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사  김영숙 지음/ 휴먼니스트

 

에스파냐어를 전공했던 사람이 마흔 살 즈음에 미술사를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다? 열정이 부럽다. 이 책의 지은이 김영숙씨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모두가 쉽고 재미있게 미술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책까지 남겼다. 이 책에서는  원시시대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으로부터 현대의 피카소, 몬드리안에 이르기까지의 서양의 미술사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서양의 미술사는 그리스로부터 시작한다. 그리스인들은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래서 실제의 인간의 모습보다는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신들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주로 조각하였다. 프락시텔레스의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운 아프로디테를 묘사한 누드상으로 이를 기점으로 아름다운 여체를 묘사한 작품들이 뒤를 이었다.

 

프락시텔레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기원전 350년경, 한 쪽 다리에 약간 힘을 뺀 콘트라포스토 자세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전에는 항상 옷을 입은 여자의 모습을 표현했지만 프락시텔레스는 과감하게 아름다운 여체의 누드를 표현하였다.

 

고대 로마 사람들은 그리스의 문화와 예술을 적극 받아들였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이 만든 청동조각을 석고로 본뜨고 대리석으로 복제했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작품은 로마인들이 복제한 것들이다. 

 

로마인들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초상이 발달했다. 그리스의 조각상들이 이상적인 모습을 추구하면서 서로 비슷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주인공의 개성과 표정이 두드러진 로마의 조각들은 그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로마의 예술은 건축물에 두드러진 장점을 보인다.

 

콜로세움, 석회석, 48.5m,5만명이 들어갈 수 있는 원형경기장, 3층으로 지어졌으며, 기둥들은 1층 도리아식, 2층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으로 되어 있다.  

 

중세시대는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인정된 4세기경부터 비잔틴 제국이 힘을 잃었던 14세기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에 미술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동로마제국에서는 성상 숭배 금지로 인해 조각, 그림등의 미술이 제약을 받았지만 성당 건축물과 부속 장식물들이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성당에는 기독교와 관련된 모자이크로 꾸며졌다. 반짝이는 유리조각을 표면을 깍지 않은 채 사용하여, 햇살이 비치면 반사된 빛으로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중세시대의 종교화는 성경의 인물들을 묘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일반 백성들에게 교육적이었다.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 내부, 532~537년, 거대한 돔을 지탱하는 기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세계 8대 불가사이중 하나라나요.

 

1290년에 십자군 전쟁이 끝나면서 유럽에는 큰 변화가 인다. 십자군 전쟁의 패배로 유럽인의 시각은 신으로 부터 인간에게로 향하게 된다. 이슬람 문화와의 접촉으로 동방과의 교류를 촉진되었다. 무역과 교류의 중심지로 항구 도시가 번성하면서 부를 쌓은 가문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있는 메디치가는 문화와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후원함으로 르네상스 문화가 피어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르네상스는 '다시 태어나다'를 의미를 가진 프랑스 말이다.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인간 중심의 문화가 다시 살아난 시기였다. 이슬람문화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었다. 고대 인본주의적인 그리스 로마의 문화가 이슬람과의 접촉으로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르네상스의 기운이 움텄던 것이다.

 

조토 디 본도네는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은 중세의 그림과는 달리 자연스러웠다.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냄으로 중세의 벽을 깨고 자연주의 그림을 다시 부활시켰다.

 

조토 디 본도네 <애도>, 1304년, 프레스코, 파란색 배경에 사람들과 천사들의 표정들이 자연스럽다

 

중세에는 고대 그리스의 신화를 그린다거나 여자의 몸을 누드로 그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서 고대 그리스처럼 인간의 몸이 그림이나 조각을 통해 누드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보티첼리는 14세기 최고의 화가중 하나였으며, 신화속 여신들의 아름다운 누드화를 그려 르네상스 미술을 꽃 피우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5, 캔버스에 템페라, 제피로스가 봄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오른쪽에는 봄을 상징하는 꽃의 여신이다.

