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의 기원-한나 아렌트 지음/이진우 박미애 옮김/ 한길 출판사

 

한나 아렌트는 유대계 여성 정치 철학자로 전체주의 치하의 유대인 대량학살 문제를 깊숙히 파고 들었다. 자신이 유대인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한나는 어떻게 그런 끔찍한 학살이 가능하기나 한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동족의 비극을 목격한 그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음에 틀림없다.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학살의 배후를 파내고 그것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이 그녀의 책임이라고 느꼈을까?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통해 금세기 완전히 새로운 정치체계로 등장하여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전체주의를 해부하고 있다. 히틀러의 나치 전체주의와 스탈린의 철의 장막 전체주의는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설 수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경고하려는 것일테다.

 

한나 아렌트의 다른 저작들 <인간의 조건> <과거와 미래 사이> <혁명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등에서 발전된 사상의 기초는 모두 <전체주의의 기원>에 놓여있다고 한다.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도 히틀러의 추악한 범죄행위에 연루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 것이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제1부 반유대주의, 제2부 제국주의, 제3부 전체주의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에서는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체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의 반 유대주의의 발전을 다루고 있다.

제2부에서는 전체주의의 이데올로기의 기반이 된 인종사상이 어떻게 제국주의로부터 발전해 나왔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전체주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대인은 히틀러의 인종말살 정책의 최우선 희생자였다. 오랫동안 서구 사회에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반유대주의. 히틀러는 이 반유대주의로 대중을 선동하게 되는데... 도대체 이 반유대주의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유대민족은 오랫동안 서구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이방인으로 그들 자신만의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소속되어 있는 사회에서 나름대로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가는데, 그들이 주로 종사하던 일은 금융업이나 전문직이었다. 특히 봉건시대 왕실의 재정을 맡아 관리하던 유대인들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재정에 긴밀히 관여하고 있었다. 국제 금융 그룹은 유명한 로스차일드가문 역시 정부의 재정을 담당하면서 국제적으로 그 세력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반유대주의는 여기에 근거한 바가 큰다. 대중들이 왕정이나 정부들에 불신을 가지고 대항할 때면 언제나 유대인들은 왕실과 정부의 친구로 간주되어 대중의 미움을 받았다. 또한 유대인 금융그룹이 국제적으로 크지면서 유대인의 세계정복 음모론이 대두되면서 반유대주의 바람이 불기도 했다. 반유대주의는 이런 것을 바탕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또한 반유대주의의 일부 책임은 유대사회에 있었다.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방랑한 지가 그토록 오래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메시야를 기다린 것은 한편으로는 놀라운 일이기는 하다. 그런데 이를 가능하게 한 요인 중 한 가지는, 유대종교지도자들은 반유대주의를 역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반유대주의를 직면할 때마다 유대사회는 움추려들면서도 내부적으로 끈끈함을 공고히 해 왔던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유대인들이 금융업등을 통해 부를 쌓기는 쌓았지만 권력에는 욕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메시야를 바라보던 그들의 신앙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만의 나라를 설립할 메사야를 기다리고 있던 신앙때문에 세속 나라의 권력에는 무심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정치적 힘, 권력이 전무했던 유대인들은 사실 반유대주의의 위험에 무방비상태로 던져진 것이나 다름이 없는 입장이었다. 그들이 봉사하는 왕실이나 국가에서 보호를 해 주고 있기에 망정이지 만일 그 울타리가 사라진다면 굶주린 야수앞에 던져진 먹이나 다름이 없는 입장이었다. 유대인이 전체주의의 첫 희생물이 된 것도 이러한 연유가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한나 아렌트는 추리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유대종족 전체를 말살시키려는 시도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이러한 반유대주의와 결합한 다른 요인이 있었다. 바로 제국주의에서 유래한 인종사상이다. 산업혁명 이후 산업이 발달한 영국에는 오갈 데 없는 잉여자본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산업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잉여인력도 생기게 되었는데, 활로를 뚫어주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사회에 큰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일환으로 팽창주의를 표방하게 된다. 해외로 잉여자본과 잉여인력을 수출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유럽국가들은 아프리카, 아시아등지에 식민지를 개척하게 된다. 이 식민지에 잉여자본과 잉여인력을 투입하여 수익을 산출하게 된다. 그런데 식민지를 관리하다 보니 식민지의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가 문제가 되었다. 식민지인들을 자신과 동일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그들을 수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들의 식민지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인종사상이 등장하게 된다. 식민지인들은 다른 미개한 인종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수한 인종에 봉사해야 하는 열등한 인종인 것이다. 사실 오랫동안 유럽사회 자체내에서도 귀족들은 일반 시민이나 평범한 사람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혈통을 가지고 있는 우월한 인종이라는 사상이 끊임없이 이어져 온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사상이 한 발 더 나아가 인종사상으로 이어지는데, 이 열등한 인종은 동물과 같아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되었고 이것은 그들의 양심을 편하게 해 주었다.

