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를 읽게 만든 책은 중국사이다.
그런데 왜 내가 중국사를 손에 쥐게 되었을까? 그 단초가 된 것이 <사기열전>이다. 동양의 고전중의 하나로 추천되어 왔던 <사기열전>을 읽으려다 문득 '전체를 알고 부분을 살펴보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중국사를 읽게되었는데, 특히 춘추전국시대에 관심이 모아지게 되었다. 그 당시 제자백가라 해서 수많은 사상가들이 나타났고, 그 중에 유명한, 공자, 맹자만이 아니라 그 외에 널리 알려진 강태공이나 관중과 포숙아, 그리고 안영, 오자서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과연 이 모든 사람들은 어떤 시대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지, 그들의 사상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당시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그 때 눈에 띄인 것이 초한지였다. 이 역사소설을 읽다보니, 이는 춘추전국시대 이후의 통일제국 진나라로 부터 항우와 유방의 천하를 다투는 초한시대의 이야기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초한지 이전의 시대인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열국지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초한지를 읽는 것을 잠시 멈추고 1~10권에 이르는 열국지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깨달은 것은 중국의 유명한 소설들의 배경이 되는 시대가 있는데, 역사의 흐름에 맞게 이러한 소설들을 읽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국지, 다음에 초한지를 읽는 것이 흐름에 맞는 읽기임을 느끼게 되었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국지는 한참 후대의 이야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초한지까지 읽고 난 후에 <사기열전> 또는 <사기본기>등을 읽으면 되겠다는 나름대로의 순서감이 잡히게 되었다.
열국지는 주왕실에 의해 책봉된 제후들과 그들을 보좌하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각 제후들이 통치하던 나라들간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올바른 통치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통치행위란 어떤 것인가? 열국지에서 보여지는 통치행위의 목적은 부국강병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기본은 제후들의 덕과 어질고 현명한 인물의 등용이란 점이다.군주의 기본 자질은 어진 정사를 베풀며, 인물을 알아보고 그들을 중용하는 것에 달려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제후보다 출중한 재상들에 의해 국가가 발전해 나가는 양상을 보인다. 주무왕은 강태공이라 걸출한 인물이 함께 했었다. 그리고 중국 춘추시대의 제후가운데 패업(業)을 이룬 다섯 사람을 오패라 부르는데, 그들은 제(齊)나라의 환공(桓公), 진(晉)나라의 문공(文公), 진(秦)나라의 목공(穆公), 송(宋)나라의 양공(襄公), 초(楚)나라의 장왕(莊王) 등을 이르는데, 목공과 양공 대신에 오(吳)나라의 부차(夫差)와 월(越)나라의 구천(句踐)을 이르기도 한다. 이 제후들은 한결같이 뛰어난 재상들과 함께 나라를 다스린다. 제나라의 환공과 관중, 진나라의 문공은 그 자신이 제후가 되기 전 공자 중이로 높은 덕을 칭송받았지만 그 역시 오랜 방랑생활에 따라다니던 호언(狐偃), 조쇠(赵衰), 가타(賈橓), 선진(先軫) 등의 현사(賢士)들을 중용하여 8년간의 짧은 치세에 공을 많이 세웠다. 진목공은 백리해와 건숙이라는 현신과 함께 했으며, 송양공과 목이, 초장왕은 오거(오자서의 부)와 소종, 오나라의 부차왕은 오자서, 월나라의 구천은 범려와 함께...혼자서 모든 것을 이룰 수 없으니, 인재를 알아보고 중용하는 안목이야 말로 통치자의 중요한 덕목이라 하겠다.
과연 충이란 무엇인가? 제 한 몸을 초개처럼 여기고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 그 당시의 시대적, 문화적 상황이나 인물상이 때론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의란 무엇이란 말인가? 군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 그 군주가 불의하던 그렇지 않던 자신이 섬길 군주를 배신하지 않는 것이 의일까? 아니면 군주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백성들이 편안한 삶을 살도록 무도한 왕을 충간을 올리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 의일까? 과연 절대적인 의의 기준은 없는 것일진데, 올바르지 않은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의로운 일이라 할 수 없고, 선왕의 유지에 따른 약속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보아도 그것이 절대적 의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절대 다수를 이루며 착취를 당하고 있던 백성들을 위하는 것이 의라면, 절대다수의 행복이 최고선이라 하던 어떤 서양철학자의 생각이 이와 같지 아니한가? 갑자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샌델 교수가 생각이 난다. 인간의 관점에서 본 절대적 의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미세한 모래가루와 같다. 동양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공자의 도도 결국은 제후들을 도와 백성을 인과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사상이지만, 결국은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입신양명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과 연결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반하여 노자와 장자는 자신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 모든 일이 참으로 헛된 일임을 지적하려는 것이리라.
기다림은 열국지에 나타난 또 다른 모습이다. 수많은 인물들이 입신양명이 기회를 얻기 위해 천하를 주유했지만, 아주 탁워했던 사람들마저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서 오랜 세월을 기다리며, 방황하고 방랑해야 했으니, 그 기다림이 또한 열국지에 나타난 또 하나의 갈래가 아닐까한다. 심지어 공자는 결국 당시에는 그 기다림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사후 여러세기후에야 그의 사상이 받아들여지게 되었으니, 제자백가중에 기다림의 최고봉을 이루는 인물이 아닐까한다.
무상함은 열국지에 숨어있는 또 다른 키워드이다. 열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그 가운데 아주 뛰어난 인물들, 그들의 학식, 그들의 통찰력, 그들의 기지와 재치, 그들의 인과 덕, 열국지에서 망라하는 수백년의 세월에 그 누가 버틸 수 있겠는가? 한결같이 모두 세월에 스러져 버리고 이름자만 남기고 가버렸으니, 인생무상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 강대한 제후들도, 그 대단한 인재들도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갔으니, 인생은 정말 무상한 것이로구나.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이 흘러가 버리고 후대에 역사로 남겠지. 아닌 역사도 아니라 그냥 잊혀져 버리겠지....인생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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