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프리초프 카프라 지음/ 김용정, 이성범 옮김/ 범양사


 

노자의 도덕경의 첫 문구는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이다. 이 말에는 <도>란 것은 언어로 정의할 수 없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비트켄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 마지막 말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할지어다"라고 한다. 언어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건이나 사실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도구이다. 언어외에 다른 방법으로 생각이나 경험, 또는 사건들과 사실들을 표현하는 매체도 있기는 있다. 몸짓이나 음악, 또는 미술, 심지어 수학등도 그러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언어가 가장 나은 수단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언어조차도 그 한계성으로 인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문학가들, 특히 시인들은 그 한계를 돌파하려는 지난한 과제를 향해 겁없이 돌진하는 최전선의 투사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물며 일상의 것이 아닌 사실이나 사건, 또는 경험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앞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도"의 실체는 일상의 경험을 뛰어넘은 것이기에 말이나 글과 같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리라. 또한 비트겐슈타인도 말과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리'가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게다.


그러면 일상의 것이 아닌 사실이나 사건, 또는 경험이라 도대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이것은 서로 다른 두 방향에서 경험되어진다. 그 하나는 동양의 신비주의적인 사상에서, 그리고 또 하나는 현대물리학에서 경험되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동양의 신비적인 사상이란 동양의 종교들에서 발견되는 사상을 뜻한다. 즉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에서 말하는 궁극적 실체에 대한 사상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런 종교의 현자들이 수련이나 명상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궁극적인 실체는 일상의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면에서 신비주의적이다. 현대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거시적 사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할 때, 또는 사물의 미시적 세계 즉 양자 세계를 관찰하고 연구할 때에도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관찰이나 체험을 하게 된다. 그것 역시 일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카프라는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에서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의 두 날개를 퍼득이며 거시적인 세계와 미시적인 세계를 아우르며 비상하다 문득 건널 수 없는 공고한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 공고한 벽이란 모순처럼 보이는 현상들이다. 일상의 경험에 근거한 논리나 언어는 이러한 모순을 극복할 수가 없다. 그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시간과 공간, 질량과 에너지, 입자와 파동 등은 고전물리학에서는 별개의 실체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하이젠베르크등에 의해 시작된 양자론은 이러한 객관적 실체들이 사실은 한 실체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밝혀주었다. 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실체로 시공간을 형성하고, 질량은 에너지로 에너지는 질량으로 환원가능하며, 미시세계는 때로는 입자로 때로는 파동으로 나타나는 실체들로 넘쳐난다.


현대물리학은 일상의 경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현상에 직면해 있다. 진공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가 아니다. 입자와 공간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소립자들은 '대상에 힘을 미칠 수 있는 공간의 상태' 즉 장(field)로 정의된다. 전기적인 척력은 광자의 교환으로 설명되고, 강한핵력은 강입자의 교환으로 설명된다. 물질의 최소단위를 찾아 궁극까지 파헤치려는 시도는 난관에 봉착한다. 파고 들수록 더 이상 물질은 없고, 현상, 과정, 구조등만이 남는다. 일상의 경험으로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도록 언어로 설명할 수도 없다.


현대물리학이 찾아내고 있는 이러한 세계의 본질은 이미 오래전에 동양의 종교들에서 누누히 이야기해 오던 것들이다. 불교의 空, 유교의 氣, 도교의 道 등은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실체와 닮아있다. 이제 카프라는 동양의 세계관으로 돌아갈 것을 희망한다. 이제껏 현대 과학세계를 지탱해 왔던 이원론적인 세계관, 논리에 바탕을 둔 세계관은 인류를 절멸의 상태에까지 밀어부쳤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 그것은 통일의 세계관이다. 나와 당신이 별개의 개체가 아닌 하나의 통일된 우주의 모습이라는 것, 나와 우주가 별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고대 동양의 세계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물리학의 일각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으며 카프라는 이러한 흐름에 앞장서고 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이 고전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대신했다면 이제는 '부트스트랩'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계관에 근거한 과학 혁명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프라는 현대물리학과 동양의 사상 둘 모두에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가 지향하는 세계관이 세계를 크게 바꿀 수 있는 세계관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공고한 틀에 사로잡혀 있는 세계가 그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을런지는 두고 볼 일이다. 현대물리학의 미래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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