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최순우/ 학고재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 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271쪽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선생의 한국미를 사랑하는 마음이 쪽빛 바다에 일렁이는 물결처럼 밀려든다. 우리 문화재에 흠결이 없을리야 없겠지만 선생의 눈은 찍고자 하는 대상만을 잡아채는 카메라의 눈처럼 한 치도 아름다움에서 비켜나지 않는다. 


선생은 회화, 전통건축과 공예, 불상과 탑, 토기와 도자기 등 모든 분야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한국 문화재 전반을 통해 흐르는 한국의 미와 얼을 내내 찾고 있다. 그 한국의 미와 얼이란 한민족의 핏줄에 면면히 이어져 오는 간결미, 소박미, 절제미, 실용미 등이다. 중국과 일본의 것과는 다른 한국 고유의 멋과 미를 일러주는 것이 마치 선생의 사명인 양 선생은 아름다운 우리말로 정성을 다해 한국의 미를 노래한다.

 

한국의 미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선생의 글도 그 못지 않게 아름답다. 우리 말이 이렇게도 아름다웠던가? 아니 이렇게 아름답게 글을 쓰는 선생의 마음 바탕이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수많은 작품들을 해설하는 선생의 글과 사진을 비교하면서 이 책을 읽고 나니 어느새 아름다움을 보는 내 안목이 훌쩍 커 버린 느낌도 든다. 실로 남이 보지 못하는 아주 사소한 것도 세심히 살피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전문가의 향기가 내 몸을 스치면서 그 흔적을 남기기라도 한 듯 내 마음은 한결 뿌듯해 진다. 얼른 박물관에 들러 작품들을 하나 하나 꼼꼼히 살펴보고 한국의 미를 찾아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은 충동이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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