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읽는 즐거움/ 박영규 지음/ 이가서


도덕경은 무위당님의 블로그에서 일독한 적이 있다. ☞http://blog.daum.net/taoshi

도덕경의 핵심 내용에 인상은 깊었지만,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도서관에서 서가를 뒤적이던 중 "도덕경 읽는 즐거움"이란 책을 발견하고 머리말을 보니 '노자와의 즐거운 전투를 기억하며'라는 표제가 눈에 띄었다.

게다가 도덕경을 비판적으로 살피면서 노자의 사상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였다. 또한 도덕경의 원문이 실려 있으며

어려운 한자의 음과 뜻을 알려주어 한문 공부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였다. 


제1부는 도덕경을 즐기기 위한 예비지식으로 도덕경에 대한 개관적인 정보, 노자와 공자의 본질적인 차이, 노자 이전의 도가 사상가들, 노자의 제자들, 열자와 장자의 삶과 사상을 다룬다.

제2부는 지식으로 읽는 도덕경으로 1~20장까지의 내용을 세밀하고 해석하면서, 다른 주석서와 비교하고 있다. 또한 다른 종교와 철학을 노자의 사상과 대립시켜 설명하면서 객관적으로 도덕경을 조명하는데 주력했다.

제3부는 명상으로 읽는 도덕경으로 21~37장까지를 다루면서 필자의 잛은 명상을 덧붙여 놓았다.

제4부는 반론으로 읽는 도덕경이란 제목아래 덕경에 해당하는 38~81장까지를 다루고 있다. 각 장 아래 짧은 반론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도덕경 내용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비판적인 눈으로 도덕경을 보도록 하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생각나는 구절은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외 몇가지 밖에 없다. 

하지만 도덕경에서 노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도'를 따르는 길이 어떠한가를 보여주고자 함이란 것을 알겠다. 

그리고 노자의 '무위사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무위無爲'란 '하지 않음'으로 번역하는데,

이 '무위'란 것이 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되는대로 되라는 식의 태도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뭔가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위'를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정의하려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가치있는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일을 하는데 있어, 그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 '무위'가 아닐까? 즉 일을 함에 있어서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위사앙이 아닐런지.

다만 자연의 순리에 맞게끔 일을 해 나가는 것이 '무위자연'사상일 것이다. 이렇게 일을 순리대로 자연의 도리에 맞게 해 나가는 행위를 '위무위爲無爲'일 것이다.

이런 '무위자연' 또는 '위무위'를 실행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시된 것이 자신을 한껏 낮추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강요받지 않고 스스로 일을 하게끔 하라는 것일테다. 물론 일을 잘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 박영규님의 도덕경 연구는 초반부에 세심히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그의 도덕경 비판은 노자 사상의 올바른 이해의 부족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노자의 생각의 틀과 박영규님의 생각의 틀은 상당히 달르다는 것을 느낀다. 서양철학의 영향 아래 있는 우리 시대의 생각의 틀은 이분법적이며 논리적인 면이 강하다. 하지만 동양사상을 서양사상의 틀에 따라 논하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한 예로 '위爲'라는 글자 하나가 문맥에서 갖는 의미가 각각 다르다. 그러나 서양학문의 전제에서 본다면 두 개의 다른 개념에 하나의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아마도 도덕경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러함에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맹자> / 최인호 지음

 

■ 묵자와 양자

 

■ 묵자의 사상 

 

묵자는 중국 역사상 가장 특이한 사상가이다. 묵자는 유가의 제자였으나 유교의 문제점에 실망한 이후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을 발전시킨다. 묵자가 공자에게 느낀 최초의 불만은 봉건제도가 지닌 모순으로 부당하게 고난을 겪어야 되는 백성들의 비참한 현실에 눈을 떴던 데 있다묵자 자신도 천민 계층 출신으로 동일한 고난을 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유가가 통치계급의 입장을 옹호하며 예악을 위주로 하여 서주 초기의 봉건 사회를 재현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큰 반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묵자는 사람들의 가깝고 먼 관계와 존비 관계를 엄격히 따져 봉건 계급 제도를 확고히 하려는 유가의 태도, 그리고 예악이나 따지며 귀족이나 제후들에게 기생하는 유가의 비생산성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묵자의 사상을 전하는 책 <묵자>는 유가의 모순을 공격하는 통렬한 비판적 성격을 띠고 있다. 

 

묵자의 사상의 핵심은 '겸애'이다. "자기를 죽여 천하를 보존케 할 수 있다면" 그 길을 따라 "자기를 죽여 천하를 이롭게 하"려는 사상이 묵자의 사상이다. '천하의 모든 나라도 하늘의 고을이요 천하의 모든 사람도 하늘의 신하이니, 하늘은 모든 신하들인 만 백성을 차별없이 공평하게 사랑하고 있다.' 이러한 공평한 하늘의 사랑은 겸애라는 사상으로 발전된다. '겸'이란 자기와 남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 자기와 남의 구별이 없는 것차등을 두지 않고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대해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묵자의 겸애론은 나와 너의 구별이 없는 절대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이다. 

