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조지오웰 지음/ 정희성 옮김

뉴욕 타임즈 선정 100선 (http://blog.daum.net/ccsj77/48

 

생각보다 훨씬 끔찍하다. 공포와 전율이 온 몸을 휘감아 돈다. '빅 브라더'의 감시의 시선은 이미 귀에 익은 상투적인 문구가 되었고,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 사적 영역의 감시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점점 높아지면서 현대판 빅 브라더의 등장에 대한 각성의 목소리 역시 큰 소리를 발하고 있다. <1984>가 오늘날 우리 시대를 위한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시작부터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복도에서는 양배추 삶는 냄새와 낡은 매트 냄새가 풍겼다> <커다란 얼굴의 포스터가 그를 노려보았다...마치 눈동가자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얼굴 아래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소설은 내내 불편한 느낌을 강요하고 있다. 모든 사무실과 방에 설치되어 있는 텔레스크린, 텔레스크린을 통해 일거일동을 엿보며 감시하는 사상경찰. 거리에선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사상경찰의 끄나풀들과 거리의 상공을 비행하는 헬리콥트. 교외의 한적한 숲길에도 몰래 숨겨져 있는 마이크로 폰. 어디에나 빅 브라더의 눈을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

 

밀폐된 공간의 불편한 느낌은 윈스터와 줄리아의 교외에서의 만남으로 조금 해소되는 듯 하다. 비교적 감시가 취약한 시골의 숲 속에서 비밀리에 만난 그들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욕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감시의 눈길을 교묘하게 피해 윈스터와 줄리아는 서로의 육체를 탐닉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탈선행위가 당에 적발되어 비참하게 끝이 날 것을 의식하면서,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나간다. 

 

그러다가 꽝!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고문과 회유와 세뇌, 위협등 온갖 끔찍한 일을 겪으면서 윈스터는 결국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된다. 마음속 깊이! 그리고 그 때 그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총알이 그의 머리에 박힌다.

 

<윈스턴은 빅 브라더의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그 검은 콧수염 속에 숨겨진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기까지 사십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오, 잔인하고 불필요한 오해여! 오, 저 사랑이 가득한 품안을 떠나 스스로 고집을 부리며 택한 유형이여! 그의 코 옆으로 진 냄새가 나는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 되었다. 싸움을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윈스터가 죽어가면서 순간적으로 생각하고 느꼈던 이 말은 소름이 오싹 돋게 한다. 그렇게 증오하고 혐오했던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되다니? <1984>의 무자비함!!!

 

 1984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권력의 잔혹성, 진실의 은폐 가능성, 자유의 말살, 허수아비 인생들, 배타적 폐쇄 사회, 인식의 조작...읽는 내내 정말 이런 비인간적이며 탈인간적인 상황이 가능할 것인가하는 생각만으로도 등짝이 으스스해졌다.

 

이러한 상황은 오직 조지 오웰의 상상에서만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한 때 5년간 버마 경찰로 근무했으며,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사직했다는 데 있다. 아마 버마에 대한 식민지배를 영구화하기 위한 영국 제국주의 경찰의 행태의 일부가 이 소설의 한 뿌리가 아니겠는가?

 

일제 식민시대를 겪어본 우리는 그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더구나 우리의 현대역사에서도 수치스럽고 저주스러운 망령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영화 <변호인>에서의 악질 경찰 차동영역을 맡았던 곽도원이 오버랩된다. 예방하는 것이 최고의 경찰들의 일이라고.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권력을 위해 무죄한 사람들이 죽어나가야만 하겠는가? 어디 이것이 영화에서의 일이기만 할까?

 

1984년은 이미 지나갔지만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1984>의 망령은 호시탐탐 전세계를 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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