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임랑 삼거리에 도착했다. 버스가 떠나버린 빈 시골길에는 햇살이 가득하다. 저 건너 송림 위에도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낮엔 푸른 송림이 아름답고 밤엔 달빛 아래 은빛 파랑이 아름다운 임랑이다. 길가에 피어있는 노란 꽃 무더기 위에 흐드러진 햇살은 이미 자유다. 나는 자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10시 20분 드디어 임랑을 출발하여 갈맷길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임랑해수욕장을 나와 임랑교 옆에 있는 조그만 임랑마을 도시숲 공원을 통과하여 좌광천을 건넌 후 해안도로를 벗어나 바닷길 쪽으로 접어든다. 이제 내내 푸른 바다를 왼쪽 어깨에 두고 걸을 참이다. 차례로 문동리, 문중리, 칠암리, 신평리, 동백리, 이천리를 거쳐 일광까지는 계속 바다를 벗 삼아 걸을 것이다. 갈맷길 1코스에는 만나는 이 마을은 신평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포구를 끼고 있는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다.


길을 떠나 만난 첫 마을 문동리는 조용한 어촌 마을이다. 마을과 바다 사이 너른 공터에 펼쳐 놓은 그물, 바다로 길게 뻗은 방파제, 그 방파제 끝에 있는 빨간 등대, 방파제에 설치된 하역작업용 소형 크레인, 여기저기 정박해 있는 선박들은, 인적이 드문 이 어촌 마을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문동리에는 조선시대 공납미를 보관하던 '해창海倉'이 있었다. 지금은 기록으로만 남아 있고 그 흔적을 찾을 수는 없지만, 이 마을은 그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마치 마을의 담벼락 아래 시멘트를 뚫고 올라오는 질긴 잡초처럼 문동리는 질기게 그 생명력을 이어왔다.   


갈맷길은 마을과 바다 사이에 있는 널찍한 시멘트 공터를 가로질러간다. 길이라기보다는 공터처럼 보이는 애매모호한 그 길은 그늘 하나 없는 회색 시멘트 길이다. 길 위로 사정없이 땡볕은 내리고, 바닥에서 퉁겨져 나온 허연 빛 속을 걷는 걸음은 곤혹스럽기도 하다. 바로 옆에 푸른 바다가 있음에도 뜨거움이 시원함을 압도한다.  


포구 중간 부분에서 문중리와 문동리가 맞닿아 있다. 두 마을은 문동리 방파제와 문중리 방파제가 품은 잔잔한 바다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


 

문중리를 지나자 칠암(七岩)리이다. '일곱 개의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서 칠암인 줄 알았다.  사실은 마을 앞바다에 '옻바위'라는 검은 바위가 있어서 칠암(漆岩)이라 불렀는데, 옻나무 칠(漆) 자를 쉬운 일곱 칠(七) 자로 바꾸어 오늘날 칠암(七岩)이 되었다.  

 

칠암으로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모습은 칠암 앞바다에 떡 하니 가로 놓여있는 방파제였다. 육지에서 길게 뻗어나온 칠암 방파제에서 떨어져, 칠암 앞바다 한가운데 일자로 서 있는 방파제. 칠암은 깊숙한 포구는 아니지만 먼 바다의 파도를 막아 주는 이 일자형 방파제 때문에 그나마 아늑해 보인다. 


갈맷길 1코스에는 등대가 부지기수이다. 들리는 포구마다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처럼 서 있는 등대, 등대, 등대.그중 칠암에는 등대가 세 개나 있다. 칠암 부근의 문중 등대와 신평 등대까지 합하면 다섯 개의 등대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 칠암이다. 더구나 칠암의 등대는 예사 등대와는 다른 모양으로 시선을 끈다. 붕장어(아나고)가 서로 얽혀 위로 향하는 듯한 형상의 노란 붕장어 등대, 떠 오르는 붉은 태양과 갈매기를 형상화한 빨간 갈매기 등대, 야구 배트와 글러브 모양으로 2010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우승을 기념하는 하얀 야구등대. 칠암에는 등대 여행을 와도 좋을 그런 곳이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문동리와 문중리에 비해 칠암은 단연 활기가 돈다. 건어물을 파는 상인들의 파라솔이 어지럽고, 다른 쪽 횟집거리는 시끌벅적하다. 칠암에는 붕장어 회를 먹으러 온 손님들과 등대 구경을 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칠암은 사람 사는 냄새가 왁자지껄하다. 



