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자/ 최인호/열림원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는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우리 시대와는 2천5백년이란 시간의 장벽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공자의 언행이 전후 맥락이 없이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논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간 공자를 알아야 하며,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배경을 파악해야 한다. <소설 공자>는 공자의 생애를 다루면서 당시의 흥미로운 시대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공자 자신은 물론이요, 공자의 제자들과 당시의 현자들, 더 나아가, 요순시대를 거쳐 하,은.주 시대를 거쳐 춘추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유명한 현인들의 이야기들이 <소설 공자>에 담겨 있다. <소설 공자>를 읽다 보니 논어를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했던 구절들이 생각나면서, 그 상황이 눈으로 그려지 듯 이해가 된다. <소설 공자>는 <논어>를 읽기 전에, 또는 <논어>를 읽은 후에 꼭 읽어 보도록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작가 최인호는 세계 3대성인인 예수, 석가, 공자를 자주 비교한다. 예수, 석가는 신적인 존재로서 한 종교를 창시한 성인으로 보는 한편, 공자는 인간적 고뇌와 약점을 가지고 있었던 철인으로 평가한다. 그의 사상을 담은 유교도 하나의 종교라기 보다는 학문의 한 범주로 생각하고 있다. 공자는 당시의 위정자들로 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하였고, 노장사상을 가진 은둔 자들로부터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의 사상을 담은 책과 그를 따르는 유생들은 한나라 진시황시대에 분서갱유의 참화를 당하기도 했다. 공자의 사상은 탁상공론으로 치부되다가 상황이 역전되어 오래동안 동양 문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하지만 공자의 사상을 받아들인 동양권 국가들은 공자가 바라던 이상적인 사회로 인도하지 못했다. 유학을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조선만 보아도 그렇다. 조선이 유교를 바탕으로 한 유교국가임에도 권력을 쥐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정쟁이 에 휘말렸는 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근대에 들어서서 물질 문명을 앞세운 서구 문명의 발 아래 짓밟히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공자의 사상은 훌륭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이라는 그릇이 작아서 그것을 제대로 담을 수 없었던 것 때문일까? 공자의 예와 인 사상은 오로지 천성적으로 타고난 인격자를 위한 것인가? 범인은 공자가 지닌 그러한 경지까지는 올라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공자는 마음 속의 "예"의 정신을 올바로 나타내는 방법을 정립하고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밖으로 드러나는 예의 형식을 정립하려 하므로 형식주의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듯 하다. 예의 형식에 너무 치중함으로 정작 마음의 예보다는 형식을 중요시 하는 폐단이 생길 수 있음을 미처 내다보지 못한 것일까?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예의 정신은 어떻게든 밖으로 드러나겠지만, 형식적인 예를 지킨다고 마음 속의 예가 새로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의 정신이 나타내는 행동 하나 하나가 오히려 더 가치있는 예례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 정신에 입각하여 올바른 "예"를 나타내고자 했던 공자의 자세에는 고개가 수그려진다. 그리고 공자가 내세웠던 "예의 형식"은 그대로 받아 들일 수는 없지만, 공자의 "예"의 정신만은 마음 한 켠에 소중히 간직해 두고 싶다.

 

<소설 공자>의 줄거리를 요약해 본다.  

 

제1장 <첫 번째 출국 - 공자와 안자>

기원전 517년 나이 35세에 공자는 계씨를 포함한 삼환씨가 정국을 농락하는 노나라의 정국에 염증을 느끼고, 존경하는 '안영'이 재상으로 있는 제나라로 가서 정치적 이상을 펼쳐 보려 한다. '안영'은 <안자춘자>의 주인공으로 당시 제나라 경공을 섬기고 있는 전국 시대 대표 명재상중의 한 명이었다. 놀랍게도 공자는 안영의 반대로 중용되지 못한다.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던 안영이 보기에 공자는 지나치게 제사와 상례를 중요시하는 형식주의자로 보였던 것이다. 결국 공자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38세에 노나라로 돌아오게 된다.

