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 최인호 지음/ 열림원

 

최인호 작가는 <유림>을 쓰기 위해 3년동안 수십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유림이란 유학의 숲이란 뜻이다. 이 책 <유림>에서는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로부터 시작해서 맹자, 주자, 조광조, 이율곡, 이퇴계등의 중국과 조선의 유학자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정점은 퇴계 이황이다. 공자와 맹자의 전통을 이어받은 주자, 주자로부터 시작된 성리학은 조선의 건국이념이 되었고, 조선은 수많은 성리학자들을 낳는다. 그 중에 퇴계 이황은 주자의 '성즉리(性卽理)"의 사상을 충실히 발전시켜 성리학 최고봉의 자리에 앉아 '해동주자'라 불린다.

 

유학은 오랫동안 거대한 중국의 통치이념으로서 역할을 했고, 조선의 건국 이념이기도 했지만, 정작 우리네가 유학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많지 않다는데 순간 깜짝 놀란다. 서구 문명과 문물에 밀려 보이지 않는 구석에 초라하게 자리한 유학의 실체는 무엇일까? 예로부터 충효를 중시하는 정신은 유학에서 비롯된 것이며, 조선의 철학사를 풍미하던 성리학이니, 또는 양명학이니, 퇴계 이황의 이기이원론, 이율곡의 이기일원론이니 하는 말은 들어 보았지만 도대체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도통 알지를 못했다는 점을 실토해야겠다. 최인호의 유림 1~6권은 유학의 숲이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하여 아시아의 동쪽 작은 나라인 조선에서 이황에 의해 꽃을 피우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유림 1권은 유학의 왕도를 현실 정치에 접목하려다 실패한 정치가 조광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공자가 자신의 사상을 정치에 접목하려다 실패하였고, 맹자 역시 동일한 길을 밟았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한일까? 조광조는 중종의 총애를 받고 혜성처럼 등장하여 유학의 정신을 바탕으로 정치를 개혁하려 하였으나, 훈구파에 밀려 생명을 내어 놓아야 했던 비운의 정치가이다. 조광조와 함께 한 사림파의 앞날이 촉망되던 수많은 젊은 선비들도 사화에 말려 추풍낙엽처럼 스러져 간다.

 

 

 

유림 2권은 공자의 이야기이다. 최인호의 <소설 공자>와 거의 같다. 18년동안 수많은 나라들을 주유하며 자신의 뜻을 펴 보이려 했지만, 패도정치가 만연하던 춘추전국시대에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공자의 꿈은 허망하기만 하다. 고향 노나로 돌아온 공자는 현실정치에 대한 열망을 접고 자신의 학문을 정리하며 저술에 힘쓴다. 

 

 

 

유림 3권은 퇴계 이황의 이야기. 퇴계의 불행했던 결혼생활과 노후에 나비처럼 날아든 사랑 - 퇴계를 향한 기생 두향의 일편단심을 이야기한다. 이황의 부인 권씨 부인은 어릴 때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여자였다. 사화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퇴계는 권질이라는 분을 존경하고 있었는데, 유배되어 간 권질을 방문했다가 그로 부터 간곡한 요청을 받는다. 염치없지만 모자란 딸을 맡아달라는 것이다. 퇴계의 부인 권씨부인은 바로 권질의 딸이었던 것이다. 퇴계는 정신적으로 모자란 부인때문에 평생 마음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한 번도 이를 내색하지 않고 군자의 도로 한결같은 정성으로 부인을 대한다. 퇴계는 가정생활에서 먼저 군자의 도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실제로 이러한 상황을 오히려 자신을 수양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고 한다.

