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의 스펙트럼을 갖는다.

부정의 극단에는 심한 욕설의 의미가 자리 잡고 있고

긍정의 극단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의 견딜 수 없는 애정의 느낌이 잔뜩 묻어 있다.

 

모든 새끼들은 귀엽다고 말하면

이것은 오류일까?

하지만 생명이 돋아 나는 봄 새끼들은 어쩔 수 없는 느낌을 자아낸다.

 

모든 깨달음은 문득 찰라의 순간에 오는 것처럼

오늘 따뜻한 공기속에 돋아 나는 새끼들을 보며 문득 어릴 때 내가 좋아하던

그 색깔을 떠 올린다.

 

아무 것도 모를 나이에 

매료되었던 그 연한 새로 돋아나는 잎의 색깔은

여전히 말로 표현하기에는 신비로운 이미지로 남아 있다.

 

 

 

 

 

 

 

 

주초 일기 예보에 

이 번 주부터 벚꽃이 개화한다고 해서,

매일 벚나무 아래를 걸을 때 마다 쳐다 본다.

가지 끝마다 조그맣던 멍울들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있다. 

기다리는 마음도 함께 부풀어 오른다.

 

 

 

 

꽃잎이 나오기 전에 꽃 받침이 먼저 나온다.  

꽃 잎은 속에서 꽃 받침을 밀어 내고

꽃 받침은 점점 부풀어 오르며

벚꽃 가지 사이에

연한 몽환적인 푸른빛 안개를 드리운다.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생명은 피어난다.

버려진 땅에도 들꽃은 피고...

 

 

 

 

 

 

광안리 바닷가 화단에도 민들레인가?

 

 

 

바닷가 백사장에도 봄 기운이

완연하다

 

 

 

 

조그만 찻집 앞에도

예쁜 꽃들이...

 

 

 

 

찻길 옆 보도에서도 ...

질기게 생명은 피어난다.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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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법칙에 위배되는 사건을 일컬어 기적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어디 그것만을 기적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를 경탄하게 하는 기적과 같은 일은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다. 어디에나 기적은 지천으로 깔려 있다. 기적은 베일에 감싸 있을 뿐, 아니 우리의 눈이 베일에 가려져 있을 뿐, 숨겨져 있지 않다. 눈에서 베일이 하나 하나 걷혀지면서 온 사방의 기적들이 하나씩 눈에 띈다. 해마다 돌아오는 봄도 그렇다.

 

해마다 겪는 봄이지만, 여태까지 봄이 시시각각 성장하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도대체 나에게 봄이란 어떤 의미일까? 눈으로 봄은 마음으로 봄에 결코 앞서지 않는다는 명제는 성립할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눈에는 기적은 결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야 더 정확할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생각에만 골몰해 마음을 나누어 줄 수 없는 사람의 눈에 비치는 풍경은 찰칵하는 한 순간 찍어내는 사진과 같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물의 풍경은 화가가 마음을 담아서 그려내는 그림과 같다. 사진을 찍는 행위에는 기억을 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는 기억이 매개체로서 역할을 해야한다. 화가는 대상의 이미지를 머리속으로 에 전사시킨다. 그리고 다시 머리속에서 화폭으로 그 이미지를 전사시킴으로 그림을 완성시킨다. 나무의 사진을 찍을 때는 잔가지 하나 하나를 다 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림으로 그릴 때는 잔가지 하나 하나를 일일이 화폭으로 옮겨야만 한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봄의 경이로운 모습을 본다는 것은 사진을 찍는 것 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닮았다고 할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 작년의 봄은 그 어느 봄과도 다른 봄이었다. 작년 봄 나는 봄을 노래하는 시를 통해서 시인들의 눈을 통해 봄을 보았다. 봄은 새로운 모습으로 나게게 다가왔다. 하지만 올해의 봄은 나 스스로 느끼는 봄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 예감이 틀리지 않기를...

