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의 칼날 / 찰리 길리피스 / 이필렬

 

증기기관이 과학에 빚지고 있는 것보다 과학이 증기기관에 빚지고 있는 것이 더 많다 - 헨드슨(1878~1942)

 

뉴커먼 기관에서 시작       레고로 만들어 본 증기

그림)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1736~1829)와 증기기관차

영국에서 증기 기관을 빼앗는 것은 석탄과 철도를 동시에 빼앗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영국의 모든 부의 원천을 고갈시킬 것이며, 그 번영이 의존하고 있는 모든 것을 멸망시킬 것이며, 저 거대한 힘을 근절시킬 것이다. 영국이 가장 강력한 방어력이라고 생각하는 해군을 파괴하는 것조차도, 이것과 비교하면 별로 치명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사디 카르노(1796~1832)

사디 카르노는 증기기관을 모형으로 삼아 가장 효율적인 열기관 연구에 착수하였다. 열기관연구의 기본 목적은 열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동력에 한계가 있는가, 그리고 증기보다 더 유효하게 힘을 전달하는 것이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에콜 폴리테크닉 출신으로 가능한한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은 카르노는 연구를 일반화시켰다. 증기기관이라는 특수한 것의 연구로부터 즉각 "열에 의한 운동의 생성"이라는 문제를 추상하여 가장 이상적인 열기관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카르노

그림) 영구기관으로 유명한 카르노- 열역학의 창시자로서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보존의 법칙)과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의 법칙)이 열역학분야에서 유래했다.

 

카르노의 열연구는 19세기 물리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뉴턴역학과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물리학의 헛점을 드러내었다.

 

19세기 뉴턴 역학은 물체의 연장(공간속에서 일정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물질의 성질), 질량, 속도(운동)을 기본으로 한다. 힘은 질량에다 운동의 변화를 곱한 양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리학자는 작용을 어떻게 표현해야 했을까? 힘, 일, 열, 불, 화학적 반응성, 자기, 전기, 생명등을. 힘의 전달은 기본적으로 접촉을 전제로 한다. 민다든가, 충격을 가하는 것등은 접촉으로 힘이 전달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접촉되지 않은 물체,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물체에 힘이 가해지는 현상은 어떤 메카니즘으로 설명해야 할까? 

 

자기 - (a) 막대자석

그림) 자석의 주위 공간으로 미치는 힘의 영향이 보인다. 붙어있지 않고 떨어져 있는 물체에 힘을 가하는 것은 어떤 메카니즘에 근거한 것인가? 입자론적인 고전역학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또한 기계론적 물리학이 자연을 기술하는데 과연 적절한가 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기술자가 인간이나 동물, 바람이나 물의 운동으로부터 지레, 도르레, 기어, 스크류등에 전달되는 힘만 다루어야 한다면, 고전 역학의 원리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열을 동력으로 삼자마자 고전 역학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게 되었다. 증기에 의하여 피스톤이 밀려가는 것과 원통 속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의 관련성을 어떻게 모멘트라는 개념으로 설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자격증 정보]실린더

그림) 피스톤 운동 - 증기기관은 열을 동력으로 실린더내에 피스톤 운동을 유발시키고, 이 직석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꾸는 기구를 통해 바퀴를 회전시켜 일을 하는 장치이다.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카르노는 이러한 깊은 논의에 집착하기 않았다. 그는 열을 단순히 받아들인 뒤, 열을 전달하는 열소 즉 칼로릭이 있다고 전제하였다. 그는 칼로릭을 보존되는 성질이 있는 유체로 취급하였다. 그리고 증기기관의 운동은 칼로릭의 흐름으로 인한 것이라는 이론이 전개한다. 따뜻한 물체에서 찬 물체로 칼로릭이 흐름으로 평형이 깨어지고 그 이후 다시 평형이 수립된는 과정에서 피스톤 운동이 생긴다. 즉 칼로릭이 자신의 준위를 찾아 복원되는 과정에서 동력이 끌어내지는 것이다.