 

대륙제국주의에서도 인종사상이 드러난다. 해외로 팽창할 입장이 안되는 동부 유럽에서는 국경을 초월하여 같은 종족으로서의 민족이 연합하려는 범민족운동이 발생한다. 범슬라브주의니, 범게르만주의니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사는 곳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 하더라도 한 혈통에서 나온 종족이라면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이전에는 민족이란 것이 같은 언어, 같은 문화,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로 정의되었다면 범민족운동의 민족의 범위는 그것을 초월한다. 이러한 범민족운동은 타 종족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나타내게 된다.

 

그리고 제국주의의 유산 가운데 또 하나는 관료주의이다. 식민지의 백성은 본국의 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를 관리하는 관료들의 지배를 받는다. 이러한 관료들은 식민지 상황에 따라 필요한 법령을 자의적으로 만들어 식민지를 관리하게 된다. 식민지는 온전히 관료들의 지배하게 있게 되는 것이다. 제정러시아를 비롯한 많은 봉건국가들도 관료주의적 지배하에 있었다.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왕이나 관료들이 상황에 따라 법령을 만들고 시행하여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특징이 전체주의에 스며들어 가게 된다. 이렇듯 전체주의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그 전제들이 기반을 서서히 다지고 있었다.

 

제3부에서 다루는 전체주의의 정체는 한편으로 공포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과연 그러한 체제가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전체주의의 대명사 히틀러와 스탈린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일반 국민에 대한 테러를 기반으로 성립하고 유지되는 체제가 전체주의이다. 일반적으로 권력을 잡기 위해 정적이나 반대자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통해 있어왔던 일이기때문에 새삼스러울 것까지는 없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그리고 죄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일반 국민에게 테러를 가하는 체계가 전체주의라니 아찔하다.

 

나치 전체주의의 이데올로기는 다윈의 자연의 법칙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쓸모없는 개체는 자연의 힘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열등한 종족, 없어져야 할 종족은 없어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나치는 자연이 해야 할 일을 인위적인 테러를 통해 앞당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없어져야 할 첫 번째 희생물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폴란드인등등...그런데 자연은 영속적이며, 자연이 존재하는 한 자연의 법은 영원히 시행되어야 한다. 유대인들을 제거하고 나면, 폴란드인...그리고 그 다음에는 또 누구, 그리고 나서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렇게 계속 자연의 법은 시행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그들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나치는 독일 국민들도 등급으로 분류하여 한 그룹씩 말살할 생각이었다니, 끔찍하다. 전체주의는 일반 사람들을 이러한 전체주의적 운동에 가담시키고, 전체주의적 통치에 순응하게 만들기 위해 영혼없는 인류의 생산에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완전히 다른 신인류의 출현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유하지 않고 복종하는 기계적인 인간을 만들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끔찍하다.

 

스탈린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의 역사의 법칙이다. 계급 투쟁으로 사라져야 할 계급은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법칙이며 역사가 끝나지 않는 한 그 과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즉 반복되어야 한다. 그래서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하에서는 언제나 끊임없이 사라져야할 대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대상이 더 이상 없다면 그러한 대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심지어 이전에 전체주의 체제의 가해자가 마침내 희생자가 되는 순간도 오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면 그들은 이데올로기를 위해 불평없이 제물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신봉하는 논리는 깨어지면 안되기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희생물이 되면서 그 이데올로기를 지켜내는 것이다. 전체주의의 특징중 한 가지가 전제가 되는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모든 체제가 논리적으로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은 반듯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전체주의의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희생자들은 완전히 산 자들의 세계에서 단절되고, 망각되어야 한다. 그들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전체주의 체제하에서는 강제수용소가 필수적인 것이 된다.