 

입춘이 지난 후의 바람이란 매서운 칼바람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이 바람은 더는 살기등등한 서슬 푸른 검기에 목을 움추리게 하는 겨울 바람이 아니다. 칼의 고수가 칼을 든 손에 사정을 두어 목숨을 거두지 않고 다만 칼등으로 치는 듯한 인정이 느껴지는 바람? 입춘 지난 바람이란 그런 바람이라고 생각해 본다.

 

입춘 지나 봄비가 내리던 날. 부드러운 비는 겨울내내 말랐던 왕벚나무 가지위에 떨어지면서 물방울을 튕겨낸다. 가볍게 나무 가지와 새순을 두드린 봄비는 마른 가지속으로 젖어들어, 죽은 듯 잠들어 있던 속살은 생기를 회복한다. 겨울 내내 나무 가지에 쌓여던 겨울 먼지는 씻겨지고, 투명한 대기 속에 짙은 갈색빛이 망막을 찌른다. 여기 저기 잔 가지들은 마른 가지와는 다른 색감으로 새로이 뻗어 나오고, 그 가지 마다 꽃으로 피어날 새순들이 붉은 색조를 띠며 올록볼록 밀려나온다. 멀리서 보니 왕벚나무 가로수 숲의 메마른 가지들 위에 옅은 분홍빛 기운이 피어 올라 머물러 있다.  

 

보일 듯 말 듯한 신비한 분홍빛 향기... 왕벚나무는 분홍안개를 이고 있다. 분홍빛이 점점 짙어지고 분홍 꽃잎이 눈처럼 흩날라는 풍경을 기억속에서 꺼집어 내어본다.

은행나무 가로수 길로 들어서자 어느 듯 분홍빛 안개는 사라지고 연두빛 안개가 안구를 적신다. 앙상한 나무로 황량해 보이던 저 먼 산 중턱 숲에는 어린 연두빛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있다. 동양화의 안개 낀 산수 풍경의 아련한 모습으로 봄은 서서히 다가 오고 있다. 

 

왕벚나무 숲에는 분홍빛 정기가 떠돈다. 모든 게 착시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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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김훈/ 생각의 나무

 

<자전거 여행>

꽃피는 해안선- 여수 돌산도 향일암...

김훈은 겨우내 자전거를 타고 달려 달려 남해안에 도착한다. 겨울 장구를 벗어 버리고 가벼운 티셔츠로 꽃피는 해안선을 달리는 자전거, 책 속에서 봄 기운이 화락 달려든다. 어제는 봄 비 속에서 봄을 느꼈지만, 오늘은 책 속에서 봄을 느낀다. 김훈이 봄을 느끼는 방식은 정말 봄 스럽다. 김훈의 꽃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수 돌산도 해안선에 가득한 동백꽃 이야기. 그리고 매화, 산수유, 목련꽃 이야기. 이 꽃 이야기속에 봄을 대하는 김훈만의 독특한 시각이 숨어 있다. 

 

"돌산도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숲은 바닷바람에 수런거린다.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 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21쪽

 

 

 

"매화는 잎이 없는 마른 가지로 꽃을 피운다. 나무가 몸 속의 꽃을 밖으로 밀어내서, 꽃은 품어져 나오듯이 피어난다. 매화는 피어서 군집을 이룬다. 꽃핀 매화숲은 구름처럼 보인다. 이 꽃구름은 그 경계선이 흔들리는 봄의 대기 속에서 풀어져 있다. 그래서 매화의 구름은 혼곤하고 몽롱하다. 이것은 신기루다. 매화는 질 때, 곷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당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21쪽

 

<매화> 

 

<꽃잎이 벚꽃처럼 날릴 때>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끊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이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23쪽

 

 

 

"산수유가 사라지면 목련이 핀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다.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 올린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서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목련 꽃은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툭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목련은 살아 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마감한다.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 것이다." 24쪽

 

 

김훈은 봄을 이야기하면서 꽃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봄을 이야기할라 치면 꽃 이야기를 빼 놓지 않는다. 

