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문학 고전의 감동을 만화로 만난다.

(서울대 선정 문학 고전 15)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그림 한종천/ 글 최윤정/ 학산문학사 (채우리)

 

만화! 초등학교때 무척 만화를 좋아했었다. 멋진 그림을 근사하게 베끼는 것도 좋아했었다. 이제 초등4학년인 딸애도 만화의 캐릭터를 즐겨 그린다.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만 매일 그리고 또 그린다. <쵸파>는 가끔... 부전자전인가? 하하

 

그러다 20대엔 <슬램덩크>에 푹 빠져 신간이 출간될 때마다 서점에서 사서 동생과 함께 보던 재미란... 새 만화책을 펼 때 느끼던 두근거리는 마음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러다 우연히 40대 중반에 <로지코믹스>라는 버트란트 러셀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만화를 만났다. 그 부제가 아마 <토대를 찾아서> 였지.

 

로지 코믹스를 보면서...와~ 이런 만화도 가능하다니,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러셀을 만화로 다시 살려내다니 참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수리논리학자로 수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수학사에서 '러셀의 역설'을 모른다면 그는 이단아일 정도이다. 러셀의 역설은 수학의 기초를 흔드는 것이었다. 러셀은 수학을 가장 견고한 기초가 있는 학문이기를 원했다. 그래서 자신이 흔든 그 기초를 다시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 결과 나온 책이 화이트 헤드라는 수학자와 공동집필한 <수학원리>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아뭏든 그의 범상치 않은 일생과 그의 논리, 사고를 한 권의 만화책에 담아 내다니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다. 

 

로지코믹스

 

그 이후 오늘 도서관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찾다가 우연히 또 진주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게 바로 이 책이다. 만화다. '원작의 재미와 가치를 이렇게 충실하게 살려낸 만화책이 또 있을까요?' 어떤 교사는 이렇게 말하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전에 <한권으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조금 읽었는데, 상당히 어렵운 책이라고 느꼈었다. 그 때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반납을 했었는데, 이 번에 다시 읽어보려고 찾는 중에 내 눈에 문득 들어온 책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만화를 다 보고나서는,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온통 빠진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생애, 그리고 그의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흐름과 그 속에 숨겨져 있는 프루스트의 정신 - 흘러간 시간을 어떻게 되찾게 되는지 그의 긴 여정을 알게 되었다.

 

이제 <한권으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다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아마 7권으로 된 전권을 읽어보려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제목에도 나타나 있듯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이라는 불가해한 대상물을 그 뿌리로 하고 있다. 시간의 신비라고나 할까, 그 불가해한 성질을 해독해 보려는 프루스트의 집념이 담겨있다. 프루스트는 과거의 기억들이 시간에 의한 망각의 작용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득 마르셀은 아주 사소한 일로 인해 우연찮게 어릴 적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시간과 결부된 그 기억들이 어떻게 현실을 구체화하는지에 대한 깊은 상념에 빠져든다. 현실과 기억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 걸까? 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상념의 여행을 떠난다.

 

 

 

결국 이 책의 주인공 마르셀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된다. 그리고는 그 되찾는 시간, 기억들을 잡아놓기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원했던, 그러나 포기했었던 작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너무나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에 의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게 된다. 그는 우연히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맛을 보다가, 아주 어린 시절 레이니 고모가 주던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맛을 기억해 내면서, 그 시절의 모든 기억이 되살아 난다. 또한 길을 가다 반듯하지 못한 포석에 걸려 비틀거리다 불현듯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행복감에 젖기도 한다. 그러한 세세한 기억들이 살아 나면서 그의 작가적 재능에 대한 의혹도 씻은 듯이 사라지고 그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경위이다. 

