귄터 그라스 지음/ 장희창 지음

 

귄터 그라스는 1927년 독일계 아버지와 카슈바이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폴란드의 자유시 단치히 교외 랑푸우르에서. 권터 그라스는 1959년 출간한 양철북으로 오랫동안 명성을 떨쳐왔다. 그리고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로 물망에 올랐지만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1999년에야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이 소설은 타이틀이 화려하다. 노벨상 수상자의 작품인데다가, 그의 소설 양철북은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미국 대학위훤회 선정 SAT 추천도서, 뉴욕타임지 100선에 선정되어 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다. 어떤 책은 행복 에너지를 발산하여 나를 전염시킨다. 집을 나서면 밝은 햇살과 푸른 하늘이 나를 반기고, 때로는 자연의 신비가 속 모습을 드러내는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양철북은 혼란스러운 느낌, 끈적 끈적한 보이지 않은 오물이 묻은 느낌을 주었다. 집 밖을 나설 때 나를 반기는 것은 우중출한 회색의 대기였다. 어디서 이러한 느낌이 나오는 것일까?

 

귄터 그라스는 전후 독일의 작가이다. 그는 엄청난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맨 몸으로 부딪혔었다. 그것도 가해국인 독일의 국민으로, 실제로 전차병으로 참전하여 미국의 전쟁포로가 되기까지 하였다. 아마 전쟁이 끝나고 그 의미를 돌이켜 보면서 그의 예리한 감성이 포착했던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 자신도 어쩔 수 없었던 시대의 흐름, 그리고 그에 역행하지 못했던 회한이 그의 책 속에 스며 있어 독자인 나에게 까지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닐까?  

 

 

 

그라스는 추악한 전쟁으로 무작정 끌려 들어갔던 독일의 소시민들 모습, 그리고 지성인들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자 한 것일거다. 이 소설에 나오는 수많은 소시민들의 모습은 중심을 잃고 시대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는 꼭두각시처럼 그려진다. 숭고한 도덕성은 찾아 볼 수가 없으며, 단지 탐욕스러운 인간 육체의 욕망에 따라, 저항하지 않고, 아니 이미 저항할 마음도 정신도 없는 것인지 모른다. 어쨌든 이성과 지성이 지배하지 않는 영역을 활보하는 소시민들의 모습들.

 

오스카는 98센티미터의 난쟁이이다. 세살때 계단에서 떨어져 뇌를 다친 이후로 성장이 멈추어 버렸다. 하지만 그의 지성은 이미 날 때 부터 성인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소설 속의 오스카와 화자인 '나'는 동일 인물이기는 하지만, 엄연한 구별이 있다. 오스카는 성장하기를 거부하는 외부에서 비치는 존재이며, '나'는 이미 성장한 내면의 오스카를 가르킨다.

 

양철북의 주인공인 오스카는 당시의 표리부동한 지성인들의 모습을 풍자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독일 사회주의의 발호를 경계하고, 그것에 저항해야 한다는 부르짖음이 분명 그들의 마음과 정신 속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두려움 또는 현실에서의 안위등의 욕망에 이끌려 타협해 버렸다. 이러한 표리부동의 행동하지 않는 지성인들은 성장하기를 거부한 오스카, 뒤틀어진 오스카의 모습으로 표상되었을 것임데 틀림없다.

 

귄터 그라스는 그러한 지성인들을 오스카에 비한다. 양철북에 나타난 오스카의 모습은 비틀어진 악인의 모습이다. 비록 갈색 고수머리에, 깊고 깊은 초록색 눈, 그리고 부드럽고 우아한 손을 가지고는 있지만 난장이에다 곱추의 등을 가진 이중적인 모습의 나쁜 놈이다. 오스카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어머니, 얀 브론스키, 마체라트, 그리고 먼지떨이 단원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심지어 오스카가 사랑했던 간호사 도르테가도 그가 죽였음에 틀림없다. 그는 뻔뻔하게도 그 사실을 부인하지만.

 

오스카의 양철북 소리는 소시민들을 춤추게 한다. 지성인들의 허황된 사탕발림과 같은 소리에 아무 것도 모르는 소시민들은 장단을 맞춘다. 이러한 짝짜꿍은 인류를 비참한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 들게 하였다. 지성인들의 책임을 일깨우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대는 어떤 북소리를 발하는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귄터 그라스의 자기 변명인지 가혹한 풍자인지, 헷갈리게 한다.  그 부분에서 오스카는 계속해서 '검은 마녀'에 대해 이야기한다. 쫓고 있는 검은 마녀, 실재하는 검은 마녀... 귄터 그라스는 인류는 어쩔 수 없이 검은 마녀에 의해 쫓기는 신세이니, 그들의 정의롭지 못하고, 위선적인 모습은 인류의 숙명적인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그가 경멸하고 모욕했던 독일의 소시민들과 지성인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것이 풍자라면, 오히려 그 추악한 전쟁의 당사자로서의 부끄러움을 검은 마녀에게 돌리려는 당시의 독일 지성인들의 얄팍한 속마음을 까발리는 또 하나의 속 시원한 외침일 것이다.

 

귄터 그라스는 양철북을 통해 전후 독일 사회의 추잡한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가? 귄터 그라스는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바늘로 찌르는 아픈 질문을 던진다. 

 

 

 

 

양철북은 1899년에서 1954년에 걸친 독일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1부는 오스카의 할머니 안나 브론스키가 방화범인 콜야이체크와 만나는 오스카의 어머니 아그네스를 낳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오스카의 탄생과 그의 아동기를 거쳐 정치적 파국, 즉 단치히에서 <수정의 밤> 사건이 일어나는 시기까지를 다룬다. 제2부는 그라스의 고향이기도 한 단치히의 폴란드 우체국 방어전을 발단으로 하는 전쟁 시절부터, 과거의 애인이자 의붓 어머니인 마리아와 의붓동생 쿠르트를 데리고 러시아군에 의해 점령된 단치히에서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 3부는 전후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뒤셀도르프로 온 오스카의 개인적 운명과, 정신 병원에 수감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는 무명지 사건에 얽히 이야기등으로 이어진다. (장희창의 해설중에서)

 

 

 

 

 

 

 

 

 

 

'읽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번역의 미로  (0) 2014.03.28
번역가의 길에 관심이 있나요? / 번역은 글쓰기다  (0) 2014.03.27
번역의 탄생  (0) 2014.02.27
율리시스  (0) 2014.02.21
역사란 무엇인가?   (0) 2014.02.1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