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춥지만 오히려 겨울 바다의 매서운 바람이 그리워 바닷가로 나섰다. 활처럼 등을 굽은 광안리 백사장의 저 쪽 끝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저 끝까지 1,5 킬로미터쯤 될까? 오늘은 저 끝까지 한 번 걸어보리라 마음 먹었다. 한참을 걷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아직 까마득하여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오래전 중학교 다닐 때 매일 하교길에 대하던 길이 생각났다. 집에 다다르기 직전에 400~500미터 쭉 뻗어 있던 길, 학교 갔다 돌아오는 배고픈 길, 뙤약볕에 그 길은 끝이 없는 길처럼 길게 느껴지던 그 길. 까마득하게 보이는 그 길을 터벅터벅 걷다 보면 어느새 그 끝에 도착했고, 한 발 한 발 걷는 걸음이 모여 결국 다 다랐구나. 참 신기하기도 하다고 생각 했었다. 인생의 길도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걷가 보면 어느 새 그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먼 길이라 할지라도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한 발걸음에 당해 낼 재간이 없을테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얼마나 멀 지 알 수는 없어도 중단하지 않고 가다보면 어느새 그 곳에 도달해 있겠지.

 

돌아오는 길은 백사장, 마른 모래위에서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발이 푹푹 빠진다. 하지만 물기를 머금은 모래사장은 마른 모래보다 단단하기에, 파도가 오락가락하는 백사장 발치를 걸었다. 문득 파도가 간지르듯이 올라 왔다 도망치는 젖은 백사장은 길게 드리워진 드레스 자락,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드레스 자락에 달려 있는 레이스처럼 보였다. 파도는 밤 낮 가리지 않고 밀려온다. 넘지 못한 한계가 있음이 분명한데도 여전히 또 밀려와 넘실거리고, 물러갔다 또 다시 밀려온다. 언제부터 파도는 밀려옴의 반복을 되풀이 해 왔을까? 셀 수도 없이 장구한 세월동안, 보는 이가 없을 때에도 한결같이 밀려왔다 밀려갔겠지. 저 태고의 바다가 존재하던 그 때부터, 잠도 자지 않고, 쉼없이. 잠잠히 너울거리다가, 때로는 분노한 악마처럼 날뛰며 모래사장을 단숨에 넘어 삼키기도 했겠지. 더 이상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을 호시탐탐 엿보듯이 끊임없이 두들기는 두들김은 누구의 의지련가. 그건 바다의 의지, 물은 낮은데로 임하지만, 때로는 높은 곳을 선망하기도 하는가보다.

 

바닷가 해변에 한 무더기의 조개 껍질. 시간과 파도에 마모되어 부드럽게 매끄럽게 다듬어진 조개껍질과 조그만 차돌. 조개껍질은 예전 생명의 흔적, 이제는 생명이 떠나 버린 화석, 해체되고 분해되는 것을 막을 힘이 없는 모래의 예고편. 모래는 자연과의 합일로 가는 길목이다. 살아서도 자연이더니, 생명의 힘이 사라져 버려서도 자연이구나. 인생도 마찬가지. 자연으로 태어났다 자연으로 돌아간다. 대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다. 바람이 불어 모래가 날려도 백사장은 여전하듯 대자연은 언제나 그 본질로 그 자리에 있다. 인생이 오던 가던, 무심하게. 인생은 억겁의 시간속 찰라의 순간에 불과하고, 무한한 공간속에 한 점에도 미치지 못하건만, 이 보잘 것 없는 인생이 대자연을 생각한다. 답은 있는 걸까? 답으로 가는 길은 존재하는 걸까?

 

파도가 만들어 내는 규칙적인 문양을 보라. 인격이 없는 자연은 한 모퉁이에 질서와 규칙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자연의 힘에 따라 정렬돤 질서는 자연을 만들어낸 인격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일까? 질서속에 무질서, 규칙속에 규칙 위반, 이러한 특이성으로 지성의 존재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면, 소수는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될까? 수의 질서에서 소수만이 비켜 서 있는 듯한데, 소수에 규칙성을 부여한 리만의 가설이 사실일찌라도, 더 큰 규모의 질서의 하위 층계에서는 여전히 불규칙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인데, 무질서는 단지 표면적으로만 드러난 모양새, 더 깊은 차원에서는 무질서를 가능하게 한 질서가 존재한다면, 그 질서의 근본이 신의 존재가 될까?

 

저기 맞은 편에서 한 여인이 홀로 걸어오고, 난 여기서 홀로 걸어가고, 서로의 발길이 교차하는 순간, 눈길도 마주치지 않았지만, 그 어떤 운명적인 느낌도 없었지만, 절대자의 입장에서 보면 엇갈린 운명의 교차는 아닐까? 세상은 단 6명만 거치면 다 서로 아는 지인이라는데,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면 서로 알만한 사람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꽁꽁 마음에 묻어둔 채 서로 지나쳐 멀어져 간다. 저 평범한 여인도 마음 한 켠에 어떤 사연을 묻어 놓고 있겠지. 사람마다 각자의 사연을 다 편지위에 적는다면, 세상은 사연으로 넘쳐 날텐데, 에메랄드빛 하늘이 내다 보이는 창문으로 저마다의 사연을 들고서 우체국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저 절뚝거리며 걷는 노인네도, 굳이 저 연인 사이로 걸어가려고 애쓰는 노인도, 오직 예수를 외치며 큰 소리치는 저 남자도, 혼자서 셀카봉으로 자신의 모습을 찍는 저 여자도, 다른 사람의 눈은 의식도 하지 않은 채 여자를 안고 밀려 오는 파도에 던질 듯 말 듯 놀리는 저 연인도.

 

백사장을 벗어나 벚꽃 나무 가로수 길로 들어서자 바다와 모래사장의 푸른 빛과 황금 빛에 익숙한 망막은 문득 벚나무 몸통의 짙고 어두운 빛을 느낀다. 해변의 파도의 조용한 아우성에 무감각해져 있던 귀는, 벚나무를 이리 저리 날며 지저귀는 새소리에, 문득 파도 소리의 부재를 느낀다. 인간이 만든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음을 환기시키는 차가 왔다 갔다하는 소리를 들으며, 한 참 동안 걸었던 다리의 묵직한 피곤함을 느끼며 집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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