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테르와 빛의 속도에 대하여

빛의 속도가 매질의 밀도에 따라 달라진다면, 진공속에서의 빛의 속도보다 빨라 질 수 있는 매질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진공은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꽉 차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양전자의 개념을 발생시킨 것이라면, 그렇다면 양전자로 가득찬 공간을 빛이 이동할 때의 속도는 과연 어떠할 것인가? 음전자로 가득찬 진공과 양전자로 가득찬 공간은 어떻게 다를까?

 

여기에서 에테르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싶어진다. 에테르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빛이 매질없이 전진한다는 것은 다소 믿기가 힘들다. 물론 빛이 입자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하지만 다시 한번 에테르를 꺼내 들고 논의하는 것은 어떤가? 진공이 아무 것도 없는 텅빈 공간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으로 차 있다는 말인데,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음전자이든 양전자이든, 아니면 힉스장이나 그와 같은 것이든 간에 그 무엇을 에테르라고 가정하는 것은 어떤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종류의 에테르가 없는 공간을 지나는 빛의 속도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엔트로피와 우주 팽창에 관하여

시간의 흐름은 엔트로피의 증가를 가져 온다. 그 이유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기때문이다. 더 넓어지는 공간에서 입자들은 더 많은 배열을 가질 가능성이 증가하기때문이다. 이는 무질서의 도가 증가하는 것 즉 엔트로피의 증가를 가져온다.

 

하지만 우주가 수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입자들이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지고 이는 결국 배열의 경우의 수가 줄어드는 현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즉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다.

 

고도의 질서를 향해 가는 흐름은 엔트로피의 감소와 관련이 있으며, 이는 활동공간의 협소화와 관련이 될 듯하다. 국지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 부분의 협소화는 외부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도의 질서를 향해 가는 내부의 엔트로피의 감소는 그 외부의 엔트로피 증가와 완전한 등가를 이루는가?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볼 때 내부공간의 협소화로 인한 전체 엔트로피의 증가는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겠지. 다만 외부 공간의 밖으로의 팽창으로 인한 엔트로피의 증가만 있을 뿐.

 

정상상태의 우주라면 엔트로피는 항상 같은 값을 유지해야 하겠고, 팽창우주의 경우에는 엔트로피의 증가, 수축우주의 경우는 엔트로피의 감소가 시간의 흐름과 관련하여 있게 될 것이다. 단 진동우주의 경우에는 ...엔트로피의 증가와 반복도 진동하겠지.

 

우리가 사는 우주가 신의 섭리에 따른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진동하는 우주여야 할 것이다. 최초의 대폭발이후 아직 수축을 경험하진 못했지만 결국은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인플레이션 현상이 무엇에 비롯된 것인지 모르지만 그를 발생시킨 그와 유사한 종류의 힘에 의해 어느 순간 우주는 수축의 단계로 접어들지 않을까? 그리고 어는 정도 수축했을 때 다시 팽창하는 반복적인 움직임은 생성된 우주가 그 속에 생명체를 지니고 영원히 지속될 수 있게 할 것이다.

 

본질과 현상

자연은 우리에게 본질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단지 현상에 대해서만 반응한다. 그 속에서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없이는 다만 현상만을 관찰할 뿐이다. "자연을 노하게 하면, 자연은 자신의 본성을 보여준다"라는 말은 자연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자연상태가 아닌 실험적 상황에서의 연구가 필요함을 일깨워 준다. 하지만 인위적 상황에서의 관찰역시 우리의 인식감각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어느정도 깊이 들어가야만 현상이 아닌 본질에 도달하는 것일까? 우리의 감각기관으로는 결코 본질에 도달할 수 없으며 단지 이성에 의해서만 본질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감각은 현상을 인식하고, 이성은 본질을 인식한다? 우리의 이성이 감각적인 경험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면 이성도 결코 그 본질을 꿰뚫는 도구가 될 수 없는 것이련지...

 

물질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 중 가장 최근의 견해이며 가장 신비주의적인 견해는 물질의 본질은 비물질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은 물질과 구조로 형성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물질은 사라지고 남은 구조만이 물질의 본성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다. 구조를 이루는 수학, 법칙이 물질의 본성이라고 하니. 신피타고라스파라 할만도 하다. 더 나아가 물질의 본성은 정보라고 보는 물리학자도 있다고 한다. 현대물리학은 과학을 넘어 고대 그리스의 철학으로 다시 회귀하고 있는 것 같다.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라 간주될 만한 추론등을 물리적 현실로 본는 것이 그렇다. 경험주의 실험주의를 넘어서는 형이상학적인 논의로 현대 물리학은 점점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과학은 더 이상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논리적 믿음체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없다. 불가지론, 회의주의가 판을 칠 멍석이 깔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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