 

제2장 <두 번째 출국-노자와 공자>

공자는 46세 되던 해에 고국 노나라를 떠나 주나라로 향한다. 노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청하기 위해서이다. 드디어 기원전 506년에 공자와 노자의 극적인 만남이 성사된다. 공자와 더불어 중국이 낳은 최고의 사상가, 오늘날 중국의 정신을 지배하는 도교를 창시한 신비의 인물인 노자는 서양 사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톨스토이도 노자의 도덕경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하고 있으며, 헤겔의 관념철학도 노자의 무사상에서 사유방법이나 사상체계를 받아들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노자의 사상은 야스퍼스, 키에르케고르, 니체로 이어지는 실존철학의 형성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고도 한다. 인류 사상 최고의 롱셀러는 '성경'이지만 두 번째의 베스트 셀러는 <도덕경>이라고 한다. 이러한 노자와 공자의 만남은 어떠했을까?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공자가 존경하였던 인물로는 주의 노자, 위의 거백옥, 제의 안평중, 초의 노래자등이다."라고 한다. 공자가 가장 존경했던 노자. 공자는 노자를 만나 "예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십시오." 라고 가르침을 청한다. 노자는 "예에 대해서라면 더구나 나는 할 말이 없네."라고 대답한다. 공자가 계속 가르침을 청하자 노자는 "그대가 우러러 보는 옛 성인들은 이미 살도 썩어지고 뼈마저 삭아 없어졌겠지. 군자라는 작자도 때를 잘 만나면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그 위에서 건들거리는 몸이 되지만 때를 잘못 만나면 어지러운 바람에 흩날리는 산쑥 대강이 같은 떠돌이 신세가 되지 않겠는가. 내가 아는 바로는 예를 아는 군자는 때를 잘 만나고 못 만나고의 문제가 아니란 말일세.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감추고 있어 얼핏 보면 점포가 빈 것처럼 보이듯 군자란 많은 덕을 지니고 있으나 외모는 마치 바보처럼 보이는 것일세. 그러니 그대도 제발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도 잘난 체하는 말과 헛된 집념을 버리라는 말일세." 공자가 때를 잘못 만나 천하를 떠돌이처럼 돌아 다닐 것을 미리 예견한 듯한 말이었다. 공자는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예에 대해 묻는다. "그것이 예입니까?" "그런 건 나도 몰라. 다만 예를 묻는 그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이것뿐일세. 자, 이제 그만 가보게나." 이렇게 공자와 노자의 만남은 끝이 난다.

 

후에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도 예의 진수를 몰라 노자에게 가서 물었는데, 다만 이렇다. 내가 만나 뵌 노자는 마치 용과 같은 분이셨다."  용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리면 그 용의 행적을 알 길이 없는 것과 같이 노자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어쨌든 현실참여적인 공자의 도와 은둔지향적인 노자의 도는 서로 맞지 않아서 그 둘은 서로 화합이 불가능했을까? 공자의 도는 인간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행해야 할 바를 논하는 것이었던 반면에, 노자의 도는 우주 만물의 생성과 작용의 원리를 논하는 것이었으니, 인간세상도 우주 만물의 한 부분이라고 보면 둘 사이의 접점이 있을 법도 하건만, 당시로서는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물과 기름과의 사이였다. 아마도 공자의 도는 노자의 도에 비추어 볼 때 올바른 것이 아니었나 보다. 노자의 뒤를 이은 장자도 공자의 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두사람은 헤어지고 나서 서로 완전히 다른 행보를 가게 된다. 공자는 더욱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여 열국을 주유하게 되고, 노자는 소를 타고 함곡관을 지나 홀연히 사라지게 된다. 함곡관을 지날 때 윤희라는 관리의 간곡한 요청 끝에 그의 사상을 담은 5천여자의 <도덕경>을 남기고 흔적도 없이 홀연히 사라진다.