 

 

 

 

리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반백이 된 머리를 보거나, 쭈그러진 얼굴을 보면서 문득 시간이 아득히 흘렀음을 느낀다. 그리고는 그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하고 의아해 한다. 시간은 파괴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물리학적 관점에서 본 엔트로피의 법칙에도 시간의 흐름은 되돌릴 수 없으며, 시간의 흐름은 무질서를 증가시키는 방향 즉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이라 한다. 그 뿐아니라 시간은 우리의 기억마저 송두리째 삼켜버리기 조차 한다. 단지 지나간 시절의 단편적인 모습들만 띄엄 띄엄 떠오를 뿐이다. ·

 

간이란 희랍어 어원으로 크로노스, 즉 자신의 자식들을 잡아먹는 신이라고 한다. 시간은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힘을 갖고 있다. 가브리엘 마르셀은 "나는 시간 그 자체이고, 공간을 갖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우리가 지나온 장소는 되돌아 갈 수 있는 반면 지나온 시간은 되풀이 하여 살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철학자 쥘 라뇨 역시 "공간은 나의 힘의 표상이고, 시간은 나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형태"라고 말함으로써 시간의 불가역성 앞에 놓인 인간 존재의 비극적 모습을 명확하게 표현했다. p202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의 그토록 슬펐던 일들이나 아픔들이 아련해지고 심지어 그 아픔까지도 추억이 되어 아름답다고 느껴지니 이야말로 신기한 노릇이다. 우수와 슬픔도 예외가 아니어서 시간의 흐름 속에 파괴되어 그 온전한 형체나 느낌을 되찾을 수 없지만, 오히려 그 기억속에 아름다움이 덧붙여진다는 것은 왜 그럴까? 아름다운 슬픈 추억?

 

 

그는 세월 속에서 모든 것이 파괴되며, 그 가운데 아름다움만 남겨 놓고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수와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p210

 

 

 

시간이란 신비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프루스트는 이러한 시간의 가면을 벗기기를 원한 것이리라. 그는 시간의 본질을 찾으려 한 것이다. 그는 시간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마르셀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젊었을 때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될 때, 그들이 몰라보게 변신한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프루스트는 그 광경을 마치 시간이 베푸는 가면무도회 같다고 표현한다. 프루스트는 이런 시간의 무자비한 파괴의 모습과 덧없이 사라지면서 물질적인, 감각적인, 지취를 남기는 도망자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소설가가 시간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p222

 

나는 생각했다. 내게 아직도 작품을 완성할 힘이 있다면, 평소 우리 눈에 안 보이는 '시간'의 꼴을 똑똑히 표시하리라고... 그리고 시간 안네 차지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보리라고...! p225

 

 

그가 발견한 시간의 정체는 무엇일까?  마르셀이 경험한 것처럼 숨어 있던 기억들이 아주 사소한 우연한 자극에 의해 되살아나는 과정은 신비로운 황홀한 경험이다. 갑자기 허영만 화백의 <식객>의 고구마편이 생각이 난다. 성찬이가 넣어준 고구마을 베어먹는 순간 사형수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엄마 생각이 났기때문이다. 어릴 때 엄마가 삶아주었던 고구마. 고구마는 엄마에 대한 기억을 소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엄마를 그리는 마음과 사랑에 목이 메여...

☞ 식객 고구마편 1편 감상

http://cafe.daum.net/jeju-uneedpartners/M3mR/23?q=%BD%C4%B0%B4%20%B0%ED%B1%B8%B8%B6

☞ 식객 고구마편 2편 감상

http://cafe.daum.net/jeju-uneedpartners/M3mR/23?q=%BD%C4%B0%B4%20%B0%ED%B1%B8%B8%B6

 

 

기억은 결코 지워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어딘가에서 자극을 기다리며 숨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기억은 현실을 구체화하는 현존하는 그 무엇이다. 아마 프루스트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이것이 아닐까?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보면서 이 점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과연 프루스트는 시간의 본질을 발견한 것인지 확인해 보려한다. 자 이제 시간 여행을 떠나 보련다. 프루스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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