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바람이 불었던 걸까? 이기대 바닷가를 찾았던 것은...건강을 위해 걸어야겠다는 마음이었을까? 마음 한 쪽에 자리잡고 있던 자연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무더위를 날려 버린 서늘해진 가을 바람 때문이었을까?

 

'오늘은 동산말에서 백련사로 바로 이어지는 가파른 산길을 타자, 그리고 장자산 정상으로 향하자'고 마음으로 코스를 정한다. 동산말에 도착하자 가슴을 뻥 뚫어 주는 넓게 펼쳐진 광안의 푸른 바다는 여전하다.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머금은 해풍이 온 몸에 부딪힌다. 물 속에서 개구리처럼 다리를 쭉 뻗으면서 두 손을 앞으로 쭉 내밀며 앞으로 쑥 나갈 때 온 몸을 스쳐지나가는 물의 흐름과 같은 느낌이 바람 속에 있다. 몸은 강한 바람의 저항에 멈칫한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부드럽게 바뀌어진 바람은 물이 돌을 감돌아 흘러 가는 것처럼 몸을 휘감아 돌아간다. 나는 물고기가 물 속을 유영하며 나아가듯 바람속을 헤엄치듯 나아간다.

 

푸른 바다는 여전하지만 해안에 부딪히는 파도가 심상찮다. 해변이 하얀 거품을 물고 있다. 해안 암석에 부딪힌 파도의 포말이 해안을 덮고 있다. 끊임없이 해변으로 밀려드는 파도는 우리에 갇힌 분노한 맹수처럼 으르릉거린다. 좁은 바다를 벗어나려고 하는 걸까? 해안선이 창살이라도 되는 듯 파도는 육지를 향해 몸을 던진다. 머리가 터지고 산산이 부서지면서 하얗게 솟구쳐 공중에서 흩어진다. 정점에 도달한 하얀 물보라는 한 순간에 허망하게 무너진다. 쓰러진 파도는 몸을 움추린다. 그리고는 다시 달려든다. 파도는 쉬지않고 부딪혀 온다. 바람이 그쳐야만 분노가 사그라 들 것이다. 

 

파도야! 너의 한계는 그 곳까지이니라. "내가 그것의 한계를 정하고 빗장과 문을 달며 '네가 여기까지는 와도 되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 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서 멈춰야한다.' 하고 말했을 때에..." (욥기38:10,11)

 

이기대의 포효하는 파도는 백련사로 향하는 해안길로 발걸음을 돌려세웠다. 백련사로 올라가는 길을 포기하고 이기대 둘렛길을 걷기로 한다. 구름다리 한 편에 서서 파도를 기다린다.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킬 파도를 기다린다. 좋은 사진을 얻으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꾼처럼 웅크리고 기다려야한다. 조급하여 자리를 뜨자 곧이어 엄청난 파도가 분노의 물보라를 솟구친다.

 

 

훤히 펼쳐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바닷 냄새가 섞여 있다. 바람이 잠들 때면 길 한 쪽의 숲에서 흙냄새와 풀냄새가 자지러진다. 이 길을 걸으며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책상앞에서 하는 사색과 길을 걸으며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길은 온 감각을 일깨우며 영감을 주는 명상의 샘이다. 발 한 발 내딪는 발걸음은 반복에 익숙해져 자동적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걷고자 하는 의지로 나아가기 보다는 오히려 발은 저절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발의 내디딤은 자유의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미 정해진 목표를 향해 무의식적으로 내디딜 뿐이다. 어느새 발은 걸음에 중독되고 몸은 중독에 편안한 쾌감을 느낀다. 몸은 가볍게 앞으로 나아가고 생각은 경계없는 공간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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