 

제 3장 황금시대

공자 나이 51세에 드디어 벼슬을 받아 정치에 뛰어든다. 노나라 제 2의 도시인 중도를 다스리는 직책을 받은 것이다. 공자는 1년만에 중도를 확 바꾸어 놓는다. 중도는 다른 고을이 본 받을 정도로 질서가 잡혔고 예의와 기틀이 잡힌 곳이 된다. 공자는 제나라와의 외교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드디어 중앙의 행정장관으로 임명되어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간다. 공자는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대부들인 계환자를 비롯한 삼환씨의 횡포를 제거하려는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을 때, 안영의 뒤를 이은 제나라 재상 여서는 노나라의 발전에 크게 위협을 느끼고 노나라를 흔들 계책을 마련한다. 여서는 80명의 미인과 좋은 말 120필을 노나라 정공에게 선물로 보낸다. 여서의 계책이 성공하여 정공은 미색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게된다. 이에 공자는 정공이 군주로서의 최소한의 예를 가지고 있는지 시험한 후에 일말의 가능성도 보지 못하자 노나라를 떠난다. 공자는 5년동안 정치가로서의 황금시대를 마감하고, 열국을 순회하는 고난의 시대로 접어든다. 노나라 재상직을 버릴 때가 55세, 그리고 56세에 자신의 이상을 정치적으로 실현할 나라와 임금을 찾아 여행길에 오른다. 13년동안 가시밭길과 같은 열국을 돌아다니다 기원전 484년 나이 68세에 다시 노나라로 돌아오게 된다.

 

제4장 세 번쩨 출국- 상가지구

공자는 56세의 나이에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를 찾아 간다. 사기에 의하면 공자는 70여 나라를 유세하였다고 하나 공자의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서너개의 나라를 반복해서 순회하였으며, 공자 자신은 더 많은 전국 시대의 임금들을 만나고자 했지만 다른 나라의 임금들은 회견할 길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공자는 자신의 정치젹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임금은 만나지 못하고 오히려 '상갓집의 개'처럼 초라하게 제국을 진전하면서 여러번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고, 경제적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위나라에서 처음에는 위영공의 환대를 받고 융성한 대접을 받았지만, 공자에 대해 참언하는 신하들의 말에 현혹된 영공은 공자를 위리안치, 즉 가택연금을 시킨다. 10개월을 위나라에 보낸 공자는 위나라를 빠져 나와 진나라로 향한다. 가는 도중 광 땅에서 첩자로 오인 받은 공자 일행은 주민들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당하다 다시 위나라로 돌아온다. 영공의 치욕적인 대접에 환멸을 느끼고 공자 일행은 다시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향한다. 도중 송나라에서 공자를 죽이려는 시도가 있어, 공자 일행은 뿔뿔히 흩어진다. 정나라에 도착한 공자의 제자 자공은 행인으로부터 공자가 '상갓집 개'같은 몰골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정나라를 지나 진나라에 도착한 공자는 3년을 머물렀으나 진나라 민공을 만나지도 못한다. 진나라에서 공자는 철저히 소외당했으며 허송세월만 보낼 수 밖에 없었다.

 

59세때 다시 위나라로 돌아가는 도중 위나라에 반기를 든 공숙씨 일당을 만나 위협을 받지만 무사히 위나라에 도착한다. 공자는 영공에게 공숙씨 일당을 공격하도록 조언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다시 위나라를 떠나게 된다. 이렇게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달성하도록 도와 줄 임금을 만나지 못한 공자는 점점 초조함을 느끼게 된다. 진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킨 필힐의 초청에 응하려 했었는가 하면, 진에서 정적을 제거하고 실권자가 된 간웅 조간자에게 몸을 의탁할 생각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도에서 조간자의 사람됨을 알게 된 공자는 길을 돌이켜 위나라 대부 거백옥에게로 향한다. 

