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우리와 거의 같은 위도상에 위치해 있기때문에 여름철에는 무척 덥습니다. 우리의 여름은 고온다습하여 무덥지만, 터키의 여름은 비가 오지 않는 건기이기때문에 뜨겁게 느껴집니다. 히에라폴리스에 위치한 파묵칼레를 찾았을 때에도 뜨거운 햇볕은 여지없이 지면을 달구어 놓았습니다. 



히에라폴리스에 들어서자 언덕 저 멀리 원형극장이 보입니다. 여기저기 예사롭지 않은

돌멩이들이 오래전에 여기에 도시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도시는 발굴율이 채

 20%에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제대로 발굴되지 못하고 흔적만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

주는 이런 장면들은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노천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모습이 아

닌가 생각됩니다. 


히에라폴리스는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왕

국의 텔레포스왕이 왕비 히에라를 기리기 위해 지은 도시라고 합니다. 

 

 날씨가 너무 뜨거워 히에라폴리스의 유적들을 돌아보는 것은 포기하고 목화의 성이란 뜻을 지닌 파묵칼레를 구경합니다. 이 지역은 석회암지역으로 온천이 나는 곳입니다. 온천물이 석회암위를 수만년을 흐르면서 만들어낸 자연의 작품이 파묵칼레입니다. 하늘빛 물이 신비롭습니다. 


관광객이 들어갈 수 있도록 허용된 부분이 있습니다. 모두들 걷어부치고 물 속에 발을 담가봅니다. 시원하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물이 느껴집니다. 이 뜨거운 날 시원한 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서양사람들은 수영복을 입은 채 온 몸으로 파묵칼레의 물을 느끼고 있습니다. 단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여기는 미끄럼 주의 지역입니다. 이번에도 나이많은 어떤 분이 넘어지는 바람에 구급차가 출동을 했답니다.   

 

주어진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지라 아주 짧은 시간 주위의 유적을 둘러봅니다. 덩그러니 남겨진 흔적들은 당시의 영화와 시간의 파괴력을 무심하게 보여줍니다.  

 

히에라폴리스 박물관도 있고, 클레오파트라가 다녀갔다는 온천도 있었으나, 다 둘러보지는 못하고, 저 언덕에 위치한 원형극장만은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땡볕에 구슬땀을 흘리며 올라갑니다. 

 

원형극장 가장 높은 계단에 앉아 당시의 느낌을 살려 보려 하였습니다만, 상상력의 빈곤함만 느낄 뿐입니다. 


이 원형극장보다 높은 곳에는 빌립의 순교지가 있다고도 하는데, 거기까지는 가 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히에라폴리스의 미지근한 물에 발을 담그고 나니, 성경 요한계시록에 '네가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예수께서 라오디게아회중에 하신 말씀입니다.   


히에라폴리스는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지 못한 미지근함으로 기억에 남을 듯 합니다.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언덕위를 올르다 일사병에 걸릴 뻔 하였으나, 호텔 수영장에서 열기를 식힐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터키 - 신화와 성서의 무대, 이슬람이 숨쉬는 땅 / 이희철 지음/ 도서출판 리수

 

언젠가 한 외국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가장 여행하고 싶은 나라는 터키라고... 왜?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특이한 자연경관은 잊을 수 없는 풍광이라고...

 

 [해외여행] 터키 카파    파묵칼레 고대로마 유

 좌) 카파도기아    우) 파묵칼레

 

몇 년전에 중국 청도에 사는 지인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떠난 그 여정은 나에게 여행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복잡한 시내에 쇼핑하러 갔을 때였다. 나는 슬며시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난 중국어를 전혀 모르며, 더구나 지인의 집주소와 전화번호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안내하는 지인을 놓치면 끝장이다 싶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복잡한 군중속에서 그 지인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따라가야만 했다. 아픈 기억이었다. 

