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헤세의 작품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는 인생의 수레바퀴 아래서 신음하던 소년, 청춘의 방황기에 고뇌에 찬 소년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인생의 단계에 그 책을 읽었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나처럼 느껴졌다는 걸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된다.
이렇게 헤세는 내 마음에 들어와 있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었지만 단지 '데미안'을 읽는 데 그쳤다. 그 당시에는 ...아니 지금도 그렇지만, 아직 '데미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한 상태였던 것 같다. 단지 길을 찾는 젊은이들의 초상을 보는 것같은 인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오십을 바라보며 헤세의 싯다르타를 집어들게 되었다. 그 청춘에 대한 회귀의 바람때문일까? 싯다르타를 읽으면서 다시금 청춘을 생각하고, 길을 찾는 젊은이가 되어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의 작품에선 어딘가 젊음의 신선하면서도 앳된 느낌이 풍긴다. 그리고 아울러 편안한 느낌을 전해 준다. 그 옛날 10대의 느낌이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하지만 오십대의 눈으로 바라본 '싯다르타'는 헛점이 많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글에서는 구도자의 향기가 풍긴다. 젊은이가 구도의 길을 떠나고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해탈의 경지에 까지 이르러 참으로 평화로운 미소와 얼굴로 그의 친구를 바라보는 여정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싯다르타가 발견한 도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 일체이며 심지어 시간과 공간마저 초월하는 일체를 깨닫는다. 그 깨달음 속에, 자신도 그 일체의 하나이며, 그러므로 어느것도 미워할 필요가 없으며, 사랑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양의 리개념, 그리고 조로아스트교의 선과 악을 아울러 가진 신에 대한 신앙이 절묘하게 숨어있으며, 사랑을 갈파한 그리스도교의 사상도 함께 어울려져 있다고 평론가들이 평하기도 한다.
싯다르타...
루소의 작품 에밀에서는 한 수도자의 신앙고백이 나온다. 그 가운데, 회의와 의심속에서는 만족과 행복이 있을 수 없다는 한 수도자의 말이 생각난다. 이 말에 비추어 보면 싯다르타가 아주 평온한 미소와 얼굴을 보여주며, 열반에 도달한 고타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깨달음이 진실이라기 보다는 그 깨달음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싯다르타가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는데, 그 사랑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감정이나 느낌으로 느껴지는 사랑, 싫어하지 않고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의미에서의 사랑...
헤세의 사랑은 적극적 성질의 것이라기 보다는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성질의 것인 듯 하다. 헤세가 살던 당시의 혼란스런 사회상황등은 극복하거나 타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체념의 성질을 지닌, 아니 체념이라기 보다는 더 적극적이긴 하지만, 있는 그대로, 자연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평화와 평안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는 사상을 전해주는 듯하다.
어차피 모든 부조리와 악도 선한 것과 더불어 일체이며, 본질을 이루는 것이며, 하나라면 그 무슨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흘러가는 강물에게서 배우는 것처럼, 수시로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그 일체의 상황속에서 배운 것은 수용! 일체감! 동화!
그의 사상은 신비롭기는 하나, 그리고 평화롭기는 하나,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닌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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