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의 모든 것 - 죽서루 / 이희봉 지음/ 한국학술정보



태백산맥에서 발원한 물길은 오십구비를 돌아 삼척에 이르러 깍아지른 벼랑에 부딪히며 휘돌아 동해로 흘러든다. 이 벼랑가에 바짝 붙어 서 있는 누정 죽서루.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죽장사'라는 옛 절의 서쪽에 있었다고 해서 죽서루라 불린다. 죽장사는 대밭에 둘러 싸인 절이란 뜻인데, 아마 그 절은 없어도 아직도 대밭은 남아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 건축된 죽서루는 조선시대 들어서서 삼척도호부 객사 부설 누정으로 역할을 하였다.


죽서루에서는 관청에서 주관하는 각종 연회가 열렸을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들의 노래와 춤, 그리고 술에 취한 선비들은 다시 한 번 죽서루 주위의 경관에 취했을 것이다. 서쪽의 아찔한 벼랑 아래를 내려다 보면 깊고도 푸른 오십천 물길, 그 맑은 물속엔 물고기들이 노닐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면 개울 건너편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 그리고 그 너머로 옹기종기 마을이 정겹게 보인다. 북쪽으로 비스듬히 시선을 돌리면 흘러내려오는 오십천 개울물이 한 눈에 들어오고 멀리 두타산 자락이 아련하게 보인다. 절벽 반대편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멀리 봉황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시인묵객들은 관동팔경 죽서루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이희봉님은 죽서루를 매개체로 하여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현재 건축은 공학으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건축은 공학이라는 편협한 테두리를 벗어나 전방위적으로 보아야 한다. 건축물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이기에 사람이 살아가는 삶과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건축은 단지 건물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 건축학은 근본부터 인문학과 공학과 예술의 융합체였다. 건축이란 문화이다. 


이희봉님이 죽서루를 바라보는 시각은 머리말에 여실히 드러난다. 


이 책은...죽서루라는 자그마한 건물 하나를 가지고 온 세상을 보는 책이다.... 죽서루를 관광 문화 유산 답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층을 꿰뚫어 깊이 보는 책이다. 기존 보아오던 방식, 즉 문화재 안내판이나 학계의 방식을 뒤집는다. 기존 건축계에서 건물을 나무와 기왓장으로 구성된 구조체로 보는 병이 깊다. 세계 모든 건축은 장식이 구조와 통합되어 하나가 된다. 형태와 공간이 합쳐져 건축이 된다. 죽서루의 문양 장식은 사람의 뜻을 담고 공간을 삶을 담고 있다. 설계의도, 설계정신을 본다. 건축은 철학으로부터 나온다....죽서루는 흔히 하듯 밖에서 사진 찍는 감상용 대상물이 아니라 그 속에 사람을 담고 생활을 담는 공간이다. 자연을 내다보고 시를 읊던 건물이다. 노래와 춤이 있고 술마시고 여흥을 즐기던 공간이다. 과거 선조들의 사회가 있고 제도가 들어 있던 공간이다. 사물로만 보는 건축계의 유물론적 죽서루를 넘어 사람을 중심으로 죽서루를 본다.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를 통하여, 그림을 통하여, 또 관아 생활 속에서의 죽서루를 찾아낸다. 건축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총체적 체험이다."


기존 건축계에서는 죽서루가 원래는 5칸 맞배지붕 누정이었는데, 후대에 증축되어 7칸 팔작지붕 누정이 되었다고 본다. 증축설은 5칸의 건축형식과 양쪽 2칸의 건축양식이 다른다는 것에 근거를 두고있다. 이에 반해 이희봉님은 죽서루가 처음부터 7칸 팔작지붕으로 지어졌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그 주장의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죽서루의 구조에 대한 면밀한 분석, 그리고 죽서루를 그린 조선시대 그림들을 통해 '지어진 형식이 다른 것은 지어진 시대가 다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래 설계 의도에 따라 다른 형식으로 지어진 것이다'고 반박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여러 조선시대 연회도를 비교 조사한 후 그 분석의 결과를 죽서루에 적용시켜 이 죽서루의 각각의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보여주면서 죽서루의 현재의 형태는 애초부터 의도된 것이었다는 논증이다. 


여러 연회도를 비교해보면 주빈의 자리, 신분이 높은 사대부의 자리, 신분이 낮은 사대부의 자리, 주빈을 보좌하는 시종들의 공간, 잔치의 흥을 돋우는 기생과 무희들의 공간, 악사들의 공간, 호위 병사들의 공간등 신분과 계급에 따른 철저한 공간배치가 드러난다. 이러한 공간배치를 죽서루에 적용하면 7칸 팔작지붕의 누정은 이러한 시대상을 정확히 반영한다. 단지 육안만으로 건축물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를 초래할 수 있다. 역사적인 나이를 갖는 건축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흘러간 시간속에 감추어져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통찰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저 현재라는 공간과 시간의 테두리안에서 남아 있는 건물과 그 구조만을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여 건물이 지어질 당시의 관습이나 풍습, 사회상등을 고려해야만 그 건축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건축의 모든 것 - 죽서루'를 읽고 옛 한국건축물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기둥, 대들보, 포작(공포), 포대공, 종보, 대공, 종도리, 중도리, 주심도리, 외목도리, 장여, 서까래, 처마, 겹처마, 부연, 추녀, 주두, 첨자, 살미, 소로, 창방, 외기도리, 눈썹천장, 서까래노출천장(연등천장), 우물천장, 맞배지붕, 팔작지붕(합각지붕), 우진각지붕, 모임지붕, 주심포, 다심포, 익공식등 수많은 건축용어들을 알게 되었다.   


어서 죽서루를 찾아보고 알게 된 사실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아니 죽서루가 아니라도 괜찮다. 기와 지붕이 올려져 있는 건물을 보게되면 언제나 고개를 들어 기둥위에 놓여진 대들보와 도리, 그리고 공포를 살펴보고, 천장의 모양을 살펴볼 것이다. 누정을 만나면 이제부터는 반드시 그 안 공간에서 풍류를 즐기는 한량이 되어 기둥사이로 찍히는 풍경에 취해보고 싶다. 예전 안동 병산서원을 들렀을 때, 만대루 기둥 사이에 펼쳐진 풍경이 떠 오른다. 멀찍히 돌아흐르는 강물과 하얀 모래밭, 그리고 우뚝 서 있는 병산의 우뚝선 벼랑이 마치 병풍의 화첩처럼 펼쳐져 있었더랬다. 누정은 밖에서 보는 눈 맛도 맛이려니와 그 안에서 내다 보는 풍경이 누정의 제일 존재 의미임을 잊지 말기.


   

목차


01 시작하면서

02 죽서루 훑어보기

03 라이트의 낙수장과 우리의 죽서루

04 죽서루 건축물 자세히 보기

05 옛 시와 그림의 죽서루

06 현상학의 체험 죽서루

07 유물론자의 죽서루

08 연회도로 본 옛 생활

09 관아 생활을 담은 죽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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