 

이러한 메카니즘은 카르노의 영구기관에서 구현되었다. 기체는 압축되면 뜨거워지고, 팽창하면 냉각된다. 만일 기체를 압축시키면서 온도가 올라가지 않도록 하려면(등온압축), 우리는 그 기체속의 칼로릭을 제거해야 한다. 또 역으로 팽창시키면서 온도가 내려가지 않게 하려면(등온팽창) 칼로릭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이른바 등온압축, 등온팽창이라는 개념이 나타난다. 이러한 열역학에 근거하여 카르노의 영구기관은 [등온팽창-> 단열팽창-> 등온압축 ->단열압축]의 사이클을 거쳐 초기상태로 돌아온다.

 

카르노기관 - 카르노기

그림)  P=압력, V=부피, 1=초기상태, 1-2 = 칼로릭이 공급되는 등온팽창, 2-3 = 칼로릭의 공급이 중단된 상태에서 팽창함으로 온도가 내려가는 과정(단열팽창), 3-4 = 칼로릭이 회수되는 등온압축, 4-1: 칼로릭의 공급 및 회수가 중단된 상태에서 압축됨으로 온도가 올라가는 과정(단열압축), 1=최종상태=초기상태

이러한 사이클로 무한 운동이 가능한 이상적인 영구기관의 가역적 과정은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엔트로피법칙이 탄생하게 된다.  

 

카르노의 영구기관은 초기상태에서 시작하여 초기상태로 되돌아가는 이상기관이다. 카르노의 영구기관에 나타난 이러한 가역성 개념은 관성 운동개념과 비교된다. 현실의 운동 중에서 직선위에서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운동은 없다. 마찬가지로 현실의 과정 중에서 가역적인 과정은 없다. 그러나 현실의 비가역적 변화 대신에 이론적인 가역 변화를 생각할 수 있다. 초기상태와 최종상태의 온도차를 한없이 작아지도록 한다면 이론적으로 초기상태는 최종상태와 같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가상적인 가역성은 연속성을 의미하며 미적분을 응용할 수 있게 해 준다.

 

클라페이롱(1799~1864)은 카르노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다루었다. 클라우지우스는 클라페이롱의 논문을 통해 카르노의 업적을 알게 되었고, 그 가역성은 클라우지우스가 엔트로피개념을 이끌어 낸 필수조건이 되었다. 클라우지우스는 가역성이 "절대로 도달할 수는 없지만 무한히 접근할 수 있는 한계"같은 것이며 "그러므로 이론적으로 고찰을 할 때는 이것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생각해도 좋으며, 비록 한계로서일지라도 이론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다"고 썼다.

 

클라우지우스가 들려주

그림) 엔트로피법칙을 유추해낸 클라우지우스, 그는 그 세대의 과학자들중에 가장 유연한 사고를 지닌 사람이었다. 엔트로피라는 불가해한 양을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물리학의 추상범위에 관해서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칼로릭모델을 사용하지 않고도 카르노가 그러한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운동론적 열이론으로부터는 가역성이라는 핵심적이고도 역설적인 개념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열역학이라는 학문은 열교환을 유체의 이동으로 보는 칼로릭 이론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칼로릭은 실체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에너지와 엔트로피라는 개념속으로 사라졌지만...

 

찰스 길리피스의 객관성의 칼날은 무딘 연마석에 의해 예리하게 변해 왔다는 것이 놀랄 뿐이다. 오류는 오류를 낳지만, 때로는 오류로 인해 진리로 인도되기도 한다는 것인지...  

 

 

객관성의 칼날: 찰스 길리피스 지음/ 이필렬 옮김/ 새물결 출판사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 <쥐라기공원>에서는 호박속에 화석으로 남은 모기의 피로부터 공룡의 DNA를 채취하여 공룡을 복원시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쥐라기'라는 말은 지질학에 나오는 표현이다. 지구의 장구한 역사를 구분할 때 지질시대로 구분한다. 지질 시대는 선캄브리아기,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나누는데, 공룡들이 지구상에 활보했던 시기는 중생대이다. 이 중생대는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로 나뉜다. 공룡은 트라이아스기에 출현하여 쥐라기에 번성하였고, 백악기에 멸종된었다.

 

 

19세기에 시작된 지질학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지질시대를 일컫는 명칭, 캄브리아기 그리고 석탄기, 데본기, 쥐라기, 백악기등의 명칭은 어떻게 지어졌는가? 지질학은 생물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독일의 광산학교의 광물학 교수였던 아브라함 고틀로프 베르너(1749~1817)는 어떻게 다양한 암석들이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을 내놓았다. 모든 암석들은 지구 전체를 덮고 있던 원시 해양의 침전물로부터 생성되었다. 이를 베르너설 또는 수성론이라고 부른다. .