 

퇴계는 나이 사십후반에 임금의 명으로 단양군수로 부임하게 된다. 19세의 기생 두향은 퇴계를 존경하며 연모한다. 퇴계도 두향을 지극히 아낀다. 9개월간의 두향과 꿈같은 세월을 보낸 후 퇴계는 단양을 떠나게 되고 두향과는 영원한 이별을 맞는다. 고향으로 물러나 학문에 정진하고자 했던 퇴계에게는 두향의 사랑이 오히려 거침돌이 될 것이라 여겼던 탓이리라. 이후 두향은 퇴계를 그리워하며 평생 수절하며 지내다 퇴계가 죽은 해 물위에 몸을 날린다. 그리워하면서도 더 이상 만나지 않았던 그들. 퇴계가 두향을 이별하며 남긴 전별시는 가슴이 아린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더라

서로 보고 한 번 웃은 것 하늘이 허락한 것이었네.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봄날은 다 가려고 하는구나." 

 

 

 

 

 

4권은 맹자의 이야기, <소설맹자>와 거의 동일한 내용이다. 맹자는 성선설로 공자의 유학을 형이상학의 경지로 끌어 올렸으며, 제자쟁명의 시대에 수많은 사상가들과의 논쟁을 통해 유학을 지켜내고 유학을 발전시킨 맹장이다. 맹자가 성선설의 근거로 제시했던 사단 -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에서 인의예지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공자는 성인이라 불리고, 맹자는 아성으로 불린다. 유교사상을 공맹사상으로 부를 정도로 유교에 대한 맹자의 기여도는 지대했다.

  

 

 

<유림> 5권은 율곡 이이의 이야기이다. 율곡의 어머니는 유명한 신사임당, 율곡은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명석함을 보여주었다. 태몽으로 용을 보았다고 해서 아명은 몽룡이었다. 율곡의 나이 15세에 신사임당이 죽고, 새로 들어온 새어머니와 형과의 갈등으로 가정에 우환이 있어 고통스런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아마 나이 19세에 불문에 귀의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니련가. 하지만 1여년의 방황끝에 율곡은 다시 유교로 돌아온다. 율곡은 퇴계를 찾아가 2박3일을 머물며 이야기를 나눈다. 퇴계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은 율곡은 퇴계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유학에 정진하고자 하는 듯을 굳히게 된다. 이후 과거시험에 <천도책>으로 장원급제하게 되는데, 그 과거시험의 답안지였던 <천도책>이 소개되고 있다.  

 

 

 

6권, 다시 이퇴계의 이야기이다. <유림> 6권에서는 조선 성리학 역사상 최대의 이슈였던 기대승과과 사단칠정논변이 전개된다. 한참 연배가 아래인 기대승과 편지를 통해

심도깊은 철학적 논의가 이루어진다. 퇴계의 사상에 대한 기대승의 의문제기에 퇴계는 자신의 사상을 돌아보고 미흡하고 잘못된 점은 겸손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이론을 수정한다. 참 대인배다운 모습이다. <유림> 6권에서는 이기론의 역사가 실려있다. 주돈이의 태극사상, 정이 정호 두 형제의 성리론, 유학의 전통과 당시의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주희)의 성리학, 육구연으로 부터 왕양명에 이르는 양명학등등...일종의 정치사상으로 시작된 유학이 어떻게 형이상학적 철학으로 발전되었는지 그 경위를 흥미있게 보여준다. 성즉리(性卽理)는 성리학의 신조, 심즉리(心卽理 )는 양명학의 신조...양명학은 선불교와 유사하다. 주자 역시 젊어서는 선에 심취했으나 이연평을 만나 성현들의 책을 읽은 이후 유학의 오묘함에 눈을 뜬다. 아버지 주송으로부터 천자문을 배우던 중 아버지가 하늘을 가리키며 '천'이라고 이야기하자, 하늘위에는 무엇이 있느냐고 질문한 주희는 어른이 되어 물질적인 우주의 배후에는 더 높은 근본 원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수십년이 지난 후에 그것이 '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퇴계가 9살때 숙부로부터 '성즉리'를 배우다가, '리'가 무엇인가라고 숙부에게 물어 숙부를 당황케 하였다. 숙부는 대답을 미루고, '직접 생각해 보아라'고 말한다. 퇴계는 몇일을 생각한 끝에 '리'는 '마땅히 그래야 할 (시)라고 생각된다'고 숙부에게 대답한다. 퇴계는 이후 평생 '리'라는 화두를 붙잡고 파들어간다. 퇴계의 이기이원론의 원류는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매화를 극진히 좋아했던 퇴계는 '매화에 물을 주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난다.