 

르네상스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야말로 천재였다. 천문, 기술, 생물, 예술등 모든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1만 5천장 분량의 노트를 남겼다. 그의 노트들도 하나의 작품이었다. 다 빈치의 해부학에의 관심은 인간의 몸을 자연스럽게 그리는데 기여한 바가 많다.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보이는 대로 그리려는 자연주의적 방식의 한 가지인 원근법을 완벽하게 사용하여 어디까지가 벽이고, 어디서부터가 그림인지 헷갈릴 만큼 사실적이다. 

 

다 빈치의 노트의 일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1503~1505, 목판에 유채, 자연주의의 부활이라는 르네상스시대의 화가답게 이전의 초상화와는 달리 무척 사실적이며 자연스럽게 인물의 표정을 표현했다. 옆모습이 아니라 살짝 옆으로 비켜 앉아 몸의 4분의 3이 정면을 향하는 초상화는 이전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보였다. 윤곽선을 진하게 그리지 않고 흐릿하게 처리하는 스푸마토 기법은 모나리자의 미소를 신비롭게 만든다. 

 

중세에는 대상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에 더 관심을 두었지만 르네상스시대의 자연주의는 사실적으로 자연스럽게 그리려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다빈치는 "미술에서 가장 으뜸은 회화이다"라고 말하는데 대해 미켈란젤로는 "조각이야말로 미술의 꽃이다"라고 주장했다. 미켈란젤로는 다빈치와 쌍벽을 이루는 르네상스의 대가이다. 교황의 명에 따라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도 <천지창조>를 4년에 걸쳐 그려냈다. 시스티나 성당 정면의 제단화인 <최후의 심판>에서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자세를 그림으로 표현했고 덕분에 이후의 미술가들은 이 작품을 토대로 쉽게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미켈란젤로를 뛰어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피에타>, 1499, 대리석, 미켈란젤로를 대가의 자리에 올린 작품, 피에타는 이탈리아말로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라는 의미이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에 너무 평온해 보이는 마리아의 모습에 대해 미켈란젤로는 "어머니는 인간의 어미와 다르게 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처럼 마리아를 특별히 더 젊고 아름답게 이상화했다.

 

라파엘로 산치오는 르네상스의 위대한 예술가를 말할 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와 늘 어깨를 나란히 하는 화가이다. 라파엘로는 두 거장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뛰어난 작품들을 보면서 그것을 자신의 작품에 완벽하게 응용하였다. 그는 다빈치로부터 스푸마토 기법과 삼각형 구도를 배워,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에게서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자세를 어떻게 그릴 수 있는지를 배웠다.  그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는 다 빈치, 미켈란젤로는 물론 그 자신의 얼굴도 그려놓았다 한다.

라파엘로 산치오 <카니지아니 마리아>, 1507, 목판에 유채, 서 있는 요셉과 왼쪽의 요한과 그 어머니, 오른쪽의  마리아와 예수가 전체적으로 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다

 

 르네상스의 미술은 보이는 대로 그리려는 자연주의적 성향을 보이긴 했지만 과격하게 슬픈 장면이나 흥청망청 즐거워하는 식의 감정 표현을 무척 자제했다. 아름다움의 이상적인 표현을 중시하였던 고대 그리스의 문화의 정신을 이어 받아 그림이나 조각품에서 등장인물이 더욱 우아하고 품위있고 차분해 보이기를 원했다. 감정을 표현해도 되도록 조용한 느낌이 나도록 처리했다. 그래서 르네상스는 '정적이다'라고들 말한다.

 

라파엘로가 사망한 1520년 경, 마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이 시작된다. 1527년에는 에스파냐제국의 왕이 군사를 이끌고 로마로 쳐들어 와 엄청난 학살을 저질렀다. 그리고 도시는 하루 아침에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라파엘로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시작된 혼란스러운 상황은 미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평온한 표정, 완벽하고 이상적인 인물들의 우아한 자태, 안정된 구도와 우아한 색감을 자랑하던 르네상스 미술이 점점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라파엘로가 죽은 후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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