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의 칼날: 찰스길리피스 지음/ 이필렬 옮김

 

라마르크의 진화사상과 그 의의

 

숲 속에서는 어디를 보나 다양한 생물들이 우글거린다. 땅 속에, 풀 밑에도, 심지어 시냇물 속에도 생명은 다양한 모습으로 꿈틀거린다. 생명의 세계의 이 풍부한 다양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라마르크 이전에는 생물들이 신의 무한한 배려로 그 환경과 목적에 맞도록 설계되고 창조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른 설명이 가능할 것인가?  만일 생물이 어떤 목적에 맞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라면 적응이란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자연신학적 설명을 대신할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사람이 장 밥티스트 드 라마르크(1744~1829)였다.  

 

 

 

라마르크는 다윈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진화론 사상을 주장하였다. 그의 진화원리는 다윈과는 아주 다른 것으로 객관적 과학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생물 철학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에 근거해 있는 반면에 라마르크는 용불용설과 획득 형질의 유전을 주장하였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이런 주장을 하게 되었을까? 

 

라마르크는 한 종류의 광물이 환경의 작용에 의해 다른 종류의 광물로 변한다는 사실로 부터, 광물에는 항구적인 종이 없는다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생물계에 적용시켜 생물종도 환경의 영향아래 다른 종으로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물종이란 고정된 것이라는 당시의 견해와는 다르게 라마르크에 있어 종이란 생명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하나의 형태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인해 생물이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는가? 라마르크의 철학에 의하면 생물에 영향을 미치는 두가지 요인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생물에 내재해 있는 힘이며, 둘째는 물리적 환경의 영향이다. 그리고 생물과 무생물(환경)의 투쟁의 결과로 다양한 종이 발생한다. 생명의 힘은 생물이 끊임없이 복잡한 형태로 변하도록 작용을 한다. 그리고 물리적 환경의 영향은 이 자연스러운 연속적 변화를 깨뜨리고 불연속을 초래한다. 이 불연속으로 인해 종사이의 간극이 나타난다.

 

환경의 변화는 요구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요구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낳는다. 행동의 변화는 새로운 습관이 되고 특수한 기관을 변화시켜 마침내 생물체 일반을 바뀌놓게 된다. 그는 두가지 법칙을 끌어낸다. 즉 기관은 사용 여부에 따라 발달하거나 퇴화한다는 것, 그리고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획득한 형질은 유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획득 형질의 유전은 옳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마르크는 생물학의 연구 방향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당시에는 현재 보이는 자연의 모습만을 연구하고 있었던 반면에 라마르크는 보다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연의 추이, 즉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였던 것이다. 즉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생물이 변화되어 왔는가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를 개척하였던 것이다. 라마르크의 생물학은 객관적 과학으로 편입되지는 못했지만 생물학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함으로 다윈을 위한 길을 열어놓았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위 내용은 객관성의 칼날의 일부분을 요약한 것으로 본인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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