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방탈출 카페에 가자?"
"가기 싫다. 안 간다."
"친구들이랑 방탈출 카페에 가기로 약속했는데, 아이들만 입장시켜주는 건 안 된대. 아빠가 같이 가야 돼."
"싫은데"
"같이 가 줘"
"좀 조르지 마라. 귀찮다."
"아빠아~"

옆에 있던 아내가 듣다 못해 한 마디 한다.

"방탈출 카페에 갔다가 갈맷길 데리고 가면 어때요?"

귀가 솔깃해진다. 아이들에게 길 걷는 기쁨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딸아이는 극구 함께 가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갈맷길 아빠와 함께 가면 생각해 볼게."

딸아이는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낸다.

"아빠, 애들이 다 갈맷길 따라 간대."

"좋아, 그러면 가자."


방탈출 카페는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KGB에 붙잡혀 수감된 스파이가 탈출한 흔적을 찾아 똑같은 방법대로 방을 탈출해야 했다. 1시간 안에 탈출하지 못하면 실패다. 우다섯 명 모두 탈출 비밀을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는 갈맷길을 갈 차례다. 아이들과 39번 버스를 타고 송정까지 갔다. 송정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하나씩 먹고 다시 181번을 타고 대변으로 갔다.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계획에는 한치의 변경도 없다.


대변 척화비 앞에 섰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아이들에게 척화비 안내문을 읽어 주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에서 프랑스와 미국을 물리친 흥선대원군은 쇄국 의지를 알리고 서양 오랑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다. 대변에 있는 척화비는 일제 시대 부두 공사 때 바다에 버려졌던 것을 해방 후 인양하여 지금 대변 초등학교 교정에 옮겨놓았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我戒萬年子孫(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아계만년자손)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고, 화친하자고 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이에 우리 자손만대에 경계 하노라."


아이들은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듯 시큰둥하다. 아이들에게 역사란 무엇일까? 반드시 알아야 할 자신의 뿌리이며 민족혼을 일깨우는 스승일까? 아니면 아이들은 아직은 역사를 알기에 이른 나이일까?


아이들은 척화비에서 죽도공원으로 가는 길에 거대 해파리를 보고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와~ 이렇게 큰 해파리는 처음 본다."

"이렇게 큰 해파리는 기장에서만 볼 수 있는 거야." 기장에서 나고 자란 한결이가 말한다.

아이들은 해파리의 독을 무서워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일회용 우산으로 해파리를 찔러보기도 하면서 신기해한다.


아이들은 움직이는 동물에 흥미가 많다. 하지만 식물과 풍경처럼 정적인 것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진다.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들에게는 정적인 것이 아직은 눈에 들어오지 않나 보다. 언제쯤이면 정적인 사물이 눈에 들어오는 걸까? 나는 어땠을까 돌아보니 꽤 나이가 든 후에야 그랬던 것 같다. 역시 아이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리라.



죽도 공원으로 들어갔다. 갈맷길을 면한 동해안에는 섬다운 섬이 없다. 대변항에 있는 죽도가 유일한 섬이다. 걸어서 지나갈 수 있는 다리가 놓여있어 죽도까지의 쉽게 들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섬은 사유지이다. 시온그룹이라는 종교단체의 소유로서 울타리와 철조망에 막혀 섬 중앙으로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이 섬을 개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소유자로부터의 반응이 없는 실정이다. 아쉽지만 우리는 갯바위를 밟고 아슬아슬하게 섬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 죽도에 발을 들여놓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게 전부인 듯하다.

하루빨리 섬이 개방되기를 기원해 본다.  


섬 내부로 나 있는 커다란 대문 쪽으로 돌아가는 길은 이게 길이 있는 게 맞는지 의아할 정도로 좁은, 그냥 발 디딜 곳을 조심스럽게 찾아 밟고 지나야 만 할 그런 길 아닌 길(?)이었다. 물이 들어오면 사라질 그런 길, 아슬아슬 밟고 지나갈 수 있는 길, 설마 이 좁은 공간을 지나 섬을 한 바퀴 돌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길, 이 쪽으로는 거의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지 않을 길, 오직 호기심 많은 아이들 같은 성격의 사람들만이 무작정 가 볼 마음을 가질만한 길, 하지만 수심이 깊지 않아 위험하지는 않았다.


섬 둘레를 1/4 정도 돌 때까지는 발 디딜 데를 찾아야 했지만 그 뒤로는 비교적 너른 갯바위 위를 밟고 지날 수 있었다. 그러다 섬의 저쪽 끝에서는 드디어 길이 끊어졌다. 물이 빠지면 운동화를 적시지 않고 지날 수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으로는 발목까지 오는 물속을 덤벙덤벙 건너든지, 아니면 아슬아슬하게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작은 돌들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야 할 형편이다. 자칫 징검다리 돌이 삐끗하면 발이 물에 빠질 것을 감수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좀처럼 건너오려 하질 않는다. 다시 돌아가겠다고 우긴다. 중학교 1학년인 한결이만 나를 따라온다. '여자 애들은 못 온다 쳐도, 진서 이놈! 너라도 따라와야지.' 속이 부글거린다.


