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환 지음/ 한길사


 

또 봄.

지난 봄 활짝 핀 벚꽃 위에 아른거리는 봄 볕을 보며 조그맣게 읖조렸다. 또 봄.

해마다 찾아 오는 봄이지만 해마다 마음속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감상은 봄 날의 따스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렴, 어느 계절에도 볼 수 없는, 폭발적으로 피어나는 꽃 장관은 우리의 마음을 가만 두지 않는 것이다.  


사람마다 꽃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꽃의 빛깔에 이끌리고, 또는 꽃의 모양새에 끌리기도 할 것이다. 어떤 이는 꽃의 관능의 몸짓에 매혹당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꽃의 향기에 취하기도 할 것이다. 괴테의 '꽃은 사랑에 미친 잎이다.'이란 말과, 이브파칼레의 '꽃은 식물의 성기이다'란 말은 둘 다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는 말처럼 느껴진다. 단지 하나는 시적으로 표현되었고, 다른 하나는 과학적으로 표현되었다고나 할까? 아뭏든 꽃은 빛깔 모양새, 몸짓과 향기로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인간보다 짧은 삶을 사는 풀과 꽃이 있는가 하면,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세월을 사는 나무도 있다. 그러나 모든 식물도 역시 태어나면 언젠가는 수명이 다하게 된다. 그리고 후손을 퍼뜨리기 위해서는 꽃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도 후손을 남기기 위해 사랑이 필요한 것처럼. 후손을 남겨야 할 필요성은 역시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것도 스스로 영원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명을 남겨줄 후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개화론'에 의하면 식물은 스트레스를 받아 자신이 절체 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음을 알아야만 꽃을 피운다고 주장한다.


실제 난을 꽃 피우려면 여름까지 잘 보살피다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홀대하면 된다. 그러면 가을엔 그윽한 난향을 즐길 수 있다. 식물은 철철이 아름다운 꽃을 피워 자태를 뽐내는 듯 하지만, 기실은 죽을 지 모른다는 절박함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다. 봄 꽃은 차가운 겨울 바람이라는 스트레스를 견디어야만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고난을 견디고 이겨낸 사람만이 영광을 차지할 수 있다면 사람도 꽃일지도 모른다.


숲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공동체를 형성하여 함께 살아간다는 점에서 숲 속의 나무, 풀과 같다. 건강한 숲은 다양한 계층의 식물들이 층위를 이루며 살아가는 숲이다. 층위가 5~6층으로 형성된 숲이 건강하다고 한다. 가장 아래 쪽을 살아가는 풀, 그 위에는 관목들, 그 위에 상록 교목들, 그 위엔 낙엽 굠목들 등 다양한 나무와 풀이 함께 살아가는 숲이 건강하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인간 공동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인간 사회에서도 대기업이 있으면 중소기업도 있어야 하고, 큰 마트가 있으면 동네 구멍가게도 있어야 한다.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의 독점이나 횡포등으로 작은 기업이나 사업들이 없어지면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옛적의 문명의 흥망은 숲과 긴밀한 관련이 있었다. 커다란 강이 있는 곳에는 그 물을 수원삼아 살아가는 숲이 있고, 이러한 강과 숲의 힘을 입어 문명이 발생하고 성장한다. 문명이 성장함에 따라 숲의 나무들은 문명을 일구는 귀중한 자원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자원을 남용하게 되면 숲은 사라지면서 홍수 방지 기능도 함께 없어진다. 그러면 해마다 강가의 문명은 홍수의 위험에 노출되고, 비옥한 토양은 홍수로 유실되어 농업의 생산량도 급감하게 되고, 이로서 문명은 점점 쇠퇴해져 가게 된다.


오늘날에도 숲이 사라지고 있다. 대기에 수분을 공급해 주는 숲이 사라지면서 비가 적게 오고, 한 때 비옥한 토지는 메말라간다. 악순환이 계속되면 메마른 토지는 사막이 된다. 사막은 점점 위세를 떨치면 확장되어 가는데, 이를 막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란 없다. 사막 녹지 사업은 인류의 장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지구온난화와 중앙아시아의 사막화를 막지 못하면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고, 그 아래 묻혀있는 메탄이 폭발적으로 유출될 경우 지구에 닥칠 재난은 대재앙이 될 것이다. 늦기 전에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


<식물의 인문학>은 식물의 생태로부터 도출된 인간의 삶을 위한 지혜를 일깨워준다. 물론 식물의 생태에 대해 이러저러한 것을 많이 배우게 된다. 최근 식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면서 이런 분야의 책에도 관심이 가게 된다. 이런 책을 읽으니 나 자신이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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