 

'읽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어를 읽다  (0) 2015.08.06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1  (0) 2015.07.14
다산 - 그에게로 가는 길  (0) 2015.05.27
소설 맹자 / 묵자와 양자  (0) 2015.05.13
소설맹자 /순자  (0) 2015.05.12

<소설맹자> / 최인호 지음

 

■ 묵자와 양자

 

■ 묵자의 사상 

 

묵자는 중국 역사상 가장 특이한 사상가이다. 묵자는 유가의 제자였으나 유교의 문제점에 실망한 이후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을 발전시킨다. 묵자가 공자에게 느낀 최초의 불만은 봉건제도가 지닌 모순으로 부당하게 고난을 겪어야 되는 백성들의 비참한 현실에 눈을 떴던 데 있다묵자 자신도 천민 계층 출신으로 동일한 고난을 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유가가 통치계급의 입장을 옹호하며 예악을 위주로 하여 서주 초기의 봉건 사회를 재현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큰 반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묵자는 사람들의 가깝고 먼 관계와 존비 관계를 엄격히 따져 봉건 계급 제도를 확고히 하려는 유가의 태도, 그리고 예악이나 따지며 귀족이나 제후들에게 기생하는 유가의 비생산성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묵자의 사상을 전하는 책 <묵자>는 유가의 모순을 공격하는 통렬한 비판적 성격을 띠고 있다. 

 

묵자의 사상의 핵심은 '겸애'이다. "자기를 죽여 천하를 보존케 할 수 있다면" 그 길을 따라 "자기를 죽여 천하를 이롭게 하"려는 사상이 묵자의 사상이다. '천하의 모든 나라도 하늘의 고을이요 천하의 모든 사람도 하늘의 신하이니, 하늘은 모든 신하들인 만 백성을 차별없이 공평하게 사랑하고 있다.' 이러한 공평한 하늘의 사랑은 겸애라는 사상으로 발전된다. '겸'이란 자기와 남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 자기와 남의 구별이 없는 것차등을 두지 않고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대해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묵자의 겸애론은 나와 너의 구별이 없는 절대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이다. 

 

묵자의 사상은 평화와 사랑을 기치를 드 높인다. 묵자의 평화는 비폭력 평화가 아닌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여 평화를 이루려는 현실참여적 평화였다. 묵자의 사상을 따르는 제자들은 하나의 학파를 초월한 일종의 종교 집단을 형성했다.

 

 

 

■ 양주의 사상

 

양주는 노자가 주창한 자연주의 옹호자로 도가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이다. 양주는 '삶을 대하는 유일한 방식은, 인위적으로 방해하거나 바꾸려 하지 말고 삶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라고 주장함으로 즐겁게 사는 것이 바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며, 이는 남이 아닌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지나친 집착과 탐닉은 지나친 자기 억제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고, 남을 돕든 사랑하든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려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천하는 안정될 것이다." 라는 말은 노자의 사상인 '무위'를 강조한 말이다. 저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더욱 더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판단한 그는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야 말로 세상을 구할 방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야말로 실로 못하는 일 없이 다 하고 있다'(무위무불위) 노자적 무위사상에, '내 터럭 하나로 온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해도 내 터럭 하나라도 뽑아 주지 않겠다.'는 철저한 무위를 덧붙였던 것이다. 양주의 눈으로 보면 묵자의 겸애는 '유위'의 극치였다. 이러한 사상으로 인해 양주는 극단적인 이기주의, 개인주의, 쾌락주의자로 간주된다. 반면에 묵자는 극단적인 이타주의자집단주의자엄격한 율법주의자로 간주된다. 