 

여전히 위나라의 영공은 공자를 무시하며 이제는 공자의 말에 귀도 기울이지 않는다. 공자는 60세에 다시 진나라로 가서 2년을 머물렀으나 아무 소득이 없다. 그동안 노나라에서는 실권자 계환자가 병으로 죽으면서 아들 계강자에게 공자를 불러들이도록 유언을 남긴다. 계강자는 공자를 초빙하려 하나 공지어가 나서 반대하면서 차라리 공자의 제자인 염구를 불러들이도록 조언한다. 염구는 자유, 염유라고도 불리는데 공자의 제자중 자로와 자공과 더불어 정치적 재능이 뛰어난 인물이다. 자로가 군사, 자공은 외교에 뛰어났던 데 비하여 염유는 행정과 군사 두 방면 모두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인물이다. 염구는 노나라에서 기대 이상으로 정치적 성공을 거두어 계강자의 가재가 되었다. 염구의 뛰어난 정치적 성공은 후에 공자가 다시 노나라로 돌아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제5장 네 번째 출국 - 양금택목

공자 62세때는 공자의 주유 열국의 전반기가 끝나고 후반기가 시작되는 분기점이다. 후반기 7년은 전반기 7년보다 혹독하여 공자는 채, 섭과 같은 소국, 독립된 나라라고는 볼 수 없는 강대국의 속국을 찾아 다닌다. 지금까지 묵묵히 스승을 따라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수행하던 제자들도 스승의 권위와 가르침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진나라에서 2년의 세월을 보낸 후 공자는 채나라 소후의 초청을 받고 그리로 향하던 중 소후가 암살되는 바람에 방향을 돌려 섭이라는 나라로 피신하게 된다. 섭공과 면담한 공자는 서로의 가치관의 차이를 확인하면서 섭나라를 떠나 채나라로 돌아 오게 된다. 그 도중  노자의 고향이었던 초의 속국 채나라에서 노자의 사상을 따르는 숨어 사는 현자들로 부터 비웃음을 당하게 된다. 이 무렵 공자는 위로는 정치가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안으로는 제자들로부터 의심을 받고 밖으로는 전혀 사상이 다른 이교도들로부터 비웃음을 받고 있어 사방이 모두 적으로 둘러 싸인 형국이었다.

 

채나라에서 3년을 보내던 중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최고의 임금으로부터 초빙을 받게 된다. 초나라의 소왕이 공자를 초청했던 것이다. 공자는 소왕을 어진 임금이라 칭찬하며 인격과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당시 소왕은 군사를 이끌고 진나라 땅에 머물고 있었다. 공자는 크게 기뻐하며 진나라로 들어 가려 하지만 진나라와 채나라의 제후들과 대부들은 자신들의 약점과 비행을 낱낱이 알고 있는 공자가 소왕에게 등용이 된다면 자신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공자 일행을 억류한다. 이를 알게된 소왕은 군사를 풀어 공자 일행을 구해 주고 땅 7백리를 봉토로 떼어주는 조건으로 공자를 초빙하려고 한다. 이에 초의 재상 자서가 반대하고 나선다. 공자가 이 땅을 근거로 자신의 세력을 키워 나간다면 초나라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근거로 반대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소왕은 오랜 망설임 끝에 공자를 초빙하려는 계획을 취소한다. 공자의 마지막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63세에 다시 초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들어간다. 위 영공이 죽은 후 왕이 된 출공은 외국으로 망명해 있다 돌아오는 아버지 괴외의 귀국을 무력으로 막았던 일이 있었다. 행여 왕위를 빼앗길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출공은 뭇 제후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었다. 이에 출공은 공자를 등용하여 이를 모면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공자는 불의를 쫓지 않고 명분이 없는 출사의 길을 원하지 않았다. 이제 참다 지친 제자들은 스스로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난다. 외교에 뛰어난 자공은 노나라의 초빙으로 사신으로 등용되며, 자로는 위나라의 작은 마을의 읍재가 된다. 

 

위나라에서 대부 공문자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면서 '새가 나무를 선택해야지 어찌 나무가 새를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을 통해 신하가 마땅히 훌륭한 군주를 가려서 섬길 줄 알아야 한다는 심정을 내 비친다. 특별히 관심을 가져 네 번이나 찾아간 위나라도 이제 공자의 마음에서 떠나 있었다. 이 때 노나라의 계강자가 폐백을 갖추어 공자를 초빙한다. 이제 공자는 노나라로 귀국하고, 이로서 공자의 주유열국은 끝이 난다.

