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지음 / 창비출판사

 

책을 읽고 난 후 감동이 살아 있을 때 글을 쓰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곰 씹고 되새기면서 충분히 발효를 시킨 후에 글을 쓰는 것이 좋을까? 여과되지 않은 느낌들은 좀처럼 다시 떠올리기가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엉클어진 부유물들은 바닥으로 침잠해 버리고, 다시는 그러한 상태를 되돌릴 수 없을 거다. 그렇다면 책을 읽은 후의 생생한 느낌과 생각들을 내지르듯 써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생각날 때 내지르고, 또 내지르듯 써 버리자. 후일 그 느낌을 확인하고 생각들을 정리할 기회가 있을테니까... 

 

어떤 책은 읽는 도중 감정이 북받쳐 오르게 하는 반면에, 읽을 때는 큰 울림이 없었지만 이후에 점점 더해가는 무게를 느끼는 책이 있기도 하다. <엄마를 부탁해>는 나에게는 전자에 가깝다. 엄마의 아픔을 뒤 늦게 깨달은 자식들과 남편, 깨닫고 이해한 순간 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잃어버린 것이다. 엄마는 언제나 당연히 엄마였었고, 엄마의 정성이 지극히 정상적이라 여겼던 생각이 일시에 부서져 버리면서, 엄마를 껴안고 '엄마 왜 그렇게 살았어?' 하고 말하고 싶었던 그 순간, 엄마는 ...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가 지금까지 읽은 한국 여류작가의 작품이란 박경리의 <토지>, 정유정의 <7년의 밤> <네 심장을 쏴라> <28> 등이 다 인듯하다.  박경리는 그 장대한 스케일에서, 정유정는 그 사건전개의 치밀함등에서 큰 인상을 받았다면, 신경숙씨는 또 감탄할 만한 면모를 보여준다. 

 

글쟁이는 따로 있는 걸까? 신경숙씨는 천상 글쟁이인 것 같아 하는 말이다. 그녀는 시골 생활을 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들을 그린다. 그러나 그녀가 그리자마자 놀랍게도 나의 풍경이 아니었던 그 풍경들이 나의 풍경이 되어 버렸다. 그녀의 머리 속에는 모든 영상이 담겨져 있고, 필름이 돌아가자 그녀가 할 일은 단지 그것을 글로 변환하는 작업인 듯 했다. 작업이 아니다. 그녀는 글로 추억과 기쁨, 회한을 그리는 화가인 듯 했다. 

 

 딸은 "엄마는 부엌이 좋았어?"라고 물어본다. 하루종일 부엌에서 일하는 엄마는 당연히 부엌을 좋아하는거라고 생각했었다. 과연 엄마를 알기나 했던 것일까?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많이 안다고 할 수록 정작 그 사람을 잘 알 수 없는 불가해한 상황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익숙함에 묻혀버리는 진실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의 앎은 무지 속에 잠겨버리는 것을...

 

나는 어머니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가? 하고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숨겨진 그 수많은 모습들은 얼마나 애달프게 나의 마음을 휘저어 놓을까? 지금 알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머니의 모든 모습이 아닐찐대, 숨겨진 사랑이 얼마나 더할 것인가 생각하면 눈가에 뜨뜻해진다. 다행이 어머니가 아직 곁에 있으니, 잘 해야지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작 어떻게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인지 내내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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