 

 

제임스 허튼(1726~1797)은 화성론을 주장하였다. 그의 저술 <지구의 이론>에 의하면, 과거의 사건은 현재도 작용하고 있는 과정으로부터의 귀납적 유추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으며, 암석이 나타내는 증거에 의해서만 기술될 수 있었다. 지각은 화성 작용에 의한 것과 수성작용에 의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수성작용에 의해 침전된 퇴적층은 지구 중심의 고압 고열의 작용에 의해 단단한 암석으로 변화되었으며 그 팽창력은 해저에서 대륙을 융기시켰다.

 

이후 다양한 지층이 발견되면서, 이 지층들 사이에 체계를 세우는데 고생물학의 화석이 열쇠를 제공하였다. 영국의 무명 측량기사 윌리엄 스미스(1769~1839)는 1791년 특정 종의 화석은 특정 그룹의 지층들에만 존재하고, 다른 지층에는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사실을 이용하여 주요한 암석계를 확정하는 방법을 고안했으며, 1815년 <잉글랜드 및 웨일즈의 지층의 개요>에서 고생물학적 지표를 이용하여 지층을 분석하였다.  

 

 

지층의 이름을 짓는데는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방법 즉 석탄이 발견된 지층을 석탄기, 백악이 발견된 지층을 백악기로 부르는 경우와, 데본기, 쥐라기, 페름기처럼 그 지층이 처음 발견된 지방의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1820년대에 로드릭 머치슨(1792~18710)이 실루리아기를 발견하였고, 에덤 세지위크(1785~1873)이 조수로 데리고 간 그의 학생 찰스 다윈과 함께 캄브리아기 지층을 발견했다.

 

 

1830년경에 찰스 라이엘(1797~1875)의 <지질학 원리>가 출판되면서 지질학은 이전의 아마추어적인 면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지질학 원리>는 지질학이 참된 과학으로 발달하는 것을 방해했던 장애물을 제거하였다. 즉 현존하는 질서와는 다른 질서에 의하여 지구가 형성되었다고 하는 비학문적 전제를 제거했던 것이었다. <지질학 원리>에  의하면 시간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현재 작용하고 있는 힘에다가도 충분한 시간만 주게 되면, 인간의 거처인 지구에 관찰 가능한 변화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변화가 균일하며 시간 속에서 주기적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지질학자들은 고생물학적 지표와 화석 형태의 연속을 가지고 지구의 연대를 수립하였다. 반면에 생물학자들은 지질학적 시대 구분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다. 라이엘이 종의 변이에 대해 단호한 반대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증거를 확인하지도 않고 종의 변화를 인정하는 것은 균일설의 이론에 반하는 것이었기때문이다) <지질학 원리>를 면밀하게 연구했던 다윈은 이 책의 영감을 받아 획기적 과학적 관점을 갖게 되었다. 

 

객관성의 칼날 : 찰스 길리피스 지음/ 이필렬 옮김 / 새물결 출판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생물들은 어떤 원리로 복원이 되었을까? 퀴비에가 그 대답을 해 준다.

 

조르주 퀴비에(1769~1832)는 라마르크(1744~1829)와 동시대를 살았던 박물학자이자 프랑스의 과학 행정가이었다. 퀴비에와 라마르크의 주요 업적은 박물관의 멋진 수집품을 배열하는 방법을 수립하고 출판한 것이었다. 

 

그러나 16세기 천동설의 프톨레마이오스와 지동설의 코페르니쿠스가 달랐던 것처럼 라마르크와 퀴비에도 서로 달랐다. 라마르크는 과학적이라기 보다는 철학적이었으며, 그의 생물철학은 자연의 통일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각 생물종은 영화의 한 순간 장면과 같은 것으로 다른 장면들 즉 다른 생물종과의 연속적인 흐름 상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퀴비에는 라마르크와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는 라마르크와는 달리 철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퀴비에는 생물종 사이에는 뛰어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며,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즉 각 생물종은 불연속군을 이룬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오늘날 자연사 박물관에 가보면 거대한 공룡의 골격을 볼 수 있다. 고생물의 화석을 발견할 때는 대부분 불완전한 모습으로 발견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완전한 형태의 공룡들을 다시 조립할 수 있는가? 어떨 땐 아주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수백개의 뼈들이 흐트러진 채 발견되었는데, 그 뼈들이 20종에 달하는 동물들의 뼈라면 어떨까? 하나 하나의 뼈에 대해 그것이 어떤 동물의 것이었는지를 정해야만 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여기에서 퀴비에의 분류학적 방법이 빛난다. 고대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의 겉모습을 보고 분류하였지만, 퀴비에는 더 나아가 비교해부학이라는 방법으로 접근했다. 퀴비에는 커다란 업적이 바로 이 비교해부학에 있는 것이다. 부분들의 상호관계성 원리와 비교해부학의 결합은 불가능하게 보였던 그러한 조립을 가능하게 하였다.