 

제6장 공자천주

기원전 484년 공자는 나이 68세에 13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13년의 혹독한 여정의 결과로 공자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현실적 정치에는 결코 접목시킬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게 되었다. 공자는 비로소 깨달았다. 정치적 이상을 통해 국가를 바로 잡으려는 외부적 노력보다는 학문적 사상을 개발해 내적 자아를 완성하려는 노력이 훨씬 더 값어치가 있다는 사실을 ... 고향으로 돌아온 공자는 73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6년간 더 이상 노나라의 정치에 뛰어들지 아니하고 오로지 학문에 정진한다.

 

노나라로 돌아 올 때 공자는 아홉 구비나 구부러진 구멍이 있는 진귀한 구슬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진나라를 지날 때에 누에를 치기 위해 뽕을 따는 아낙네를 만나 구슬에 실을 꿰는 방법을 물었다가 깨달은 바가 있어 구슬에 실을 꿸 수 있게 된다. 아마도 13년의 천하주유가 아홉 개의 구멍에 실을 꿰어주는 군주를 만나기 위한 순회였다면 노나라에 있었던 공자의 말년기 6년은 아홉개의 구멍에 학문과 사상을 실로 꿰는 공자 인생의 절정기였다. 공자천주란 공자가 구슬을 꿰다란 뜻이다.

 

공자의 제자들

공자는 스스로 10명의 제자를 거론하며 "덕행에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국이 있고, 언어에는 재아와 자공이 있고, 정사에는 염유와 계로가 있고, 문학에는 자유와 자하가 있다." 라고 했다. 이를 '공문십철'이라 부르고 '덕행, '언어', '정사', '문학'을 공문사과라 부른다. 공문십철 중 염백우는 나환자가 되어 학문의 길에서 탈락되었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제자들은 학문을 버리고 정치로 나아갔다. 끝까지 스승을 좇아 공문에 남아 있던 제자들은 안연, 민자건, 자하등 서너 사람에 불과하였다.

 

이중 복상이라고 불리는 자하는 공자의 제자중 가장 막내였지만 유가의 경전을 후대에 전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논어>의 편찬도 자하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증삼은 자는 자여인데, 그는 공자의 제자중 공문십철에는 들지 않지만 유교 사상의 전래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자하와 증삼은 공자의 사상을 전파한 쌍두마차로 불리고 있다. 증삼은 큰 존경을 받아 증자라고도 불린다. 증자는 공자의 손자였던 공급(자사)에게 공자의 사상을 전수하고, 자사는 그것을 맹자에게 전수함으로써 유가의 도통은 공자에게서 증자를 통해 맹자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공자는 인류의 교과서가 될 경서의 편저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의 교과서는 육경이라고 불리는 시, 서, 역, 예, 악, 춘추의 6가지가 중심을 이룬다. 시경, 서경, 예기, 악기, 역경, 춘추의 6경에 논어와 효경을 덧붙여 9가지의 경전은 아홉 구비의 구명에 새로운 실을 꿰어 넣으려는 공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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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 이윤기 / 열린 책들

 

서점에 꽂혀 있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고 설레는 마음, <월든>을 보았을 때도 이 같은 약간의 흥분을 느꼈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읽는 데 여러날이 걸렸다. 아껴서 읽는 탓은 아니다. 읽기가 힘들었다고나 할까? 무의식중에 카잔차키스의 표현에서 은유를 찾아내려한다. 표현 하나 하나에서 주인공의 심정이나 작가의 은밀한 생각을 읽어내려는 의식이 책을 읽어 나가기 힘들게 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탓이려니 생각한다. 아무 생각없이 읽고 싶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두목과 조르바의 우정이야기, 서로 다르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두목은 물주이고, 조르바는 고용인이다. 두목은 30대, 조르바 60대? 아마 그럴 것이다. 두목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책으로 향한다. 동양의 종교에 심취해 있는 듯, 매일 불경을 읽으며 뭔가를 찾는다. 조르바는 삶에서 무엇을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삶속에서 삶을 즐긴다. 관습도, 도덕도, 종교도 그를 막아 설 수가 없으리만큼 그는 자유롭게 살아간다. 그에게는 원시의 처녀림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냄새가 난다. 두목은 조르바가 마음에 든다. 조르바는 두목이 가지고 있지 않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을... 조르바는 책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진짜 생생한 삶을 살고 있는 삶의 화신인 것이다. 조르바의 삶, 조르바의 자유는 그저 모순 덩어리이다. 삶은 욕망이며, 자유는 욕망의 충족이며, 욕망의 상호 충족의 원칙만이 조르바를 구속할 뿐이다. 갈탄을 캐내려는 시도가 완전히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모든 것을 날려버렸을 때에도, 조르바는 춤을 춘다. 해변 모래사장에서, 두목도 함께 춤을 춘다.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없다. 실패도, 가난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자유란 그런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반 종교적인 색채가 진하게 풍긴다. 신을 부정하는 듯한 느낌들, 불신. 부패하고 타락해져 가는 종교를 향한 혐오감일까? 절대적 자유를 찾기위해종교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일까? 신에 대한 완전한 부정일까? 아니면 신에게 던지는 질문일까?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관습, 도덕, 종교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삶의 모습을 허물어뜨리고, 자유로운 삶을 보여주려한다. 그는 두려워한다. 자유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지, 그는 확신할 수 없다.