 

전체주의에 대해 읽으면서 이게 정말 그러할까? 히틀러와 스탈린과 그 신봉자들이 정말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한나 아렌트가 분석하다가 더 나아간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내내 일었다. 다시는 나타나서는 안 될 전체주의, 하지만 언제든지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의 손쉬운 해결책으로 전체주의에 눈길을 보낼 수 있는 가능성 사이 세계는 처해 있다. 한나 아렌트가 유대인 학살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나 자신은 전체주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이런 비인간적인 체제가 존재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이런 사악한 체제는 인간의 본성에 숨겨져 있는 사악함의 발로인가? 한 개인의 사악함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온 독일 국민들과 온 소련 국민들이 침묵으로 일관할 수 있단 말인가?

 

한나 아렌트는 이 책에서 인권에 대해서도 논하는데, 천부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천부의 인권이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문명사회의 한 사람이 천부의 인권에 호소해야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저 아득한 옛날 원시의 동굴에 살았던 미개한 원시인이 인간이라는 이유로 가지고 있었던 것과 똑 같은 인권에 호소해야 한다면 이는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영국의 철학자 버크는 천부의 인권보다는 차라리 영국인의 권리를 갖겠다고 했다. 실제로 1차세계대전 이후 민족국가가 형성되면서 수많은 무국적자들이 국경을 이동하게 되자 큰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들은 인간으로 태어났기때문에 소유하게 되는 인권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라리 아무 쓸모도 없는 국적을 계속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나 아렌트가 주장하는 것은 권리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정치라면,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이며, 정치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이 되는 것은 전체주의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도록 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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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성의 칼날: 찰스 길리피스 지음/ 이필렬 옮김/ 새물결 출판사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 <쥐라기공원>에서는 호박속에 화석으로 남은 모기의 피로부터 공룡의 DNA를 채취하여 공룡을 복원시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쥐라기'라는 말은 지질학에 나오는 표현이다. 지구의 장구한 역사를 구분할 때 지질시대로 구분한다. 지질 시대는 선캄브리아기,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나누는데, 공룡들이 지구상에 활보했던 시기는 중생대이다. 이 중생대는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로 나뉜다. 공룡은 트라이아스기에 출현하여 쥐라기에 번성하였고, 백악기에 멸종된었다.

 

 

19세기에 시작된 지질학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지질시대를 일컫는 명칭, 캄브리아기 그리고 석탄기, 데본기, 쥐라기, 백악기등의 명칭은 어떻게 지어졌는가? 지질학은 생물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독일의 광산학교의 광물학 교수였던 아브라함 고틀로프 베르너(1749~1817)는 어떻게 다양한 암석들이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을 내놓았다. 모든 암석들은 지구 전체를 덮고 있던 원시 해양의 침전물로부터 생성되었다. 이를 베르너설 또는 수성론이라고 부른다. .

 

 

제임스 허튼(1726~1797)은 화성론을 주장하였다. 그의 저술 <지구의 이론>에 의하면, 과거의 사건은 현재도 작용하고 있는 과정으로부터의 귀납적 유추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으며, 암석이 나타내는 증거에 의해서만 기술될 수 있었다. 지각은 화성 작용에 의한 것과 수성작용에 의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수성작용에 의해 침전된 퇴적층은 지구 중심의 고압 고열의 작용에 의해 단단한 암석으로 변화되었으며 그 팽창력은 해저에서 대륙을 융기시켰다.

 

이후 다양한 지층이 발견되면서, 이 지층들 사이에 체계를 세우는데 고생물학의 화석이 열쇠를 제공하였다. 영국의 무명 측량기사 윌리엄 스미스(1769~1839)는 1791년 특정 종의 화석은 특정 그룹의 지층들에만 존재하고, 다른 지층에는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사실을 이용하여 주요한 암석계를 확정하는 방법을 고안했으며, 1815년 <잉글랜드 및 웨일즈의 지층의 개요>에서 고생물학적 지표를 이용하여 지층을 분석하였다.  

 

 

지층의 이름을 짓는데는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방법 즉 석탄이 발견된 지층을 석탄기, 백악이 발견된 지층을 백악기로 부르는 경우와, 데본기, 쥐라기, 페름기처럼 그 지층이 처음 발견된 지방의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1820년대에 로드릭 머치슨(1792~18710)이 실루리아기를 발견하였고, 에덤 세지위크(1785~1873)이 조수로 데리고 간 그의 학생 찰스 다윈과 함께 캄브리아기 지층을 발견했다.