문동에서 칠암까지의 길은 포구를 따라 걷는 길이다. 그리고 멀리 일자로 뻗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잔잔한 바다의 모습은 단조로워 보인다. 그러나 그 단조로움 속에서도 변화가 있다. 눈여겨보면 바닷물 빛이 미세하게 달라진다. 바다의 깊고 얕음에 따라 바다의 색은 짙고 옅어진다. 또한 바다는 하늘의 색깔을 반영한다. 하늘이 찌푸리면 바다도 찌푸리고 하늘이 맑으면 바다도 맑아진다. 



길가로 나 있는 방파제 위로 올라서면 거대한 바다는 끊임없이 일렁인다. 바다는 쉬지 않는다. 가볍게 찰랑거리는 물결은 얕은 물속 모래 바닥이나 자갈 위에 물결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물이 맑을수록 그림자의 무늬는 맑아진다. 바다는 언제나 그렇듯이 일렁이며 생동하고 있다. 



칠암을 지나 신평리이다. 계속 포구를 따라 걸어온 길은 신평리에서 다른 모습을 갖는다. 손대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해안이다. 아이들은 얕은 자갈밭에서 물놀이도 하고 바위틈에서 게도 잡으면서 놀고, 어른들은 낚싯대를 드리운다. 신평소 공원이 아름다운 해안을 내려다보고 있다. 해안도로 저쪽에는 바다와 신평소 공원을 내려다보는 곳에 카페가 두서넛 들어서 있다. 


울산 출신의 소설가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은 기장 일광면 학리를 배경으로 쓰인 소설이다. 거친 바다는 어부들을 삼키고, 갯마을에는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 모여 산다. 그네들은 남편을 앗아간 바다를 떠나지 않고 바다를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간다. 갯마을 과부들의 애환이 담긴 '갯마을'은 영화로도 연출되었다. 영화 '갯마을'의 주요 촬영 무대는 일광면 이천리이다. 하지만 '해순'이와 '상수'의 밀회 장면은 이 신평소의 아름다운 해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걷기 시작한 지 거의 2시간이 흘렀다. 이제 길은 신평리를 뒤로 하고 동백리로 들어선다. 육지로 오목하게 들어앉은 포구는 아담한 동백항이다. 바다에서 동백항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어김없이 등대가 서 있다. 항구로 들어오는 입구의 등대는 언제나 왼쪽에는 빨간색, 오른쪽에는 하얀색 등대가 뱃길을 안내한다. 밤이 되면 빨간 등대는 빨강 빛을 비추며 오른쪽은 위험하니 왼쪽으로 입항하라고 신호를 준다. 하얀 등대는 녹색 빛을 비추는데, 왼쪽에 암초가 있으니 안전한 오른쪽으로 입항하라는 뜻이다.  



동백리에 있는 부경대 수산과학 연구소. 예전에 일여 년간 기장에서 살 때 여러 번 이 연구소 앞을 지나다녔다. 아니 그때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부경대 수산과학 연구소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은 이 길을 걸으면서 처음 알았다. 수산과학 연구소 둘레를 도는 이차선 도로가 있다는 사실과 그 도로 아래 바닷가에는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또 다른 작은 시멘트 길이 있다는 사실도, 수산과학 연구소를 지나 온정마을이라는 곳에 바다를 바라보는 카페와 펜션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차를 버리고 걸어가는 길에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나타난다. 내 발바닥이 닿은 땅은 이제 나의 인식의 테두리 안으로 걸어 들어와서는 나의 세계의 일부가 된다. 내가 밟은 땅을 구석구석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는 이 느낌은 마음 한 구석을 뿌듯하게 한다. 천천히 걷는 길은 햇볕을 보지 않은 뽀얀 속살이 드러난 길이다.  



온정마을을 지나 이제 갈맷길은 1코스 1구간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간다. 자갈밭을 가로지르는 길. 차를 타고 이 해안이 내려다 보이는 해안도로를 지날 때마다 송림 사이로 보이는 이 해변은 마치 주문을 걸어 마법을 걸려는 마법사와 같았다. 더욱이 무더운 여름철 그 길을 지날 때는 당장이라도 수경을 끼고 물속으로 들어가 바닷속 비경을 보고픈 충동을 느끼곤 했지만 그때마다 난 간신히 그 마법에서 빠져나가곤 했었다. 


