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1 / 국토종주 편

글. 사진 / 김남희 / 미래인

 

"걷다 보면 생각은 담백해지고, 삶은 단순해진다."

 

걷기 여행 전문가 김남희씨는 땅끝마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29일간 국토를 종단한 기록을 남긴다.

김남희씨는 여행도중 만난 아름다운 길, 숲, 사람들을 추억한다. 

 

여행도중 만난 순박한 사람들, 아직까지 인심은 남아 있구나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세월이 흘쩍 10년이 지났는데, 올해 2015년에도 그 인심은 여전할까하는 의문이 이는 내가 싫다. 

그 인심이 언제까지나 한결같기를 바래본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면서 끝까지 걸었던 정신은

여행의 낭만과 아름다움 속에 녹아들어 단지 스쳐지나가는 희미한 바람으로만 남아 흔적만 보일 뿐

<걷기 여행>은 걷고 싶은 원초적 욕망에 불을 붙인다.

 

도보여행이야말로 최고의 여행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마침 집 부근의 갈맷길을 걸으면서 걷기가 좋아지려는 차라 

걷기 여행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지도 모른다. 

 

'숨어있는 우리 흙길 열곳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2부 <가을 흙내음의 즐거움>은 아름다운 흙길 열 곳을 소개하고 있다.

1. 울진 소광리 금강 소나무 숲, 우리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가는 길

2. 정선 자개길, 아라리 한 자락에 종일토록 굽이도는 길

3. 섬진강 따라 걷는 길, 새들이 날아 오르는 호젓한 강변

4. 정선 송천 계곡 백 리 길, 곳곳에 이어지는 아늑한 숲길

5. 대관령 옛길, 연인의 손을 잡고 걷고 싶은 길

6. 인제 곰배령, 꽃 진 자리에 만개한 단풍 터널

7. 영월 동강,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 상쾌한 산행

8. 인제 아침가리, 원시의 계곡처럼 청량한 숲길

9. 홍전 명개리에서 오대산 상원사까지, 단풍잎 도배지가 깔린 흙길

10. 송광사 굴목지재, 잡목숲 스치는 바람 따라 걷는 길

 

참, 이 분 많은 길을 걷기도 걸었다. 걸었던 길과 사랑에 빠진 여자. 사랑 편지를 쓰듯 써 내려간 이야기. 나 또한 그 길을 걷고 싶다.   

여덟 개 길이 강원도에 있고, 나머지는 섬진강 따라 걷는 길과 송광사 굴목지재. 이 두 길은 전라도에 있다.

기회를 잡아 가까운 곳에 있는 이 두 길을 먼저 밟고 싶다. 

 

언젠가 섬진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며 하동 가던 길이 생각난다. 처음 가는 길이었지만 그 길은 오랜 친구처럼 정다웠었는데.

차로 휙 지났던 그 길이 이제서야 아쉽다. 

 

그런데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이어지는 길은 왜 그리울까?

배가 살살 아파온다. 그러면 선암사의 해우소가 그립다. 선암사쪽으로는 쳐다 본 적도 없건만.

선암사의 해우소에 가면 아픈 배가 다 나을 것 같아서.

선암사 해우소 이야기를 아마도 김훈씨의 <자전거 여행>에서 보았을까?

아니면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 유적 답사기>에서 보았을까?

정호승 시인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라고 했다고 하는데...

선암사의 해우소엔 무엇이 있길래 저 야단들일까?

 

이 두 곳을 마음 한 쪽에 챙겨놓는다.

먼저 부산의 갈맷길을 맛보고 나서.

 

"길 위에 홀로 설 모든 사람들에게 나바호족 인디언의 인사말을 건넨다. 호조니- 당신이 아름다움 속에서 걷게 되기를" 

 

밑줄

잡목 숲을 스치는 이 기막힌 바람소리, 두레박 가득 이 바람 소리를 찰랑 찰랑 넘치게 담아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누군가의 귀전에 부어주고 싶다.

함께 걷는 그녀가 말한다. "풍경은 담을 수 있지만 소리와 향기는 사진에 담을 수 없어 아쉬워요." 사진에 담을 수 없는 것이 어찌 소리와 향기뿐일까? 어깨를 어루 만지는 따스한 햇살의 감촉도 담을 수 없고,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며 깨어나는 내 생생한 감각도 담을 수 없다. 담을 수 없는 것을 담고자 하는, 남길 수 없는 것들을 남기고자 하는 어리석은 노력이 결국 시간일까?

 

따뜻한 슬픔 <홍성란>

 

차마, 사랑은 여윈 네 얼굴 바라보다 일어서는 것

묻고 싶은 말 접어 두는 것,

말 못하고 돌아 서는 것,

하필, 동짓밤 빈 가지 어둠 별에서,

소톱달에서 가슴 저리게 너를 보는 것.

문득, 삿갓 등 아래 함박눈 오는 밤  창문 활짝 열고 서서

그립다, 네가 그립다. 눈에게만 고하는 것.

끝내, 사랑한다는 말 따윈 끝끝내 참아내는 것,

 

 

물빛 1 <마종기>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 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 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청년과 함께 이 저녁 <허수경>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스칠 때

한 사람, 또 한 사람을 흔들고 갈 때

터닌 곳, 꿰맨 자리가 아무리 순해도 속으로

상처는 해마다 겉잎과 속잎을 번갈아 내며

울울한 나무 그늘이 돌 만큼

깊이 아팠는데요.

 

 

길 <고은>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감자꽃 피는 길 <김점용>

 

오늘 하루 얼마나 걸었을까

지는 해의 부르튼 발바닥이 보여

문을 잠근 그대여

너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을테지

이 길의 두근거림

가도 가도 계속되는 흰 꽃들의 속삭임

 

 

        * 부산 서동의 작은 산 옥순봉에서 바라본 금정산, 그리고 옥순봉의 오솔길 

 

 

'읽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츠제럴드 단편선  (0) 2015.11.04
소설가의 일  (0) 2015.10.08
이방인  (0) 2015.09.24
마당을 나온 암탉  (0) 2015.09.11
신의 언어  (0) 2015.09.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