 

 

1830년경에 찰스 라이엘(1797~1875)의 <지질학 원리>가 출판되면서 지질학은 이전의 아마추어적인 면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지질학 원리>는 지질학이 참된 과학으로 발달하는 것을 방해했던 장애물을 제거하였다. 즉 현존하는 질서와는 다른 질서에 의하여 지구가 형성되었다고 하는 비학문적 전제를 제거했던 것이었다. <지질학 원리>에  의하면 시간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현재 작용하고 있는 힘에다가도 충분한 시간만 주게 되면, 인간의 거처인 지구에 관찰 가능한 변화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변화가 균일하며 시간 속에서 주기적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지질학자들은 고생물학적 지표와 화석 형태의 연속을 가지고 지구의 연대를 수립하였다. 반면에 생물학자들은 지질학적 시대 구분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다. 라이엘이 종의 변이에 대해 단호한 반대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증거를 확인하지도 않고 종의 변화를 인정하는 것은 균일설의 이론에 반하는 것이었기때문이다) <지질학 원리>를 면밀하게 연구했던 다윈은 이 책의 영감을 받아 획기적 과학적 관점을 갖게 되었다. 

 

객관성의 칼날: 찰스길리피스 지음/ 이필렬 옮김

 

라마르크의 진화사상과 그 의의

 

숲 속에서는 어디를 보나 다양한 생물들이 우글거린다. 땅 속에, 풀 밑에도, 심지어 시냇물 속에도 생명은 다양한 모습으로 꿈틀거린다. 생명의 세계의 이 풍부한 다양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라마르크 이전에는 생물들이 신의 무한한 배려로 그 환경과 목적에 맞도록 설계되고 창조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른 설명이 가능할 것인가?  만일 생물이 어떤 목적에 맞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라면 적응이란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자연신학적 설명을 대신할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사람이 장 밥티스트 드 라마르크(1744~1829)였다.  

 

 

 

라마르크는 다윈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진화론 사상을 주장하였다. 그의 진화원리는 다윈과는 아주 다른 것으로 객관적 과학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생물 철학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에 근거해 있는 반면에 라마르크는 용불용설과 획득 형질의 유전을 주장하였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이런 주장을 하게 되었을까? 

 

라마르크는 한 종류의 광물이 환경의 작용에 의해 다른 종류의 광물로 변한다는 사실로 부터, 광물에는 항구적인 종이 없는다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생물계에 적용시켜 생물종도 환경의 영향아래 다른 종으로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물종이란 고정된 것이라는 당시의 견해와는 다르게 라마르크에 있어 종이란 생명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하나의 형태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인해 생물이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는가? 라마르크의 철학에 의하면 생물에 영향을 미치는 두가지 요인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생물에 내재해 있는 힘이며, 둘째는 물리적 환경의 영향이다. 그리고 생물과 무생물(환경)의 투쟁의 결과로 다양한 종이 발생한다. 생명의 힘은 생물이 끊임없이 복잡한 형태로 변하도록 작용을 한다. 그리고 물리적 환경의 영향은 이 자연스러운 연속적 변화를 깨뜨리고 불연속을 초래한다. 이 불연속으로 인해 종사이의 간극이 나타난다.

 

환경의 변화는 요구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요구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낳는다. 행동의 변화는 새로운 습관이 되고 특수한 기관을 변화시켜 마침내 생물체 일반을 바뀌놓게 된다. 그는 두가지 법칙을 끌어낸다. 즉 기관은 사용 여부에 따라 발달하거나 퇴화한다는 것, 그리고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획득한 형질은 유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획득 형질의 유전은 옳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마르크는 생물학의 연구 방향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당시에는 현재 보이는 자연의 모습만을 연구하고 있었던 반면에 라마르크는 보다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연의 추이, 즉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였던 것이다. 즉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생물이 변화되어 왔는가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를 개척하였던 것이다. 라마르크의 생물학은 객관적 과학으로 편입되지는 못했지만 생물학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함으로 다윈을 위한 길을 열어놓았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위 내용은 객관성의 칼날의 일부분을 요약한 것으로 본인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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