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김훈/ 생각의 나무

 

<자전거 여행>

꽃피는 해안선- 여수 돌산도 향일암...

김훈은 겨우내 자전거를 타고 달려 달려 남해안에 도착한다. 겨울 장구를 벗어 버리고 가벼운 티셔츠로 꽃피는 해안선을 달리는 자전거, 책 속에서 봄 기운이 화락 달려든다. 어제는 봄 비 속에서 봄을 느꼈지만, 오늘은 책 속에서 봄을 느낀다. 김훈이 봄을 느끼는 방식은 정말 봄 스럽다. 김훈의 꽃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수 돌산도 해안선에 가득한 동백꽃 이야기. 그리고 매화, 산수유, 목련꽃 이야기. 이 꽃 이야기속에 봄을 대하는 김훈만의 독특한 시각이 숨어 있다. 

 

"돌산도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숲은 바닷바람에 수런거린다.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 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21쪽

 

 

 

"매화는 잎이 없는 마른 가지로 꽃을 피운다. 나무가 몸 속의 꽃을 밖으로 밀어내서, 꽃은 품어져 나오듯이 피어난다. 매화는 피어서 군집을 이룬다. 꽃핀 매화숲은 구름처럼 보인다. 이 꽃구름은 그 경계선이 흔들리는 봄의 대기 속에서 풀어져 있다. 그래서 매화의 구름은 혼곤하고 몽롱하다. 이것은 신기루다. 매화는 질 때, 곷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당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21쪽

 

<매화> 

 

<꽃잎이 벚꽃처럼 날릴 때>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끊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이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23쪽

 

 

 

"산수유가 사라지면 목련이 핀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다.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 올린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서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목련 꽃은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툭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목련은 살아 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마감한다.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 것이다." 24쪽

 

 

김훈은 봄을 이야기하면서 꽃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봄을 이야기할라 치면 꽃 이야기를 빼 놓지 않는다. 

봄은 생명의 태동이며, 만물의 시작으로 누구나에게나 봄은 시작의 의미로 다가 온다. 그러나 봄을 대하는 김훈의 생각은 다르다. 

김훈은 봄을 시작과 끝이 있는 존재로 파악한다. 그는 봄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꽃의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 생명의 부활을 찬미하는 이 봄에 말이다.

봄에 이런 사정없는 칼날을 들이댄 이가 또 있었을까?  하지만 봄도 가 버리고 만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김훈은 봄의 관능을 노래한다. 절대 고승의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던 감성의 선을 건드려, 사람의 냄새가 그리워 견딜 수 없게 하는 봄, 출가한 여승의 마음을 헤집어놓고 속세로 돌아서게 하는 봄의 관능을 이야기한다. 

 

13세기 고려 선종 불교의 6대 조사인 충지는 지눌 문중의 대선사였다. 충지는 초봄에 입적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평탄하구나. 너희들은 잘 있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 지팡이 하나로 삶을 마친 이 고승도 때때로 봄날의 적막을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인 지 산사의 어느 봄날 충지는 시 한 줄을 썼다.

아침 내내 오는 이 없어

귀촉도는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이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노래이다. 충지 대선사가 봄 산사의 마루에 앉아 햇빛 가득한 마당과 숲을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봄 기운이 숲에 넘실거리고, 나무들이 두런 두런 깨어나는 봄의 적막 속에, 아침 태양 빛은 마당에 가득했겠지. 봄을 준비하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분주하고, 발걸음도 논으로 밭으로 달려가지만, 반면 산사는 인적없이 조용했을 것이다. 귀촉도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인지 '귀촉 귀촉' 하고 자기의 이름을 불러대며 우는데, 아마도 선사 마음은 고향으로 달려 갔다보다. 도를 깨치는 선사도 한 순간 봄의 품에서 몽롱해졌나 보다.

 

 

설요는 7세기 신라의 젊은 여승이다. 아름다운 이 여승은 꽃피는 봄의 관능을 마냥 산사에 앉아서 견디기가 어려웠나 보다. 시 한 줄 써 놓고 절을 떠나 속세로 내려와 어느 시인의 첩이 되었다고 한다.

 

꽃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

아, 이 젊음을 어찌할거나

 

그 때 이 여승의 나이는 스물하나. "이 여승이 견딜 수 없었던 생의 충동, 위태롭고도 무질서한 생의 충동의 주범은 봄이다. 7세기의 봄이나 13세기의 봄이 다르지 않듯, 올 봄 또한 다르지 않다. 꽃들이 해마다 새롭게 피었다 지고, 지금은 지천으로 피어있다." 김훈도 생의 대책없는 충동을 숨기고 있는 것이리라. 어찌 설요나 충지, 김훈만 그러랴.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김훈은 동백꽃 피어있는 여수 돌산도 해변 도로를 따라 달려 금오산 향일암에 이른다. 높은 암벽위에 자리한 향일암에 오르려면 간신히 한 사람만 지날 수 있을 만큼 좁은 돌틈 사이를 수직으로 가파르게 올라가야 한다. 꽉 끼이는 틈을 통과해 암벽위에 도달한 순간 갑자기 남해가 끝도 없이 무한히 펼쳐진다. 수직적 고양감과 수평적 무한감으로 가득한 향일암에서 김훈은 봄 바다를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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