이 해변을 이제야 두 발로 걷는다. 한가로운 일요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 해변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 때문일까? 물이 생각만큼 맑지 않다.  




자갈밭 위를 걷는 발걸음이 피곤해진다. 푹신한 모래사장처럼 발을 붙잡는 곳이 있는가 하면 자갈 위에서 삐끗해지지 않으려는 발목에 힘을 주는 통에 피로해진다. 자갈길을 버리고 해안도로로 올라가 데크길을 걸으며 송림 사이로 바다와 해변을 보며 걷는다. 여전히 매력적인 해변이다.

   


이동항이다. 이천리 동쪽에 있어서 이동이라고 하는 이동마을은 기장 미역 특구이다. 부두 바닥에는 미역 말리는 손길이 분주하다. 문동리와 문중리의 텅 빈 부두보다 사람 사는 냄새도 바다 냄새도 더 하다. 손님들로 북적이는 칠암과도 다른 느낌의 이동항이다.



갈맷길 1코스 중에서 가장 특이한 길은 이동항을 지난 후에 나타난다. 한국유리공업 부산공장을 둘러가는 길이다. 이 길 특이하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인 듯 키높이의 수북한 잡초에 가려 보이지 않는 길, 다만 한국유리공업 부산공장의 담벼락에 달린 파랑 분홍 갈맷길 리본만이 이 곳이 갈맷길임을 알리는 표지이다. 이 리본이 없으면 길인지 아닌지 당황스러운 길이다. 도로에서 이 곳 해변을 오려면 한참이나 걸어와야 하기에 여기는 참 여유로운 해변이다. 북적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한가히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해변이 이곳이다.  



소설 "갯마을"은 원래 일광면 학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갯마을"은 그 무대가 학리와 인접한 "이천리'이다. 이천리 해변에서 보이는 일광 앞바다 너머 학리의 풍경은 영화를 만든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다. 다만 영화에서 보던 예스러운 돌담 초가 어촌 마을은 찾을 길 없고, 지금은 현대식 양옥집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에서는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그 모습이다.


<영화 '갯마을'> https://youtu.be/BwbQgeavk-Y


2시 30분에 가까워진다. 점심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아침에 임랑으로 가는 버스에서 본 열무 국숫집을 찾아간다. 길게 늘어선 줄의 의미를 놓칠 수는 없다. 마을 골목을 빠져나와 도로에 인접한 그 가게를 찾았다. 어라? 아직도 줄을 서 있다. 순간 기대감은 더 커진다. 나도 그 뒤에 줄을 선다. 주인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건다. "4시에 다시 영업 시작합니다."  이런 이런 이런... 안내문을 보니 2시 30분부터 4시까지 재료를 다시 준비하고 4시에 다시 시작한다고. 시계를 보니 2시 32분이다. 


일광천을 따라 강송정 공원 옆을 지나 일광 해수욕장으로 들어서서도 두리번거리며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아보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  일광해수욕장을 나와 기장 군청으로 향한 도로가로 나서니 열무 국수 식당이 눈에 띈다. 저기서라도 열 국수를 먹어야겠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좋다. 시원하게 열무 국수 한 그릇을 비우니 기분이 좋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시원하게 뻗은 기장 대로를 따라 땡볕 속을 걷는다. 삼사십 분을 걸었을까? 오후 4시에 목표점 기장 군청에 도착한다. 11시 20분에 임랑을 출발했으니 4시간 40분이 걸렸다. 갈맷길 1코스 1구간. 다리는 뻐근하고 몸은 다소 피로하다. 하지만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몸을 감싼다.



갈맷길 1코스 1구간은 바다와 어항과 등대가 함께 하는 길로 정의해 본다. 아름다운 길도 있었고, 평범한 길도 있었고, 당황스러운 길도 있었다. 해안도로, 포구길, 시멘트길, 자갈길, 나무 데크길, 오솔길을 걸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머릿속을 오가던 수많은 생각들은 사라지고, 다만 몸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절로 앞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간다. 길이 험하고 가는 길이 길면 길수록 무념무상의 경지가 가까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길 위에 떨어진 수많은 생각들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


다음 달 말에는 기장군청에서 죽성, 대변, 시랑대, 해동용궁사, 송정, 달맞이길을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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