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Walden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아득한 그리움을 자극하던 책 월든, 서점에서 보자마자 사서, 집으로 돌아온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펴본다. 자연과 벗삼아 월든 호수에 통나무집을 짓고 2년동안 살았던 소로우가 남긴 불후의 책이라는 타이틀은 단번에 나의 관심을 사로 잡았었다.

 

미국 동북부의 메사추세츠주의 아름다운 마을 콩코드에서 1817년 태어난 소로우는 거의 평생을 고향마을에서 살아가면서 주변의 숲과 강, 호수와 언덕을 다니며 자연을 관찰하기를 즐겼다. 하바드대학을 졸업한 후 여러해가 지나 1845년 그의 나이 28세때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숲 속에서의 생활을 실현에 옮긴다. 소로우는 그 해 3월말 콩코드 마을 가까운 숲 속에 있는 월든 호수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1847년 9월까지 숲속 생활을 한다. 

 

<월든>은 그 때의 생활을 기록으로 옮긴 작품이다. 초록색 책 표지에 희미하게 보이는 호수가 숲으로 둘러싸인 월든 호수이다. 월든호수는 길이가 약 800미터, 폭이 200~300미터, 둘레가 3킬로미터쯤 되는 작은 호수이다. 소로우의 표현을 빌리면 

 

"이 호수는 길이가 반 마일에다 둘레의 길이가 1 3/4마일에 이르는 맑고 깊은 초록빛의 우물이며 61에이커 반쯤되는 넓이를 가지고 있다." 265p

 

 

인근 마을과는 꽤 떨어져 인적이 거의 없는 숲속에 있는 이 작은 월든 호수는 소로우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아름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고, 오로지 소로우에게만 그 비경을 펼쳐놓았다. 소로우는 사랑하는 월든 숲속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무엇을 바랬던 것일까? 그리고 무엇때문에 <월든>이라는 책을 썼던 것일까? 

 

시 한 줄을 장식하는 것이

나의 꿈은 아니다.

내가 월든 호수에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

나는 나의 호수의 돌 깔린 기슭이며

그 위를 스쳐가는 산들바람이다.

내 손바닥에는

호수의 물과 모래가 담겨 있으며,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내 생각 드높은 곳에 떠 있다.

 

소로우는 무엇보다도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게다.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삶은 그에게는 신과 천국에 가까이 가는 행복의 길이었다. 더 나아가 그는 세속적 성공을 꿈꾸며 인생을 살아가는 삶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삶의 양식을 보여주고 싶었을거다. 자연과 함께 하는 단순한 삶, 단순성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그는 노래한 것이다.

 

<월든>은 산문이기에 앞서 시적인 작품이라 느껴진다. 나는 '겨울의 호수'에 뒤이은 마지막 17장 '봄'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걷잡을 수 없이 '봄'의 풍경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소로우는 월든 호수와 그 주위 숲속에 봄의 여신이 그 투명한 옷자락을 스치면서 봄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모습을 상상의 모습으로가 아니라 바로 눈앞에서 보면서 그 정경을 그려냈다. 그의 기록의 대다수가 바로 체험과 관찰과 사색의 기록이다.  

 

"숲에 들어와 사는 생활의 한 가지 큰 매력은 봄이 오는 것을 지켜볼 수 잇는 여유와 기회를 갖게 된 점이었다." 447p

 

겨울 호수가 잠에서 깨어나는 "쩌-엉"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 소리는 '호수의 천둥소리'라고 불린다.

 

"내가 도끼머리로 얼음을 치자 마치 정이라도 친 것처럼 혹은 팽팽한 북을 친 것처럼 사방 몇 십 미터에 소리가 울려퍼져서 나를 놀라게 했다. 해가 뜬 지 한 시간 후 언덕 너머로 비스듬히 비치는 태양 광선의 영향을 받으면서 호수는 울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호수는 마치 잠을 깬 사람처럼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면서 점점 더 시끄러운 소리를 냈으며 이런 상태가 서너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446p

 

흥에 겨운 봄기운을 소로우는 이렇게 노래한다.

 

"마침내 햇살은 직각을 이루고 따뜻한 바람은 안개와 비를 몰고와서 눈 덮인 둑을 녹인다. 안개를 흩어버리는 태양은, 향을 피우듯이 김이 모락모락 오른 적갈색과 흰색이 교차된 풍경위에서 미소짓고 있다. 졸졸 흐르는 수많은 실개천과 개울의 음악에 흥이 겨운 나그네는 이 섬에서 저 섬으로 뛰어 건너며 이 풍경속의 길을 간다. 개울들의 혈관에는 겨울의 피가 가득차서 떠내려가고 있다." 450p

 

난 상상 속에서 소로우와 함께 숲속 생활을 한다. 그러다 자연에 대해 너무도 무지한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전에 자연은 과학의 이름으로 내게 존재했었다. 이전의 자연은 나에게 진정한 자연이 아니었다. 숲 속에 있는 생물들, 나무들과 꼭과 풀들은 딴 나라, 딴 세계였었다. 

 

떡갈나무, 자작나무, 느릎나무, 밤나무, 가문비나무, 삼나무, 솔송나무, 옻나무, 사시나무, 오리나무, 월귤나무, 백송나무, 참피나무, 서어나무, 산딸나무, 감탕나무. 더러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고작 내가 아는 건 소나무뿐...  

 

패랭이꽃, 가래풀, 심장초, 부들, 물레나물, 돼지풀, 괭이밥, 개밀, 창포, 부들, 박주가리, 허클베리, 넌출월귤, 로마풀, 노박덩굴... 숲속에 피어있는 이름없는 꽃들도 실상은 다 이름이 있다. 다만 내가 모를 뿐. 

 

되강오리, 도요새, 물수리, 개똥지빠귀, 딱새, 티티새, 들꿩, 퍼치, 피라미, 황어, 기름종개, 메기, 송어, 장어, 강꼬치고기, 소금쟁이, 물매암이.우드척, 수달, 사향쥐... 숲 속과 호수에 사는 아름다운 동물들...

 

수많은 식물과 동물들의 이미지를 찾아 보는 것도 하나의 큰 재미였다. 밖을 나섰을 때 나의 눈은 아파트 정원에 심겨진 나무들과 꽃들의 팻말을 향하고 있었다. 

 

소로우의 철학은 무엇인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는 블랙홀과 같아서, 자연과 함께 할 여유의 시간의 수분을 빨아들여 삶을 메마르게 한다.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얻으면, 그에 만족하고 나머지의 시간은 자연과 벗하여 살아가며, 영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데 보내라. 이것이 가치있는 행복한 삶이다. 이것이 소로우의 단순성을 향한 철학이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법정과 같은 인물들은 소로우와 같은 철학을 지니고 있다. 간디는 "나는 큰 즐거움을 가지고 <월든>을 읽었으며, 그로 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법정은 열반에 들기까지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영국의 시인 예이츠는 "한 때 나는 <월든>을 읽고 아니스프리 섬에서 소로우와 같은 생활을 해보려는 야심을 가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단순성의 미학은 제1장 숲 생활의 경제학에서 어떻게 보면 지나치리만큼 편협하게 전개되고 있다. 토를 달고 싶은 마음도 들게 된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가장 절실한 체험에서 우러나온 <월든>의 경이로운 문장은 우리의 마음의 우물속에 들어앉아서 자연에 대한 그리움의 샘물을 끊임없이 솟구쳐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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