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법칙에 위배되는 사건을 일컬어 기적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어디 그것만을 기적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를 경탄하게 하는 기적과 같은 일은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다. 어디에나 기적은 지천으로 깔려 있다. 기적은 베일에 감싸 있을 뿐, 아니 우리의 눈이 베일에 가려져 있을 뿐, 숨겨져 있지 않다. 눈에서 베일이 하나 하나 걷혀지면서 온 사방의 기적들이 하나씩 눈에 띈다. 해마다 돌아오는 봄도 그렇다.

 

해마다 겪는 봄이지만, 여태까지 봄이 시시각각 성장하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도대체 나에게 봄이란 어떤 의미일까? 눈으로 봄은 마음으로 봄에 결코 앞서지 않는다는 명제는 성립할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눈에는 기적은 결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야 더 정확할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생각에만 골몰해 마음을 나누어 줄 수 없는 사람의 눈에 비치는 풍경은 찰칵하는 한 순간 찍어내는 사진과 같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물의 풍경은 화가가 마음을 담아서 그려내는 그림과 같다. 사진을 찍는 행위에는 기억을 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는 기억이 매개체로서 역할을 해야한다. 화가는 대상의 이미지를 머리속으로 에 전사시킨다. 그리고 다시 머리속에서 화폭으로 그 이미지를 전사시킴으로 그림을 완성시킨다. 나무의 사진을 찍을 때는 잔가지 하나 하나를 다 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림으로 그릴 때는 잔가지 하나 하나를 일일이 화폭으로 옮겨야만 한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봄의 경이로운 모습을 본다는 것은 사진을 찍는 것 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닮았다고 할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 작년의 봄은 그 어느 봄과도 다른 봄이었다. 작년 봄 나는 봄을 노래하는 시를 통해서 시인들의 눈을 통해 봄을 보았다. 봄은 새로운 모습으로 나게게 다가왔다. 하지만 올해의 봄은 나 스스로 느끼는 봄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 예감이 틀리지 않기를...

 

입춘이 지난 후의 바람이란 매서운 칼바람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이 바람은 더는 살기등등한 서슬 푸른 검기에 목을 움추리게 하는 겨울 바람이 아니다. 칼의 고수가 칼을 든 손에 사정을 두어 목숨을 거두지 않고 다만 칼등으로 치는 듯한 인정이 느껴지는 바람? 입춘 지난 바람이란 그런 바람이라고 생각해 본다.

 

입춘 지나 봄비가 내리던 날. 부드러운 비는 겨울내내 말랐던 왕벚나무 가지위에 떨어지면서 물방울을 튕겨낸다. 가볍게 나무 가지와 새순을 두드린 봄비는 마른 가지속으로 젖어들어, 죽은 듯 잠들어 있던 속살은 생기를 회복한다. 겨울 내내 나무 가지에 쌓여던 겨울 먼지는 씻겨지고, 투명한 대기 속에 짙은 갈색빛이 망막을 찌른다. 여기 저기 잔 가지들은 마른 가지와는 다른 색감으로 새로이 뻗어 나오고, 그 가지 마다 꽃으로 피어날 새순들이 붉은 색조를 띠며 올록볼록 밀려나온다. 멀리서 보니 왕벚나무 가로수 숲의 메마른 가지들 위에 옅은 분홍빛 기운이 피어 올라 머물러 있다.  

 

보일 듯 말 듯한 신비한 분홍빛 향기... 왕벚나무는 분홍안개를 이고 있다. 분홍빛이 점점 짙어지고 분홍 꽃잎이 눈처럼 흩날라는 풍경을 기억속에서 꺼집어 내어본다.

은행나무 가로수 길로 들어서자 어느 듯 분홍빛 안개는 사라지고 연두빛 안개가 안구를 적신다. 앙상한 나무로 황량해 보이던 저 먼 산 중턱 숲에는 어린 연두빛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있다. 동양화의 안개 낀 산수 풍경의 아련한 모습으로 봄은 서서히 다가 오고 있다. 

 

왕벚나무 숲에는 분홍빛 정기가 떠돈다. 모든 게 착시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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