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웅진 지식하우스

 

이윤기는 소설가이자 번역가이다. <하얀 헬리콥터> <하늘의 문>과 같은 소설도 있고, 각별히 신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번역가로 정평이 나 있는데, <장미의 이름>, <그리스인 조르바>등은 유명하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는 이윤기의 글들을 모아 놓은 일종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기는 하나 그것을 목표로 쓰여진 책은 아니다. 차라리 이 책은 인간 이윤기가 누구인지에 답하는 글이라 생각된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 중 몇가지 인상적인 점중 한가지는 '날려먹기'와 '다시쓰기'이다. 이것은 글쓰기에서 퇴고, 즉 글 다듬기가 얼마나 주요한 요소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나에게 상을 안겨준 작품들,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대부분의 작품들은 '날려먹기'와 '다시쓰기'의 아픈 경험과 관련이 있다. 글이 술술 풀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술술 풀린 글, 글쓰기의 고된 노동을 거의 면제받은 듯한 글로써 나는 호평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늘 아프다. 87쪽

 

이 글을 읽으니 유명한 카알라일의 일화가 떠오른다. 그의 유명한 작품 <프랑스 혁명사>는 '날려먹기'와 '다시쓰기'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존 스튜어트 밀과 우정과도 잇닿아 있는 교훈적인 이야기가 있다.   

 

카알라일 이야기  ☞ http://blog.daum.net/ant45oks/8792822

 

그의 글중에 고된 인생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격려가 되는 말도 있다. 인생도 나름의 글쓰기련가?

 

겨울이 오고 있는데도 나는 화분 중 몇 개는 집 안으로 둘여놓지 않고 있다. 겨울을 경험하지 않으면 다음 해 꽃을 피우지 못하는 식물도 있다. 89쪽

 

인생살이에 대해 한 문장 더 덧붙이면

 

약삭빠르게 찾아낸 지름길은 종종 먼 길이 되는 수가 있다.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117쪽

 

그래. 글쓰기도 인생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이윤기는 글쓰기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고, 글쓰기 자체가 인생이었지만, 우리네 글을 쓰지 않는 사람도 사실은 우리의 몸으로 인생이라는 거대한 원고지에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겠지.

 

 

 

 

 

<번역에 대하여>

 

이윤기는 '번역은 우리말과의 씨름이다'라고 정의한다. 번역을 잘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가 추천하는 것은 세가지이다.

 

첫째로 사전과 싸워야 한다. 자신이 사용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사전과 싸워야 한다. 그 과정을 지나면 이제는 펄펄 살아있는 저잣거리의 입말을 사용하기 위해 사전을 버리는 싸움을 해야 한다.

 

둘째, 어구와 어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야 한다. 영어의 복문의 종속절은 되도록 우리말의 어구로 정리하여 단문으로 만들면 훨씬 이해하기 쉬운 글이 된다.

 

세째, 살아있는 표현을 찾아 내는 일이다. 원문의 배후에 숨어 있는, 푹 익은 우리말을 찾아내는 일이다. 예를 들어 A littel learning is a dangerous thing. 을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말로 번역하는 일처럼. 

 

 

번역과정에서 일어나는 언어의 변화가 '단순한 물리적 변화'여서는 안된다. 텍스트의 문장이 우리말로 변하게 하되 화학적으로 변해야 한다. 103쪽

 

 

이윤기는 번역작업이 이루어 지는 과정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먼저 원문을 해체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은, 해체한 원문에 대응하는 역어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우리말 문장이 짜이면 이제 이걸 천칭에다 다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원문의 말결은, 역문의 뉘앙스와 동일한가? 동등한가? 등가를 보증할 수 있는가? 정확하게 대응하는가?" 133쪽

 

 

 

이윤기는 글쓰기를 통해 진리를 내 보이고 싶어했다. 오랫동안 그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 있었지만 결국은 패배를 인정하고 만다. 그러나 단지 진리의 한 점만이라도 건드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토로한다. 그의 글쓰기와 번역은 진리에로의 부단한 접근이었다. 

 

 

'번역하는 행위'는 역어라는 이름의 직선으로써 원어 텍스트라고 하는 원의 한 점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가는 행위이다.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삶의 현상은 '원어 텍스트', 내가 부리는 언어는 '원어'의 한 점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가는 운명에서 조금도 자유롭지 못한 '역어'이다. 직선에 지나지 못하는 나의 언어로써 원에 가까운 원융한 진리를 그려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나는 단지 한 점만을 건드리고 지나갈 수 있을 뿐이다. 불립문자가 나에게 절망만을 안기고 있지는 않다. 다가갈 수 있을 뿐이다. 다만 건드릴 수 있을 뿐이다. 298~299쪽

 

 

 

<목차와 딸린 말>

 

1. 글쓰기는 내 몸을 가볍게 한다.

'멋있게 보이고 싶다고 제 생각을 비틀지 마라'

 

2. 옮겨지지 않으면 문화는 확산되지 못한다.

'번역을 할 때 말의 무게를 단다고 생각하라'

 

3. 문학의 정점에 신화가 있다.

'당신의 글에서 당신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져야 한다'

 

4. 우리말 사용설명서

'유행하는 언어에도 보석같은 낱말이 무수히 반짝인다'

 

5.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궁극적인 진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다면 신화의 언어를 보라'

 

 

 

<이윤기가 추천하는 책과 사람들 일부>

 

-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딸아이에게 추천해 준 책

 <짧은 글 긴 침묵> <예찬> 미셸 트루니에 지음/ 김화영옮김

- 미셸 트루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 김화영의 저작들

- <리진 서정시집>

-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플루타르코스 영웅열전>

   <변신이야기> <아이네이아스>

-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그리스인 조르바>,

   카다레의 <H 서류>

- 아름다운, 지나치게 아름다운 책들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나생문)>,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미시마 유키오의 <킨가쿠지(금각문)> <4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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