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동 지음/ 글항아리

 

에코의 말 처럼 '번역은 실패의 예술'일 수 밖에 없을까?

 

번역가들은 무한 공간의 끝자락을 붙잡으려는 무모한 예술가들이다. 번역가들은 축역(직역)과 의역의 스펙트럼 사이에서 방황하는 고된 예술가들이다.

 

신의 분노로 언어가 혼잡해 지고 바벨탑이 무너진 이후 끊임없이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왔다. 세월이 흐르면서 심지어 신의 말씀도 번역이 되어야만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번역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적 문제가 오랫동안 논의되어왔다. 김욱동교수는 통번역학과의 교수로 번역의 문제에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김욱동 교수는 의역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원전에 따라 축역과 의역의 스펙트럼사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번역의 필요성을 드러내고 있다. (축역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직역을 의미한다. 그리고 직역의 원래 의미는 원전에서 직접 번역한 것을 뜻한다고 한다. 직역과 상대되는 말은 중역이다. 영어에서 일본어로,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하는 경우를 중역이라 한다. 축역의 상대어는 의역 또는 자유역이 된다.)

 

제대로 된 번역을 하기 위해 번역가가 타파해야 할 세가지 우상이 있다. 첫째 모국어에 대한 편견  둘째 번역을 암호 해독 행위에 비하는 태도, 세째 완벽한 번역에 대한 그릇된 믿음. 번역가는 이 세가지 우상에서 벗어 날 때 비로소 번역가로서의 제대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원천언어만 제대로 알고 있으면 제대로 번역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원천언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필수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원천언어만이 아니라 목적언어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번역을 암호 해독으로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번역가는 원천텍스트의 표층적 의미 뒤에 숨어 있는 심층적 의미를 충분히 파악해야 한다. 텍스트의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완벽한 번역은 있을 수 없다. "번역은 결코 끝나지 않으며, 그것은 열려 있고 무한히 계속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을 미완의 작업으로 여기는 그레고리 라바사의 말이다. 이 때문에 하나의 원전에서 다양한 번역이 나오는 것이며, 다양한 번역들은 모자이크를 이루어 원전을 보다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도와 줄 수 있다. 

 

<번역의 미로>는 한편 딱딱하기도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번역 이론을 실제 번역 사례와 더불어 제시하고 있어 흥미로운 부분이 적지 않다. 또한 어떻게 번역을 해야 할 것인지 각자의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함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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