 

하지만 양주는 백가쟁명의 시대에 학문의 진리를 찾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하였던 또 하나의 횃불이었다. 양주와 관련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다기망양'이란 고사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어느날 양자가 사는 이웃집의 양 한마리가 달아났다. 그래서 그 이웃 사람은 자기 집 사람들을 다 동원하여 양을 찾으러 나서도록 한 후 양주에게도 찾아와 사람을 보내달라고 도움을 청하였다. 그저라 양자는 이렇게 물었다. "허허, 양 한마리를 찾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단 말이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웃 사람이 대답하기를, "양이 갈림길이 많은 길 쪽으로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이말을 들은 양자는 갑자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하루종일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았다. 이를 본 양주의 제자 심도자는 왜 그런지 궁금해 하는 후배 맹손양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큰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린 것처럼 학문하는 사람들은 다방면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또 학문은 원래 근본은 하나인데, 그 말단에 와서 이처럼 달라지고 만 것이다. 따라서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은 것이라네"

 

이런 이야기를 통해 보자면 양자를 극단적인 개인주의자 쾌락주의자라고 평가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양자도 여러 갈래의 길로 사라진 잃어버린 양, 즉 학문의 진리를 찾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하였던 백가쟁명의 난세 속에 타오르던 또 하나의 횃불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다.

 

 

■ 유학과 묵자, 양자

 

유학은 이타적인 묵가의 겸애사상이나 이기적인 양자의 사상과는 달리 자기를 위하면서도 남을 위하는 중용을 내세우고 있다. 유가에서 말하는 사랑은 차별성을 유지하고 또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다.  유가의 사랑은 인간 본성에 근거한 것으로 만천하에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인륜관계는 반드시 친소(친함과 소원함)와 원근이 있는 것처럼 사랑을 펴는 데도 또한 선후의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유가의 논리였다.

 

맹자는 굳이 묵자처럼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발꿈치의 털까지 다 닳아 없어질 만큼 두루 사랑하고, 사람을 두루 이롭게 하기 위해서 분골쇄신하지 않아도, 인간의 심성속에 는 선천적인 선의 뿌리인 선근(양심)이 있어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선한 마음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여 '성선지설'을 주장한 것이었다. "측은 지심, 수오지심, 공경지심, 시비지심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다. 측은지심은 인이요, 수오지심은 의이며, 공경지심은 예이고 시비지심은 지이다. 인의예지가 외부에서 나에게 스며드는 것이 아니요, 내가 본래부터 갖고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맹자는 말하고 있다.

 

 

■ 묵자와 양자

 

묵자가 유가에서 파생되었다면 양주, 즉 양자는 노자에서 파생되었다. 묵자가 유가의 모순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극대화 시켰다면 양자는 노자의 사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극대화 시켰다. 묵자와 양자는 심각한 양극단의 대립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양자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묵자의 겸애론을 실현 부가능한 공리공론으로 보고 맹렬히 비판한다. 맹자는 이 두 유파를 모두 비판함으로 유가를 더 우위의 사상으로 정립하고 있다 

 

 

■ 영화 '묵공'내에 나타난 묵자의 사상

 

'읽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인호 장편 소설 유림 1~6  (0) 2015.06.04
다산 - 그에게로 가는 길  (0) 2015.05.27
소설맹자 /순자  (0) 2015.05.12
소설 맹자  (0) 2015.05.11
등대로  (0) 2015.04.29

<소설 맹자> / 최인호 지음/ 열림원

 

 

■ 순자

 

순자는 맹자보다 50년 후에 태어난 유가 사상가였다. 본디 공자의 가르침에는 어짊과 의로움, 또는 충성과 믿음과 같은 덕을 숭상하는 내면적인 정신주의와 실행과 예의를 존중하는 외면적인 형식주의라는 두 가지의 양면이 있었다. 정신주의적인 면은 증자를 거쳐 맹자에게서 크게 발전하는 데 비해 형식주의적인 면은 자유와 자하를 거쳐 순자에게로 계승되었다. 따라서 맹자가 주관적이고 이상적이었다면 순자는 객관적이고 현실적이었다.

