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5

순천만자연생태공원

 

부산에서 3시간이나 걸렸나? 순천만에 도착하니 거의 정오가 다 되어 간다.

생태체험선을 타고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S자 곡선을 따라 항해한다.  

겨울 바닷 바람이 차갑다. 달리는 배 위에서 맞는 바람이란 여간 차가운 게 아니다.

 

썰물 때라 갯벌이 많이 드러나 보인다.

막 드러난 갯벌에는 이른 오후의 겨울 햇살이 비스듬히 비쳐들고, 반사된 햇빛이 차가운 바람만큼이나 푸르게 눈동자를 찔러대는 통에 

저 멀리 보이는 푸른 곳이 갯벌인지 깊은 물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만큼 깊은 푸른 빛이 강렬하다.

 

드러난 갯벌에는 철새들이 먹이를 찾고 있다.

청둥오리, 저어새, 왜가리, 흰뺨검정오리.

저어새는 뭉퉁한 부리를 좌우로 저어 물을 헤치며 먹이 사냥을 하고 있다. 부리를 좌우로 젖는다고 저어새라고 한다나...

긴 목을 가진 왜가리는 꼼짝도 않고 가만히 서서 먹이가 가까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정말 꿈쩍하지도 않는다. "먹이야! 네가 이리로 와야지, 내가 너에게로 왜 가리" 하면서 먹이를 기다린다고 해서 이름이 왜가리란다.

 

 

 

 

만조가 되면 물 가까이 자라는 갈대의 무릎께까지 물이 찬다.

갈대는 육지에서 묻어온 오염물질을 제거하여 물을 깨끗이 정화한다. 갈대는 바다의 최전선에서 바다를 지키는 지킴이인 셈인가?

 

 

 

가을지나 겨울의 찬 바람에도 갈대는 바짝 마른 줄기를 굽히지 않고 꿋꿋히 서 있다.

찬 바람에 갈대는 웅웅거리며 울음을 운다.

흡사 대밭의 바람소리와 같은 소리로.

 

 

 

 

함께 간 여동생이 묻는다. "오빠! 갈대밭에 대한 인문학적 감상이 뭐야?"

대답이 궁하다. 그래도 한 마디는 해야지. "이런 갈대 밭을 보고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입 다물고 조용히 할 밖에."

 

 

 

갈대밭을 가로 질러 순천만전경을 볼 수 있는 용산 전망대로 향한다.

높이는 100여미터. 승천하려 준비하던 용이 아름다운 순천만을 보고서는 승천을 포기하고 자리를 잡았다는 용산.

순천만 지킴이를 자처하고 수호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고.

 

보다시피 물인지 뻘인지 구별이 쉽지 않다.

 

 

 

갈대 하나가 습지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

점점 번식하여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데, 그 확장해 가는 영역은 수학적으로 동심원을 형성한다.

두개의 영역이 접하게 되면 하나의 큰 영역이 형성된다.

 

 

 

때를 잘 맞추어 오게 되면

왼쪽 바다와 접해 있는 부분에는 칠면초 군락이 온통 분홍색으로 물들고

갈대숲과 검은 갯벌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색의 향연을 이룬다고 한다.

칠면초는 1년에 일곱번이나 색을 바꾼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용산 전망대에 갔다 온 후 가까운 식당에서 짱뚱어탕을 먹는다.

점심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어중간한 짱뚱어탕이 고소하다.  

짱뚱어는 남해안에 있는 푹푹 빠지는 갯벌에 서식하는 어종이다.

서해안의 갯벌과 남해안의 갯벌은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고, 그래서 남해안 갯벌에서만 짱뚱어가 잡힌다.

 

식사후 일몰을 보러 와온 해변으로 향한다.

순천만 일몰의 명소는 용산 전망대와 와온해변이다.

해는 기울어 떨어지는데, 행여나 일몰을 보지 못할까 싶어 날세게 차를 달려 와온해변으로...

간신히 해가 넘어가지 전에 도착한다.

아...순천만 너머로 지는 태양, 그리고 노을.

 

 

 

어부가 갯벌에 내어놓은 좁은 물길이 저녁 노을의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주황 노을이 물로 흘러간다.

 

 

 

 

해는 완전히 넘어갔지만

노을빛은 여전히 남아 점점 그 기세를 떨쳐간다.

주황 노을은 점점 짙어간다.

서쪽 하늘은 해가 떨어진 뒤 10여분을 이렇게 불타오른다.  

 

 

 

 

순천에는 볼 거리가 많다.

순천국가정원에서 찍은 사진은 정말 그림같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순천 낙안성읍은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는데,

늦 봄 송광사 마루에 누워 잠깐 붙였던 꿀잠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매제의 이야기도 귀전에 쟁쟁거리고,

송광사와 선암사를 잇는 흙길은 참 아름다운 길이라고 하더라.

 

가까운 곳에 있는 여수는 또 어떠하고.

봄이 오는 돌산도의 해변 동백꽃길을 자전거로 달렸다는 김훈님의 이야기.

돌산도 끝에 있다는 수직적 고양감과 수평적 무한감이 교차하는 향일암도 있고...

여수 밤바다는 어떠한지 궁금하기도 하고...

 

순천에 또 와야할 이유가 참 많다.

여행의 동력은 자유를 향한 갈망이다. 일상 궤도에서의 일탈, 다시 돌아 올 길이 열려 있는 일탈이 여행이다. 돌아옴을 전제하지 않는 여행은 방랑이며, 돌아 올 곳이 없는 여행은 방황이다. 여행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압도적 두려움은 여행의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과 설레임이 두려움보다 더 크면 여행의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낯선 것을 찾아가는 것이 여행이라면, 익숙한 곳에서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낯선 아름다움을 찾게 된다면 그것 역시 여행이 기쁨이 아닐런지...

 

서늘한 저녁 선들 바람이 불면서 피서객으로 북적이던 나사리 해변이 어두워지며 사람이 자취가 잦아들 즈음에, 모래사장에 서서 문득 서쪽을 바라보니, 등대 뒤로 지는 일몰이 눈을 사로 잡는다. 이 바닷가에 처음 온 것은 아니건만, 그 낯섬이라니, 마치 지중해 연안의 한적한 바닷가에 서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이 낯섬이 여행의 느낌으로 다가 온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도 노을이 살아 숨쉬는 하늘을 바라보며 저녁 노을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낯선 아름다움은 언제 어디서건 불쑥 나타나곤 한다. 그렇게 보면 인생은 그 자체로 여행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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