 

<그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의 암흑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면.... 보여 줄 수 있어요?"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낡은 세계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그 세계는 존재한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이 짜낸 빛의 천이다. 보랏빛 바람에 둘러 싸인 구름... 이땅의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도, 이제는 암호 이상의 예언을 들려 줄 수 없다. 암호가 모호할수록 선지자는 위대한 것이다.> 92쪽

 

자유란 달콤한 꿀처럼 유혹적인 마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유가 진정한 삶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두목은 유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목은자유를 갈망한다. 그래서 그는 자유의 삶을 사는 조르바를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선택할 자유와 능력이 있다면 자유로운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틀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비록 외면적으로는 자유롭지 않아 보이겠지만, 여전히 그는 자유인이다. 그러면 물고기가 물 속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스스로가 처한 틀을 의식하지 못하면서 자유롭다고 느깐다면, 자유로운 걸까? 그것은 선택에 의해 자유를 획득한 것이 아닐텐데. 그것은 주어진 자유일텐데...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하고 물에서 자유로운 것과, 물이라는 구속을 의식하면서도 그 가운데 자유로운 것중 어느 것이 더 큰 자유일까? 물고기가 물 밖 세상을 동경하여 물을 뛰쳐 나와 장렬히 죽음을 맞는다면, 그것은 그의 선택이므로 자유로웠던 것일까?

 

자유란 절대 선이 아니다. 자유란 상대적 선일지도 모른다. 자유란 상대적인 악일 수도 있다. 상대적이란 것은 필시 잣대가 요구되는데, 그러면 상대적 세계에서의 잣대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생각난다. 자유를 한계지으려는 시도, 어차피 자유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일 뿐....

 

이 길을 내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여행이란 무엇으로 정의할까? 여행이란 역사탐구란 느낌이 든다. 터키 여행은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역사를 돌아보는 길이었다고나 할까? 이제는 찾을 길 없는 사라진 인생들이 남긴 희미한 발자취를 통해 잠시나마 꿈같은 시간여행을 했었고, 카파도키아 지역의 황량한 들판과 계곡을 보면서 자연이 시간의 힘을 빌어 지표면에 남긴 흔적에 자그만 탄성을 내질렀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아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이지만, 여행을 통해 어느 정도는 그 한계의 테두리를 넘어 서게 될 수 있다. 책속에서만 존재했던 역사가 눈 앞에 그 자취를 보이고, 다람취 체바퀴같은 일상의 공간은 그 문을 열고 새로운 공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새로움에 익숙해질 즈음엔 다시 이제는 다소 낯선 것이 되어버린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여행이란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인가? 돌아갈 집이 있기에 여행이라 하는 것일테지, 돌아갈 집이 없는 여행이란 방황일 뿐일테니까. 여행은 현재 삶의 뿌리를 찾으러 떠난 길이 다시 현재로 이어진 길일 것이다.   