 

동물의 한 부분으로부터 그 동물 전체를 추정한다. 다시 말하면 유기체 내부의 형태들은 상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각 생물은 종합체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독특한 폐쇄체계이고 어느 부분이나 서로 대응하며, 상호 작용을 통하여 공동으로 일정한 활동을 한다. 만약 어떤 동물의 내장이 신선한 고기만을 소화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면 그 동물의 턱은 포획물을 잡아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하고, 그 발톱은 움켜쥐고 잡아 찢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그 동물의 전 체계는 추적하고 포획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하에 고생물학이 수립되었다. 사멸된 종, 화석만이 남아 있는 그 생물들을 다시 복원하여 박물관에 멋있게 전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객관성의 칼날: 찰스길리피스 지음/ 이필렬 옮김

 

라마르크의 진화사상과 그 의의

 

숲 속에서는 어디를 보나 다양한 생물들이 우글거린다. 땅 속에, 풀 밑에도, 심지어 시냇물 속에도 생명은 다양한 모습으로 꿈틀거린다. 생명의 세계의 이 풍부한 다양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라마르크 이전에는 생물들이 신의 무한한 배려로 그 환경과 목적에 맞도록 설계되고 창조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른 설명이 가능할 것인가?  만일 생물이 어떤 목적에 맞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라면 적응이란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자연신학적 설명을 대신할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사람이 장 밥티스트 드 라마르크(1744~1829)였다.  

 

 

 

라마르크는 다윈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진화론 사상을 주장하였다. 그의 진화원리는 다윈과는 아주 다른 것으로 객관적 과학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생물 철학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에 근거해 있는 반면에 라마르크는 용불용설과 획득 형질의 유전을 주장하였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이런 주장을 하게 되었을까? 

 

라마르크는 한 종류의 광물이 환경의 작용에 의해 다른 종류의 광물로 변한다는 사실로 부터, 광물에는 항구적인 종이 없는다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생물계에 적용시켜 생물종도 환경의 영향아래 다른 종으로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물종이란 고정된 것이라는 당시의 견해와는 다르게 라마르크에 있어 종이란 생명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하나의 형태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인해 생물이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는가? 라마르크의 철학에 의하면 생물에 영향을 미치는 두가지 요인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생물에 내재해 있는 힘이며, 둘째는 물리적 환경의 영향이다. 그리고 생물과 무생물(환경)의 투쟁의 결과로 다양한 종이 발생한다. 생명의 힘은 생물이 끊임없이 복잡한 형태로 변하도록 작용을 한다. 그리고 물리적 환경의 영향은 이 자연스러운 연속적 변화를 깨뜨리고 불연속을 초래한다. 이 불연속으로 인해 종사이의 간극이 나타난다.

 

환경의 변화는 요구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요구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낳는다. 행동의 변화는 새로운 습관이 되고 특수한 기관을 변화시켜 마침내 생물체 일반을 바뀌놓게 된다. 그는 두가지 법칙을 끌어낸다. 즉 기관은 사용 여부에 따라 발달하거나 퇴화한다는 것, 그리고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획득한 형질은 유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획득 형질의 유전은 옳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마르크는 생물학의 연구 방향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당시에는 현재 보이는 자연의 모습만을 연구하고 있었던 반면에 라마르크는 보다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연의 추이, 즉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였던 것이다. 즉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생물이 변화되어 왔는가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를 개척하였던 것이다. 라마르크의 생물학은 객관적 과학으로 편입되지는 못했지만 생물학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함으로 다윈을 위한 길을 열어놓았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위 내용은 객관성의 칼날의 일부분을 요약한 것으로 본인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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