 

 

■ 순자의 사상

 

공자와 맹자는 하늘을 도덕적인 권위의 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중국 사람들은 자연과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하늘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은 착하고 악함에 따라 사람들에게 복을 내리기도 하고 화를 내리기도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순자는 이러한 전통적인 하늘관을 부정하면서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분리시켰다. 자연에는 자연의 법칙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법칙이 있다는 것이었다. 순자는  "하늘은 만물을 생성하게는 하지만 만물을 분별하지는 못하며, 땅은 사람들을 그 위에 살아가게는 하지만 사람들을 다스리지는 못한다." 라고 말한다.  

 

이처험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분리시킨 순자의 혁명적인 생각은 한편으로는 무당, 점쟁이에 현혹되어 길흉화복을 믿는 미신행위를 멀리하도록 하는 긍정적인 사회현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또 한 편으로는 이러한 생각에서 법가의 사상이 태동하게 된다. "하늘과 땅은 군자를 낳았고, 군자는 하늘과 땅을 다스린다." 순자의 가르침대로라면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군자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 땅을 다스리고 백성들을 다스려야 한다. 백성을 다스릴 이 일정한 법칙이 바로 법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순자는 법의 중요성을 누누이 이야기한다. "법은 다스림의 시작이고 군자는 법의 근원이다."

 

순자의 '성악지설'도 이러한 논의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즉 사람의 본성이 태어날 때부터 악하기 때문에 반드시 '스승과 법도에 따른 교화와 예의의 교육' 있어야 하는데, 그 교화와 교도의 수단이 바로 법이라는 것이었다. 순자는 맹자가 주장한 사단지심도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도덕능력이 아니라 반드시 스승과 법도의 가르침에 의해서 고쳐지는 후천적 '작위'라고 말한다. 순자가 주창하는 성악지설의 골수는 작위이다. 맹자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양심을 근거로 사람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순자는 사람의 본능을 근거로 사람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본능은 나면서 부터 이익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소리와 좋은 빛깔을 추구하는 욕망이다. 이를 절제하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작위'이다. '본성으로 본다면 성인이나 여러 다른 사람들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성인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것은 작위이다.'라고 말함으로, 순자는 인간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악해서 인위(작위)를 거쳐야만 바르게 교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순자와 법가 

 

법가의 창시자인 한비자, 그리고 진시황을 도와 강력한 법으로 통치한 이사 모두 순자의 제자였다는 것은 흥미롭다. 법을 중시하는 순자의 사상은 그의 제자인 한비자에게서 극도로 발전해 법가를 이루게 되었다. 법가는 중국 고대 철학의 한 학파로 일종의 법치사상이다. 전국 시대에 노예들의 끊임없는 폭동과 신흥봉건 지주 계급의 발흥으로 인해 기존의 유가적 예치가 점점 붕괴되어 효력을 상실하자 엄격한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자고 주장하는 사상이었다. 이사는 순자로부터 학문을 배웠으나 유가보다는 법가에 가까웠다. 그는 진나라의 재상으로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는 데 일조를 담당했으며, 대제국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통치자와 국가 권력을 강화해야 하고, 오직 국가의 강력한 통제와 황제에 대한 절대 복종을 통해서만 사회적 통합이 가능하다고 믿고, 엄격하게 상벌을 내리는 법률체계로써 다스렸던 재상이었다.

 

순자는 맹자의 성선지설을 공격하여 성악지설을 주장하였고, 그의 제자 이사는 천하를 통일한 후에 분서 갱유를 단행함으로, 결국 순자는 전통적인 유가로부터 이단자처럼 취급받고 소외되었다. 더구나 이사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악랄한 간신으로 간주되고 있어, 이러한 이유들로 순자는 유가에서 이단적이라고 배척을 받게 된다.   