 

여행은 자유의 느낌을 진하게 풍긴다. 여행이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기때문이다. 하지만 자유란 또 다른 구속으로의 선택일 뿐이라 생각한다면, 여행은 상대적으로 더 작은 구속- 더 큰 자유를 향한 것일 것이다. 패키지여행은 자유여행에 비해 자유의 정도가 더 약하다. 어느 것이든 선택할 수  상황을 자유라고 정의한다면, 패키지 여행은 선택의 가능성이 작은 자유이다. 가장 큰 자유를 주는 여행이라면 누가 뭐라해도 도보 여행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제나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출 수 있기때문이다. 비록 한정된 시간에 더 멀리 가지 못한다는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의 선택의 폭은 넓을 수 밖에 없다. 도보여행과 자전거여행이 댕긴다.

 

자유를 이야기하다 보면 문득 "쇼생크 탈출"이 떠오른다. 자유를 향한 갈망을 그린 영화. 교도소 안에서 아름답게 울려퍼지는 아리아 '저녁바람 부드럽게'는 이상스럽게도 자유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한가로운 어촌에서 배를 손보고 있는 앤디의 모습... 그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자유의 느낌을 본다. 열려 있는 바다를 향한 작은 배, 앤디의 마음은, 그의 자유는 바다를 향해 있다. 자신이 만든 배로, 자기자신만의 힘으로 더 넓은 자유의 바다를 향하는 앤디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 쇼생크 탈출 마지막 장면 ->http://pann.nate.com/video/13820586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제임스 조이스/ 이창희 그림/ 박성문 글/ 채우리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06

 

제임스 조이스(1882-1941)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 <율리시스>는 현대소설의 지평을 연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율리시스>는 두번째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난해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왜 조이스의 대표작 <율리시스>는 이런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을까요?

 

조이스 이전의 소설들은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러나 조이스는 그와는 달리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어, 내면 세계의 묘사에 집중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완전히 새로운 소설을 시작한 것입니다.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의식의 흐름'은 한 개인의 총체적인 삶에서 흘러나오기마련입니다. 그를 이해하려면 주인공의 내면을 형성한 배경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조이스는 설명을 하려들지 않습니다. 단지 의식의 흐름을 서술할 뿐입니다. 더군다나 인간의 의식이란 때때로 불연속적이며, 불합리하고, 불가해하기때문에 이해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율리시스>가 난해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율리시스>는 1904년 6월16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을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씨와 스티븐 디덜러스를 중심축으로 소설이 전개되어 나갑니다. 그러므로 <율리시스>의 배경이 되는 '더블린', 그리고 주인공인 스티븐 디덜러스에 대해 더 많이 알게되면 <율리시스>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이스의 더블린 3부작인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중  <더블린 사람들>과 스티븐 디덜러스가 주인공인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먼저 읽는다면 <율리시스>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조이스 자신의 자서전적인 소설입니다.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의 이야기는 조이스 자신의 이야기인 셈이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스티븐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하여 대학을 졸업한 후 종교와 가족, 국가와 민족을 뒤로 하고 예술가의 삶을 찾아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때까지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꽤나 이해하기 어렵다던 이 작품을 만화로 만나게 되어 재미있게, 쉽게 접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만화로 된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는 중간 중간에 보조 자료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조이스의 문학, 그의 조국 아일랜드의 역사와 종교 등의 자료들은 조이스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성장과 함게 했던 종교와 가족, 민족과 국가등은 예술가를 위한 자유의 길을 막는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뛰어 넘어 자유의 길을 나아갑니다.

 

 

스티븐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이달로스처럼 자유를 향해 날아오르기로 결심합니다. 그의 이름 디덜러스는 그리스어로 다이달로스입니다. 다이달로스는 갇혀있는 탑에서 탈출하기 위해 밀랍과 깃털을 이용하여 날개를 만듭니다. 그리고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목숨을 걸고 자유를 향해 탈출합니다. 이카루스는 너무 높이 날아 올라 태양의 열로 날개밀랍이 녹는 바람에 떨어져 죽게됩니다. 자유를 향한 열망에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필경 함께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븐의 자유혼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가족도, 종교도, 국가와 민족도 스티븐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스티븐은 영국의 국교회에 예속되어 세속화된 종교에 분노합니다. 그리고 스티븐은 조국 아일랜드에도 심한 환멸감을 느낍니다. 자기네 언어를 버리고 다른 나라 언어를 택한 나라, 아일랜드의 애국자 파넬의 파멸을 기뻐하던 나라... 그는 '아일랜드는 제 새끼를 잡아먹는 늙은 암퇘지'라고 신랄하게 비난합니다. 이렇게 그는 종교와 조국에 등을 돌리고, 가족을 뒤에 두고 아일랜드를 떠납니다. .  

