 삶과 철학을 생각한다. 동해의 대왕암앞에 서서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무기와 악기를 통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신라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기린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은 지리적 여행이면서 아울러 역사 여행이기도 하며, 그만의 독특한 사색 여행이기도 하다. <자전거 여행>에는 김훈의 모습보다는 그가 지향하는 곳을 보여준다. 자연과 역사속에 숨겨진 모순들을 한덩어리로 묶어내려는 그의 시도는 오르막을 헐떡거리며 오르는 그의 자전거처럼 힘에 겨워보인다. 아니 그의 시도를 쫓아가는 나 자신이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글은 감상을 표방하는 듯하나 논리를 따르고, 논리의 형식을 빌어 감상을 표현한다. 감상은 감상으로 받아들이면 되고, 논리는 그 논리를 따라 가면 될터이나, <자전거 여행>은 감상과 논리가 분할할 수 없는 한 몸을 이루고 있으니 따라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그의 글은 수정처럼 투명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훈은 아마도 자신만의 글쓰기를 실험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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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일연지음/ 이동환 옮김/ 장락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1206~1289년)이 기록한 삼국시대의 역사서이다. 일연은 저술을 위해 청년시절부터 원고를 수집했고, 70세 후반에 집필을 시작하여 84세 죽기전에 <삼국유사>를 완성했다.  

 

<삼국유사>하면 그 짝으로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떠오른다. <삼국사기>가 왕의 명령에 따라 편찬된 '관찬적 정사'라면, <삼국유사>는 개인이 편찬한 '사찬적 야사'이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서 빠뜨린 고대의 기록들을 수록해 놓았다.

 

<삼국유사>에는 고조선의 개국신화인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기자조선 및 위만조선, 북부여, 동부여, 백제, 삼한, 가락국의 역사가 담겨있고, 고대의 신화, 설화, 지리, 민속, 사회, 사상, 신앙, 옛어휘와 불교와 관련된 내용이 풍부하다.  

 

<삼국유사>는 모두 5권 2책으로 구성되었는데, 권과는 별도로 아홉편목으로 나누어진다. 

1. 왕력: 신라, 고구려, 백제, 가락국, 후고구려, 후백제등의 간략한 연표 수록

2. 기이: 고조선에서 후삼국의 단편적인 역사를 수록

3. 흥법: 불교가 삼국에 수용되는 과정과 융성, 고승들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

4. 탑상: 탑과 불상에 대한 사실

5. 의해: 유명한 승려들의 전기

6. 신주: 신라의 밀교적 신이승에 대한 이야기

7. 감통: 신앙의 감응과 영험에 관한 기록

8. 피은: 은둔한 승려들의 행적

9. 효선: 불교적 선행과 부모에 대한 효도에 관한 미담

 

<삼국유사>는 신화와 옛 전설을 풍부하게 간직한 책이다. 연오랑과 세오녀, 만파식적등 익히 아는 여러 설화들도 만나게 된다. 특히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향가 14수는 고대문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서동요, 융천사의 혜성가, 풍요, 광덕의 원왕생가, 득오의 모죽지랑가, 견우노인의 헌화가, 신충의 원가, 월명사의 도솔가와 제망매가,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와 안민가, 희명의 도천수관음가, 영재의 우적가, 처용가등이다. 향가의 배경 이야기들은 그 향가를 더욱 잘 이해하게 도와준다.

 

의해편에서 익히 아는, 세속 오계를 펼쳐 화랑도 정신의 원류가 된 원광, 신라불교의 법도를 세운 자장,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던 원효, 화엄종의 정통을 이은 의상등의 고승들의 기록들을 읽게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보면 유홍준 교수는 답사한 여러 절집의 창건자나 창건설화들을 들려준다. 부석사와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 의상과 당대에 어깨를 견주던 원효의 이야기등 절집의 역사를 이야기해준다. 의상과 원효는 함께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도중에 원효는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유학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화엄종의 한 유파인 해동종을 창시한다. 한편 의상은 원효와 헤어진 후 중국에서 유학하여 정통 화엄경을 배우고 돌아와서 부석종을 일으킨다. 원효는 실천적인 불교를 대중속에서 널리 알리고, 정교한 화엄체계를 이룬 의상의 불교는 체계적인 국가를 향한 통일 신라의 사상적 바탕을 이룬다.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고리타분한 번역, 많은 한자어와 어려운 불교용어, 예스러운 표현들때문에 어렵다고 느꼈기때문이다. 원전에 충실한 것도 중요하겠지만, 책이란 모름지기 읽어서 쉽게 이해되어야 한다. 이 책의 편찬자는 일반인만이 아니라 중고등학생이라도 수월하게 이해시킬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눈높이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동양의 고전을 번역할 때는 한자어를 쉬운 우리말로 옮기려는 노력보다는 한자를 그대로 쓰려는 유혹에 빠지기가 쉽다. 한자를 잘 모르는 세대는 한자어 단어가 낯설고 어렵기만 하다. 동양고전의 번역에 있어서도 일대일 대응의 직역투보다는, 원전의 사상을 명확히 드러내는 방식의 현대어로 번역하려는 노력이 경주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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