 

 

■ 맹자와 순자

   

맹자가 공자의 인의 사상을 구체화시켰다면, 순자는 예악 사상을 구체화했다. 유학의 종지를 수기치인이라고 한다면, 맹자는 수기(자신을 수양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고, 순자는 치인(다스림)에 주안점을 두어, 두 사상이 함께 어우러져 유학이 더욱 풍성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읽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산 - 그에게로 가는 길  (0) 2015.05.27
소설 맹자 / 묵자와 양자  (0) 2015.05.13
소설 맹자  (0) 2015.05.11
등대로  (0) 2015.04.29
독일인의 사랑  (0) 2015.04.20

<소설 맹자> / 최인호 지음/ 열림원

 

동양의 정신을 지배해 온 거대한 강의 발원지는 유교의 시조 공자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수많은 제자백가의 사상중 하나에 불과했던 유가사상이 거대한 강줄기를 이루게 된 것은 백가쟁명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고사직전에 있던 유가를 우뚝 세운 공로자는 공자가 죽은 지 107년 후에 태어난 맹자. 맹자는 유가의 투사가 되어 다른 사상과의 수많은 논쟁에서 승리하고 유가사상을 체계화하여 중국의 중심사상으로 정립한다.

 

맹자는 기원전 372년 추나라에서 태어난다. 노나라에서 권력을 좌지우지하던 삼환씨중 하나인 맹손씨(중손씨)의 후손이다. 그는 편모슬하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맹자의 어머니의 교육열은 대단하여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번이나 이사를 하였고, 짜고 있던 베를 단숨에 잘라버리고는 '공부를 중단하는 것은 다 짠 베를 잘라 버리는 것과 같다'라는 불호령으로 맹자에게 잊지 못할 교훈을 베푼다. 여기서 '맹모삼천', '맹모단기'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되었다. 맹자는 삼십대에 이미 유명한 스승이 되었고, 삼십팔세에 자신의 사상을 펼치려 제, 양, 진나라를 주유하며 23년의 세월을 보낸 후 예순살에 고향 추나라로 돌아와 제자들과 함께 책을 저술하고 학문에 정진한다. 그리고 기원전 289년 여든 세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게 된다. 

 

맹자가 살던 전국시대는 백가 쟁명의 시대였다. 당시 수백의 학파들이 있었고, 중심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10대학파에는 유가외에 도가, 묵가, 법가, 음양가, 명가, 종횡가, 농가, 병가, 소설가, 잡가등이 있었다. 맹자는 이와 같이 많은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는 백화제방의 시대에 수많은 논쟁속에서 유학을 지켜내면서 유가의 이론을 체계화하고 심오한 사상을 다듬어 나갔다. 그래서 맹자를 일컬어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기도 하고, 유가의 검객, 검투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 맹자의 경세지략

 

맹자가 처음 찾아간 나라는 전국시대 최고의 변설가로 알려진 '순우곤'이 있던 제나라. 맹자는 제나라 위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순우곤과의 설전에서 승리한다. 제나라 선왕을 만난 맹자는 '무항산무항심'의 경세책을 권한다. "일정한 소득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도 없다" 맹자는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백성들의 경제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형이상학적인 도덕만을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인간다운 삶을 살게하는 경제적 기반부터 다까야 함을 이야기함으로 현실주의의 면모도 보인다.

 

 

■ 맹자의 호연지기 

 

맹자의 제자 공손추가 "선생님께서 제나라 경상의 자리에 오르셔서 도를 행할 수 있게 되신다면 이로 말미암아 패업을 이루거나 왕업을 이룬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마음이 동요되십니까, 동요되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질문하자, "나는 마흔살이 되었으니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공자는 나이 마흔을 '불혹'이라 했지만 맹자는 '부동심'이라고 했다. 공손추가 다시 "마음이 동요되지 않도록 하는 데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하자, "오직 한 가지 일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 부동심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다고 대답한다. 이에 공손추가 "스승께서는 어디에 장점이 있으십니까?"라고 묻자 맹자 왈 "나는 호연지기를 잘 기르니라."라고 대답했다. 호연지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호연지기는 지극히 크고 강한 것이니, 곧은 마음으로써 잘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하늘과 땅에 가득 차게 된다. 또한 호연지기는 의로움과 도에 달려 있는 것이니, 이것이 없어지면 쭈그러든다. 호연지기는 의로움을 거듭하여 만들어지는 것이지 갑자기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있어 효과를 미리 성급하게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도 잊지 말아야 하며 억지로 조장하지도 말아야 한다." 라고 대답했다.

