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의 칼날: 찰스 길리피스 지음/ 이필렬 옮김/ 새물결 출판사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 <쥐라기공원>에서는 호박속에 화석으로 남은 모기의 피로부터 공룡의 DNA를 채취하여 공룡을 복원시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쥐라기'라는 말은 지질학에 나오는 표현이다. 지구의 장구한 역사를 구분할 때 지질시대로 구분한다. 지질 시대는 선캄브리아기,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나누는데, 공룡들이 지구상에 활보했던 시기는 중생대이다. 이 중생대는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로 나뉜다. 공룡은 트라이아스기에 출현하여 쥐라기에 번성하였고, 백악기에 멸종된었다.

 

 

19세기에 시작된 지질학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지질시대를 일컫는 명칭, 캄브리아기 그리고 석탄기, 데본기, 쥐라기, 백악기등의 명칭은 어떻게 지어졌는가? 지질학은 생물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독일의 광산학교의 광물학 교수였던 아브라함 고틀로프 베르너(1749~1817)는 어떻게 다양한 암석들이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을 내놓았다. 모든 암석들은 지구 전체를 덮고 있던 원시 해양의 침전물로부터 생성되었다. 이를 베르너설 또는 수성론이라고 부른다. .

 

 

제임스 허튼(1726~1797)은 화성론을 주장하였다. 그의 저술 <지구의 이론>에 의하면, 과거의 사건은 현재도 작용하고 있는 과정으로부터의 귀납적 유추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으며, 암석이 나타내는 증거에 의해서만 기술될 수 있었다. 지각은 화성 작용에 의한 것과 수성작용에 의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수성작용에 의해 침전된 퇴적층은 지구 중심의 고압 고열의 작용에 의해 단단한 암석으로 변화되었으며 그 팽창력은 해저에서 대륙을 융기시켰다.

 

이후 다양한 지층이 발견되면서, 이 지층들 사이에 체계를 세우는데 고생물학의 화석이 열쇠를 제공하였다. 영국의 무명 측량기사 윌리엄 스미스(1769~1839)는 1791년 특정 종의 화석은 특정 그룹의 지층들에만 존재하고, 다른 지층에는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사실을 이용하여 주요한 암석계를 확정하는 방법을 고안했으며, 1815년 <잉글랜드 및 웨일즈의 지층의 개요>에서 고생물학적 지표를 이용하여 지층을 분석하였다.  

 

 

지층의 이름을 짓는데는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방법 즉 석탄이 발견된 지층을 석탄기, 백악이 발견된 지층을 백악기로 부르는 경우와, 데본기, 쥐라기, 페름기처럼 그 지층이 처음 발견된 지방의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1820년대에 로드릭 머치슨(1792~18710)이 실루리아기를 발견하였고, 에덤 세지위크(1785~1873)이 조수로 데리고 간 그의 학생 찰스 다윈과 함께 캄브리아기 지층을 발견했다.

 

 

1830년경에 찰스 라이엘(1797~1875)의 <지질학 원리>가 출판되면서 지질학은 이전의 아마추어적인 면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지질학 원리>는 지질학이 참된 과학으로 발달하는 것을 방해했던 장애물을 제거하였다. 즉 현존하는 질서와는 다른 질서에 의하여 지구가 형성되었다고 하는 비학문적 전제를 제거했던 것이었다. <지질학 원리>에  의하면 시간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현재 작용하고 있는 힘에다가도 충분한 시간만 주게 되면, 인간의 거처인 지구에 관찰 가능한 변화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변화가 균일하며 시간 속에서 주기적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지질학자들은 고생물학적 지표와 화석 형태의 연속을 가지고 지구의 연대를 수립하였다. 반면에 생물학자들은 지질학적 시대 구분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다. 라이엘이 종의 변이에 대해 단호한 반대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증거를 확인하지도 않고 종의 변화를 인정하는 것은 균일설의 이론에 반하는 것이었기때문이다) <지질학 원리>를 면밀하게 연구했던 다윈은 이 책의 영감을 받아 획기적 과학적 관점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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