 

묵자의 사상은 평화와 사랑을 기치를 드 높인다. 묵자의 평화는 비폭력 평화가 아닌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여 평화를 이루려는 현실참여적 평화였다. 묵자의 사상을 따르는 제자들은 하나의 학파를 초월한 일종의 종교 집단을 형성했다.

 

 

 

■ 양주의 사상

 

양주는 노자가 주창한 자연주의 옹호자로 도가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이다. 양주는 '삶을 대하는 유일한 방식은, 인위적으로 방해하거나 바꾸려 하지 말고 삶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라고 주장함으로 즐겁게 사는 것이 바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며, 이는 남이 아닌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지나친 집착과 탐닉은 지나친 자기 억제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고, 남을 돕든 사랑하든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려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천하는 안정될 것이다." 라는 말은 노자의 사상인 '무위'를 강조한 말이다. 저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더욱 더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판단한 그는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야 말로 세상을 구할 방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야말로 실로 못하는 일 없이 다 하고 있다'(무위무불위) 노자적 무위사상에, '내 터럭 하나로 온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해도 내 터럭 하나라도 뽑아 주지 않겠다.'는 철저한 무위를 덧붙였던 것이다. 양주의 눈으로 보면 묵자의 겸애는 '유위'의 극치였다. 이러한 사상으로 인해 양주는 극단적인 이기주의, 개인주의, 쾌락주의자로 간주된다. 반면에 묵자는 극단적인 이타주의자집단주의자엄격한 율법주의자로 간주된다. 

 

하지만 양주는 백가쟁명의 시대에 학문의 진리를 찾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하였던 또 하나의 횃불이었다. 양주와 관련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다기망양'이란 고사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어느날 양자가 사는 이웃집의 양 한마리가 달아났다. 그래서 그 이웃 사람은 자기 집 사람들을 다 동원하여 양을 찾으러 나서도록 한 후 양주에게도 찾아와 사람을 보내달라고 도움을 청하였다. 그저라 양자는 이렇게 물었다. "허허, 양 한마리를 찾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단 말이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웃 사람이 대답하기를, "양이 갈림길이 많은 길 쪽으로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이말을 들은 양자는 갑자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하루종일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았다. 이를 본 양주의 제자 심도자는 왜 그런지 궁금해 하는 후배 맹손양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큰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린 것처럼 학문하는 사람들은 다방면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또 학문은 원래 근본은 하나인데, 그 말단에 와서 이처럼 달라지고 만 것이다. 따라서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은 것이라네"

 

이런 이야기를 통해 보자면 양자를 극단적인 개인주의자 쾌락주의자라고 평가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양자도 여러 갈래의 길로 사라진 잃어버린 양, 즉 학문의 진리를 찾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하였던 백가쟁명의 난세 속에 타오르던 또 하나의 횃불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다.

 

 

■ 유학과 묵자, 양자

 

유학은 이타적인 묵가의 겸애사상이나 이기적인 양자의 사상과는 달리 자기를 위하면서도 남을 위하는 중용을 내세우고 있다. 유가에서 말하는 사랑은 차별성을 유지하고 또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다.  유가의 사랑은 인간 본성에 근거한 것으로 만천하에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인륜관계는 반드시 친소(친함과 소원함)와 원근이 있는 것처럼 사랑을 펴는 데도 또한 선후의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유가의 논리였다.

 

맹자는 굳이 묵자처럼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발꿈치의 털까지 다 닳아 없어질 만큼 두루 사랑하고, 사람을 두루 이롭게 하기 위해서 분골쇄신하지 않아도, 인간의 심성속에 는 선천적인 선의 뿌리인 선근(양심)이 있어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선한 마음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여 '성선지설'을 주장한 것이었다. "측은 지심, 수오지심, 공경지심, 시비지심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다. 측은지심은 인이요, 수오지심은 의이며, 공경지심은 예이고 시비지심은 지이다. 인의예지가 외부에서 나에게 스며드는 것이 아니요, 내가 본래부터 갖고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맹자는 말하고 있다.

 

 

■ 묵자와 양자

 

묵자가 유가에서 파생되었다면 양주, 즉 양자는 노자에서 파생되었다. 묵자가 유가의 모순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극대화 시켰다면 양자는 노자의 사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극대화 시켰다. 묵자와 양자는 심각한 양극단의 대립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양자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묵자의 겸애론을 실현 부가능한 공리공론으로 보고 맹렬히 비판한다. 맹자는 이 두 유파를 모두 비판함으로 유가를 더 우위의 사상으로 정립하고 있다 

 

 

■ 영화 '묵공'내에 나타난 묵자의 사상

 

'읽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인호 장편 소설 유림 1~6  (0) 2015.06.04
다산 - 그에게로 가는 길  (0) 2015.05.27
소설맹자 /순자  (0) 2015.05.12
소설 맹자  (0) 2015.05.11
등대로  (0) 2015.04.2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