 

호연지기란 의와 도가 쌓여 충만함으로써 저절로 생기는 것으로, 정도를 행하여 절도를 지키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대장부의 기상이다. 오늘날 공명정대한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호방한 마음이나 또한 도의에 뿌리를 박고 공명정대하여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는 도덕적 용기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쓰인다.

 

 

■ 맹자의 성선지설

 

중용에 이르기를 사람의 본성은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으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준 성품을 성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하고, 도를 닦는 것을 교라고 한다.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라 했다. 그러나 공자는 하늘이 내려준 천명을 인간의 본성이라고만 말하였지 무엇이 인간의 본성인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한 바가 없다.

 

공자의 사상과 행동의 밑바닥에는 하늘 또는 하느님에 관한 확고한 믿음이 깔려 있었지만, 공자는 인간의 본성이나 천도와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는 심도깊게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맹자는 공자가 말한 천명과 천도가 무엇인지에 집중적으로 몰두하였다. 이렇게 하여 맹자는 공자의 유가 사상을 형이상학으로 이끌어 올렸다. 맹자는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성'이라고 한다는 명제를 깊이 숙고하여 천성의 본질과 천성의 근본원리를 사유와 직관에 의해서 집대성하여 그 유명한 '성선지설'을 주창하게 되었다. 공자의 원시 유교가 학문적으로 체계화도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위대한 철학자 맹자 때문이었다.

 

 

■ 맹자의 핵심사상 사단설

 

맹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사단설을 주장한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의 단서이고, 부끄러워하고 죄를 미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이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할 수 없다고 하는 자는 자신을 해치는 자이고, 자기 임금은 할 수 없다고 하는 자는 자기의 임금을 해치는 자이다. 무릇 사단이 나에게 있는 것을 모두 넓혀서 채울 줄 알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며, 샘물이 처음 솟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진실로 이것을 세울 수 있다면 사해를 보호할 수 있거니와 진실로 이것을 채우지 못하면 제 부모조차 섬길 수 없을 것이다."

 

남을 사랑하여 측은하게 여기는 측은지심,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수오지심, 양보하고 공경하는 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시비지심, 이 네가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맹자의 주장은 후에 사단 칠정론으로 확대된다. 맹자의 성선지설은 맹자가 첫번째로 언급한 바로 측은지심에서 나온다. 인간에게는 태어나기 전부터 선천적으로 선을 행해 가는 본성이 있다는 말이다.

 

 

■ 인간의 본성이 선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불선해지는 이유

 

맹자는 사람이 불선해지는 이유로 세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함닉, 주위 환경의 제약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그 속에 빠짐으로 성선의 기초가 허물어져 드러나지 못한다.

즉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 환경과 혼잡한 사회악과 같은 외부의 상황 때문이다. 둘째, 곡망, 인의지심이 일어나지만 사리사욕의 훼방으로 성선의 마음을 잘 보존하여 기르지 못하고 오히려 소멸되기 때문이다. 세째, 방실, 반성할 줄 몰라 마음을 보존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양심이 작용하지 못하는 타락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어리석음, 게으름과 같은 놓아버린 마음(방심)이 그것이다. 이 놓아 버린 마음이야말로 타고난 성선을 파괴하는 최고의 악행인 것이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며 그 마음을 놓아버리고 찾을 줄 모르니, 아아, 슬프도다, 사람이 개나 닭이 나간 것이 있으면 찾을 줄을 알지만 마음을 놓아버린 것이 있으면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없다. 바로 그런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읽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맹자 / 묵자와 양자  (0) 2015.05.13
소설맹자 /순자  (0) 2015.05.12
등대로  (0) 2015.04.29
독일인의 사랑  (0) 2015.04.20
소설 공자  (0) 2015.04.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