 

여행에 문외한인 내가 그 때 배운 사실은 '여행의 성공여부는 오로지 사전 준비에 달려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진리였다. 유홍준씨가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에서 말한 바,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만큼 보인다."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 이번 터키여행을 즈음하여 사전준비차원에서 책을 두권 읽었다.

 

그 중 하나가 <터키- 신화와 성서의 무대, 이슬람이 숨쉬는 땅>이다. 

 

 

 

 

 

왜 터키를 최고의 여행지라고 할까? 여기에는 두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터키는 역사와 문화의 보고이라는 점과, 둘째, 터키의 독특한 자연경관때문이다. 

 

터키의 역사와 문화는 풍요롭다.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동양과 서양이 길목에 위치해 있어 두 문화가 교차하고 있는 곳이 터키이다. 유럽문명과 아시아 문명,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 등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문화들이 얽혀있는 터키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신비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터키는 동서고금, 그리고 성과 속이 한자리에 얽혀 있는 다양성의 나라이다. 

 

<터키의 역사>

터키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터키가 위치안 아나톨리아 반도의 굻직한 역사적 시대는 멀리 구석시시대에까지 이른다.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히타이트 시대, 프리기아 시대, 우라르투 시대, 리디아 시대, 페르시아 지배 시대, 헬레니즘 시대, 로마 시대, 비잔틴 시대, 셀주크 시대, 오스만 제국시대를 거쳐 오늘날 터키 공화국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차탈회윅에서는 그 역사는 기원전 60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석기시대 인류 최초의 집단 주거지가 발굴되었다.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히타이트제국의 유적인 '보아즈칼레'가 있고, 프리기아왕국의 황금의 손 미다스왕의 유적인 고르디온 유적도 있다. 그 유명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의 배경이 된 트로이도 오늘날 트루바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시대를 거쳐 BC 546년 이후 페르시아의 지배아래 있다가 알렉산더의 정복으로 헬레니즘 문화에 편입된다. 그리고는 로마의 지배를 받다가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영토가 되어 고대 그리스도교의 영향력 아래 있게 된다. 이로 인해 이 지역은 그리스도교의 역사가 숨쉬는 곳이 되어 그와 관련된 유적도 많이 남아 있다.

 

AD 1071년 셀주크투르크 제국이 아나톨리아 반도에 침공하자, 이로부터 그리스 로마 세계로부터 터키 이슬람 세계로 바뀌게 된다. 셀주크제국의 변두리에서 시작된 오스만제국은 1453년 비잔틴을 점령함으로 동로마제국에 종말을 고하고 대제국을 건설한다.

 

이후 600여년간 세계를 호령하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서방 열강 세력아래 떨어진다. 이 때 터키 공화국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의 혁혁한 영토회복 전쟁의 승리로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설립되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현재 터키인들의 조상은 기원10세기경에 아나톨리아 반도에 들어온 터키족이다.  터키족은 990년 아나톨리아에 강력한 셀주크 제국을 건설하였고, 셀주크제국 말기에 부르사지역에 있던 오스만토후국이 1299년 셀주크로부터 독립하여 오스만 제국을 이룬다. 이 오스만 제국이 터키 공화국에 이어진다. 

 

흥미롭게도 터키는 튀르크라고 불리는 돌궐족의 후예라고 한다. 고대 중국의 북방을 위협하여 만리장성을 쌓게한 장본인들인 유목민족 흉노족(훈족)과 돌궐족이 아나톨리아 반도로 들어와 터키인의 조상이 된 것이다. 

 

아뭏든 만여년에 이르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역사의 숨결이 이 지역 곳곳에 산적해 있어 역사와 문화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유명한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터키를 인류 문명이 살아있는 야외 박물관이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터키-신화와 성서의 무대, 이슬람이 숨쉬는 땅>에서는 간략한 터키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아울러 관광지, 휴양지등을 역사에 비추어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터키인의 생활양식이나 사고 방식등을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이제 하나의 욕심이 더 난다. 간단한 터키말을 구사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하는 바람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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