봄은 생명의 태동이며, 만물의 시작으로 누구나에게나 봄은 시작의 의미로 다가 온다. 그러나 봄을 대하는 김훈의 생각은 다르다. 

김훈은 봄을 시작과 끝이 있는 존재로 파악한다. 그는 봄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꽃의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 생명의 부활을 찬미하는 이 봄에 말이다.

봄에 이런 사정없는 칼날을 들이댄 이가 또 있었을까?  하지만 봄도 가 버리고 만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김훈은 봄의 관능을 노래한다. 절대 고승의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던 감성의 선을 건드려, 사람의 냄새가 그리워 견딜 수 없게 하는 봄, 출가한 여승의 마음을 헤집어놓고 속세로 돌아서게 하는 봄의 관능을 이야기한다. 

 

13세기 고려 선종 불교의 6대 조사인 충지는 지눌 문중의 대선사였다. 충지는 초봄에 입적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평탄하구나. 너희들은 잘 있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 지팡이 하나로 삶을 마친 이 고승도 때때로 봄날의 적막을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인 지 산사의 어느 봄날 충지는 시 한 줄을 썼다.

아침 내내 오는 이 없어

귀촉도는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이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노래이다. 충지 대선사가 봄 산사의 마루에 앉아 햇빛 가득한 마당과 숲을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봄 기운이 숲에 넘실거리고, 나무들이 두런 두런 깨어나는 봄의 적막 속에, 아침 태양 빛은 마당에 가득했겠지. 봄을 준비하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분주하고, 발걸음도 논으로 밭으로 달려가지만, 반면 산사는 인적없이 조용했을 것이다. 귀촉도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인지 '귀촉 귀촉' 하고 자기의 이름을 불러대며 우는데, 아마도 선사 마음은 고향으로 달려 갔다보다. 도를 깨치는 선사도 한 순간 봄의 품에서 몽롱해졌나 보다.

 

 

설요는 7세기 신라의 젊은 여승이다. 아름다운 이 여승은 꽃피는 봄의 관능을 마냥 산사에 앉아서 견디기가 어려웠나 보다. 시 한 줄 써 놓고 절을 떠나 속세로 내려와 어느 시인의 첩이 되었다고 한다.

 

꽃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

아, 이 젊음을 어찌할거나

 

그 때 이 여승의 나이는 스물하나. "이 여승이 견딜 수 없었던 생의 충동, 위태롭고도 무질서한 생의 충동의 주범은 봄이다. 7세기의 봄이나 13세기의 봄이 다르지 않듯, 올 봄 또한 다르지 않다. 꽃들이 해마다 새롭게 피었다 지고, 지금은 지천으로 피어있다." 김훈도 생의 대책없는 충동을 숨기고 있는 것이리라. 어찌 설요나 충지, 김훈만 그러랴.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김훈은 동백꽃 피어있는 여수 돌산도 해변 도로를 따라 달려 금오산 향일암에 이른다. 높은 암벽위에 자리한 향일암에 오르려면 간신히 한 사람만 지날 수 있을 만큼 좁은 돌틈 사이를 수직으로 가파르게 올라가야 한다. 꽉 끼이는 틈을 통과해 암벽위에 도달한 순간 갑자기 남해가 끝도 없이 무한히 펼쳐진다. 수직적 고양감과 수평적 무한감으로 가득한 향일암에서 김훈은 봄 바다를 만끽한다. 

 

 

 

아침에 집을 나섰다. 드문 일이다. 밖에는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순간 봄을 생각한다. 이 비는 필시 봄비?

그 날 저녁 뉴스를 통해 입춘이라는 것을 알았다.

 

 

 

가덕도 앞 바다 매립지, 아직 입주가 덜 된 아파드 단지 하나만 덩그러니 매립지 사이에 놓여 있다.

주위는 황량한 불모지처럼 보이는 빈터에 누렇게 바랜 키 큰 잡풀만이 바람에 흔들거린다. 

