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으로 시작한다. 모든 존재는 영원이라는 무한한 시간속에 무한히 반복하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역사는 무한의 시간속에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원자론에 의하면 존재는 입자들의 특정한 배열이며, 모든 변화는 입자들의 재배열이다. 우리의 우주에 있는 입자의 수는 10^118개로 유한하다. 그러므로 그 입자 배열의 경우의 수는 2^10^118개로 엄청나게 크지만 여전히 유한일 뿐이다. 그러므로 영원의 시간속에 언젠가는 동일한 배열이 다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즉 동일한 존재가 다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물리학을 배경으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과학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현대 물리학에서는 다중우주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니이체의 영원 회귀 사상과 닮아있다. 니이체의 그것이 시간의 흐름속에서의 무한 반복을 논하고 있다면 다중우주는 무한 공간속에 펼쳐진 무한 반복을 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절대적인가? 어떻게 보면 논리적 결론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논리에는 그 전제가 있다. 그리고 그 전제의 옳고 그름은 그 논리 전체의 옳고 그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영원회귀나 다중우주의 논리는 무엇을 전제로 하고 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원자론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즉 최소의 입자,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입자 즉 원자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이러한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현대 물리학은 원자가 최소 입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원자는 양자와 전자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양자는 그 보다 작은 소립자(쿼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수많은 소립자들이 발견되었다. 더 나아가 어떤 종류의 소립자들은 순식간에 생성되었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소립자들의 구조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러한 소립자들은 끈의 형태로 되어 있을 것이라는 끈이론이 있으며, 심지어는 물질이 아닌. 정보 또는 수학적 구조들이 물질의 본질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무한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한히 커지는 수는 무한대의 개념을 쉽게 연상시킨다. 또한 그와는 반대되는 무한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무한히 작아지는 개념, 제논의 역설 즉 아킬레스는 결코 거북이을 따라 잡지 못한다는 것은 무한소 개념을 이용한 것이다. 일정한 거리를 반으로 나누고, 그 반을 다시 반으로 나누고, 또 나누어진 반을 다시 반으로 나누는 과정은 수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무한히 반복할 수 있다. 그와 같이 물질을 쪼개고 쪼개는 과정이 어느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한소처럼 한없이 쪼갤 수 있는 것이라면, 사실 이러한 생각을 반박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즉 원자론이라는 가설이 잘못된, 오류가 있는 전제라면 그것에 근거하여 무한 회귀를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것일 수 없다. 입자를 무한히 쪼갤 수 있다면, 그 배열 역시 무한할 수 밖에 없으며, 동일한 존재가 무한 반복되어 나타날 것이라는 이론은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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