먼 바다와 마주하고 있는 쪽으로 나오니 낚시꾼들이 무리가 보인다. 그리고 저 먼 바다 쪽으로 파도를 막아 주는 방파제와 그 끝에 어김없이 우뚝 서 있는 등대가 보인다. 이 방파제는 상당히 넓은 공간을 안고 있다. 변항은 생각보다 훨씬 큰 항이었다.


동해안의 등대는 대변에 와서 절정을 이룬다. 2002년 월드컵 4강을 기념하는 월드컵 등대와 일명 마징가 등대 및 태권브이 등대라 불리는 장승등대가 죽도 앞바다에 우뚝하다.  


그리고 죽도와 오랑대공원 사이에 있는 닭벼슬 등대와 젖병등대. 이 다섯 등대는 제각각  다른 형상이다. 아이들 장난같은 모양의 등대 다섯이 한 눈에 보인다.


다음 행선지를 멀리 바라본다. 저 멀리 점점이 바닷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갯바위, 오랑대가 보인다. 어떻게 할까 순간적으로 갈등한다. 날씨가 무더운데, 빗방울도 떨어지는데, 아이들과 걷는 길을 여기서 마감할까? 어렵게 아이들과 함께 온 이 길인데, 어쩌지? 아이들의 마음속에 오늘의 갈맷길 걷기가 오랫동안 남으면 좋겠다. '고생한 만큼 기억에 남는다'는 상투적인 상식에 기대어 조금 더 걷자고 마음먹는다.


"애들아, 힘들지."

"예"

"오늘은 저기 보이는 오랑대까지 갈 거다. 조금만 더 가자."

"와 저렇게 멀리요."

"멀어 보이지만 걷다 보면 금방이다."

"..." 


이제 오랑대 공원 입구까지는 시원하게 뻗은 일직선 도로이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걷는다. 아마도 이 더운 날에 갈맷길 따라와서 고생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다음에 갈맷길에 나서자고 하면 아이들이 또 따라나서려고 할까?


"다음에 또 따라 올래?"

"방탈출 카페에 가면 따라올 수 있겠어요."

"하하하"

"저도요."

"그냥은 안 따라올 거예요."


그래. 아이들은 방탈출 카페가 더 마음에 들었구나. 그리고 갈맷길 걷기가 죽도록 싫었던 것도 아니었구나.



오랑대란 이름의 유래는 불분명하지만,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시랑 벼슬을 하던 다섯 명이 기장에 유배된 친구를 찾았다고 이렇게 불린다고 한다. 다음 행선지인 해동 용궁사 부근의 시랑대도 그렇게 해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오랑대 바위 위에 걸터앉은 용왕단을 배경으로 태양이 떠 오르는 풍경은 사진작가들이 좋아하는 장면이다.


오랑대 용왕단 아래에 삼면이 바위로 둘러싸인 조그만 공간은 거의 삼십 년 전의 기억을 일. 한번 와본 듯한 장소, 하지만 기억과 다소 차이가 있는 곳, 여기가 그때 그곳이라면 분명 저 공간 가운데 큰 바위가 하나 있어야 하는데... 기억에 남아 있는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 한순간 되살아 나다니 놀랍기만 하다.


그때 동생이 하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행님은 손과 발이 완전 따로 움직이네."

개구리헤엄을 치던 나를 보고 하던 말이다.


한 여자애가 우리 보고 하던 말도 생각이 난다.

"아저씨, 제가 저 바위까지 헤엄쳐 가고 싶은데 혹시 제가 빠지면 구해줄 수 있나요?"

수영을 좀 하던 동생이 콧방귀를 뀐다.

결국 그 여학생은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기억의 메커니즘이 신기하기도 하다. 한순간의 인상이 잠자고 있던 기억을 일깨우다니. 그것도 큰 의미가 있는 기억도 아닌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에 보면 오래 전에 잃어 버렸던 시간을 일깨워낸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맛 이야기가 나온다. 그 기억은 잃어버렸던 것이 아니라 아주 깊은 구석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 깊은 곳을 건드리는 찰나의 자극은 그 숨은 기억을 되살려 낸다.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이 사실은 우리 두뇌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아니야. 그럴 순 없지. 허공에 흩어져 사라진 기억이 설마 하나도 없으려고.


갈맷길 1코스의 남은 길을 가면서 찾아볼 것이 하나 생겼다. 송정까지 해안길을 따라가면서 그 옛날 기억의 장소를 찾아보는 것. 혹 이 곳 오랑대가 기억 속의 그곳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그 바위는?



오늘의 갈맷길 걷기는 여기서 마무리한다. 아이들과 함께 걸었던 덕분에 정말 짧은 길을 걸었던 걸음이었다.

이따금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는 길이었지만 비 때문에 더위를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며 그 비를 맞고 걸었어도 좋았을 것을.


다음 갈맷길 기행은 오랑대공원에서 시작하여 해동 용궁사, 시랑대, 송정을 거쳐 해운대 달맞이 고개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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