무료하게 기다리며 보도를 천천히 걸으면서 봄 볕을 만끽하던 중 가로수에,

멀리서 보면 마치 새빨간 꽃처럼 보이는, 콩만한 빨간 열매가 포도처럼 나뭇잎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 

 

<먼나무>

 

<파라칸사스>

 

먼나무일까? 파라칸사스일까?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문득 왜 이제사 이것을 보게 되었을까? 여기서 한 참을 왔다 갔다 했는데?

이 길을 지나는 사람 중 몇이나 이 빨간 열매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을까?

도로 건너편 상가의 사람들은 이 예쁜 빨간 열매의 존재를 알고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사물이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존재도 때로는 보이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인가 보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보다.

이 순간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된 듯 하다. 

조르바는 항상 만물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본다. 매일 보는 사물들이 그에게는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 

어제의 것이 오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르바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범인의 눈으로 보면 조르바는 바보처럼 보인다. 오늘 이 순간 보는 것이 어제 본 것과 같은 것인데, 그 새 어제 본 것을 잊어버렸단 말인가? 바보...

그러나 정작 바보는 조르바가 아니라 매일을  똑 같은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바보일뿐이다.

난 오늘 새삼 조르바의 눈을 가지고 봄을 느끼고 바라보고 있다.

난 봄의 도래를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불모의 매립지에는 봄이 어떤 모습으로 오고 있을까? 급관심이 생겼다. 

다 시들어 죽어버리고 그 뼈대만 남아 군데 군데 흔들거리는 잡풀들이 무성한 땅으로 발을 내 딛뎠다. 

그 땅에서 나는 생명을 이어나가려는 고단한 몸짓을 발견했다. 

도둑놈 가시가 생명을 퍼뜨려 줄 매개체를 기다리며 가시를 세우고 있었다.

지난 가을 이후로 계속 발톱을 세우고 기다렸던 것일테지.

그러다 희생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말라 비틀어져 바로 아래 땅 바닥으로 떨어져 싹을 틔울 테지.

 

<도둑놈 가시>

 

허리를 낮추고 무릎을 굽혀 가만히 앉았다. 낮은 곳에 마른 강아지 풀이 보였다. 

땅에서 20cm 자란 조그만 새끼 강아지 풀이 바람에 파르르 떨린다.

가는 줄기는 약한 바람에 조차 견디지 못하여 휘어지려하나, 물기를 잃고 말라 붙은지라 부드럽게 허리를 휘지 못하고 다만 파르르 떨릴 뿐이었다. 

갓 태어난 새끼 강아지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가늘게 떠는 듯 하다.

 

<강아지 풀>

 

강아지 풀 아래 습기를 머금고 있는 땅 위에 진한 초록색 이끼들이 땅을 뒤덮고 있다.

살아 있는 생생한 초록빛이 햇빛에 반짝인다. 생명은 질기게도 그 목숨을 이어가고 있구나. 

그 생명의 경탄스러운 탄생의 때가 무르 익고 있다. 

 

<이끼>

 

도서관.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찾았다.

책들 사이로 언듯 고개 숙인 아가씨의 붉은 입술이 보인다.

봄이라서 그럴까?  

서가 앞에 서서 고개 숙여 책을 읽는 모습이 아름답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러브레터>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뽑아 들고 책상에 앉았다.

춤추는 듯 현란한 문장 속에 작가의 생각이 난해하게 펼쳐져 있다.

김훈의 매력적인 글에 경탄을 발하면서 한편으로는 행간을 읽어 내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편히 앉아는 있지만 머리속으로는 작가의 심중을 읽어내려고 고전분투하고 있다.

붉은 입술의 긴 생머리 아가씨가 왼쪽 옆 자리에 앉는다.  

나는 오른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비스듬히 책상에 기대어 책을 읽어 나가다 나른함에 조용히 눈을 감는다. 봄 기운때문일까? 

아! 편안하다. 나른한 행복감이 몸에 흐른다.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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