 

 

 

어디에도,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스스로의 결정을 통해 예술가의 길을 걷기 위해 자유의 길을 떠납니다. 이렇듯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자유를 향한 스티븐의 몸짓을 보여줍니다. 

 

 

뉴욕타임즈 선정 100권 중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인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오, 멋진 신세계여......"

(<템페스트> 5막 1장중에서)

 

지금까지 읽었던 뉴욕타임즈 100선 중에서 가장 일기 쉬웠다. 하지만 그 속에 인간, 자유, 행복, 신, 종교등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겨주는 책이기도하다.

 

 

특히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문명국으로 온 야만인 존이 문명국의 세계총통 무스타파 몬드와 인간과 행복, 자유와 종교, 예술등에 대해 나누는 대화는 자유냐, 행복이냐 하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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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9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

.

.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무스타파 몬드는 어깨를 추슬렀다.

"마음대로 하게"하고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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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의 시대적 배경은 포드 기원 632년이다. (헨리포드는 미국의 자동차 왕으로 1863년~1947에 살았다.) 기원 2495년인 셈이다.

 

전체주의 정부는 과학기술을 사용하여 안정된 사회를 구축해 놓았다. 총통은 "안정, 사회 안정이 없이는 문명은 있을 수 없다. 개인적인 안정이 없이는 사회의 안정도 없다...안정이야. 이것이야말로 원초적인 필요조건이며 궁극적인 필요조건이야. 안정! 여기에서 현재의 모든 것이 탄생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안정된 사회가 형성되었지만 그 댓가로 인간적인 감정과 격정의 상실, 획일화등으로 인해 원초적인 자유는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불만스러운 버나드 마르크스는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여행하던 중, 한때는 문명국에 살았던 린다와 그녀의 아들 존을 만나게 된다. 그들을 문명국으로 데려 오면서 존은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게 된다. 

 

존은 레이나에게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만인은 만인의 소유물"이란 구호아래 완전히 개방된 성문화에 환멸을 느낀다. 또한 린다의 죽음에, 아니 모든 죽음에 대해 무덤덤한 비인간적인 문명에 극심한 혐오감을 갖는다.

 

존은 세계총통 무스타파 몬드와 이야기하는 중, 이 문명 사회는 안정과 행복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과 개별성등을 포기한 사회라는 것을 알게된다. 인간이 꿈꾸어왔던 사회가 바로 이것이란 말인가? 존은 환멸과 혐오감속에 문명사회를 벗어나 새로운 자신만의 사회를 만들려고 하지만... 

 

<멋진 신세계>는 여러번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  http://n_dimension.blog.me/120108284571

 

 

영화 <매트릭스>에 보면, 인체에너지를 기계에게 빼앗기고 가상세계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가상세계에서 벗어나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대비되는 모습을 보게된다.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며 만족하며 살아가는 삶을 진정한 행복이라 할 수 있는가? 가상세계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삶을 구출할 필요가 있을까?

 

최근에 읽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도 생각난다. 밀은 자유가 사라지고 몰개성화된 사회, 획일적 사회는 발전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밀의 주장에 따르면 <멋진 신세계>의 문명 사회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결국은 붕괴할 운명인 셈이다. 

 

<멋진 신세계>는 그리 멋지지 않다. <멋진 신세계>에서 제시하는 완전한 사회는 우리가 바랄만한 그런 사회는 아니다. 단지 올더스 헉슬리는 이런 세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은게다.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열매에 너무 취하게 되면 그것은 독이 되기도 한다는 메세지?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면서 동시에 행복을 주는 사회를 기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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