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델,에셔,바흐- 영원한 황금 노끈

 

제11장 두뇌와 사고

 

인공지능 연구는 인간의 사고과정에 대한 연구를 촉발시켰다. 10장에서는 인간의 두뇌와 사고의 과정을 유추해 보기로 한다.

 

형식체계에서 활자형 기호는 수와 연산 및 관계들로 사상되고, 활자형 기호의 연쇄체는 명제로 사상되는 동형관계가 성립하며, 이러한 동형관계로 부터 의미가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기호들과 현실 사이의 동형관계가 꼭두각시 인형과 그것을 조종하는 손 사이에 달려 있는 끈과 같이, 경직된 곧이 곧대로의 복제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간 사고의 덩어리적 구조

인간 사고의 특징은 내포적이다. 그것은 묘사들이 기존의 특정한 대상에 근거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다"는 의미이다. 사고의 내포성은 사고의 유연성과 관계있다. 그 유연성 덕분에 우리는 가상세계를 상상하거나 다양한 묘사들을 융합하고 하나의 묘사를 여러 부분으로 분할할 수 있다. 사고에서는 바로 이 세계에 대한 유연하고도 내포적인 표상이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체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두뇌의 생리적 체계는 바로 두뇌안의 "개미들" 즉 1000억개에 달하는 뉴런이라 불리는 신경세포와 관련이 있다. 하나의 뉴런에로의 입력의 복잡성- 심지어 한번에 20만개의 입력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 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뉴런은 아주 원초적인 방식-발포 또는 비발포-으로 반응한다. 이제 이런 원초적 구조위에 더 높은 구조가 있을 것이다. 즉 개념들을 가공할 수 있는 더 높은 층위의 구조가 존재하리란 것이 명백하다. 그러한 구조는 분명히 더 많은 수의 뉴런들로 구성된 더 큰 구조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개별 두뇌들 사이의 동형관계가 존재할까?

뇌는 해부학적으로 대뇌, 소뇌, 시상하부 등의 영역으로 구분될 수있다. 대뇌는 좌뇌,우뇌로 구분되며, 두뇌의 외피부분은 대뇌피질의 층으로 덮여있다. 이 대뇌피질의 양은 인간의 두뇌를 다른 동물의 두뇌와 구분시켜주는 특징이다.

 

사고가 두뇌에서 수행된다면... 그렇다면 두 개의 뇌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나의 두뇌는 여러분의 두뇌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두뇌 속에 위에 언급한 동일한 해부학적 분할 영역을 가진다. 두뇌들의 이러한 동일성은 어디까지일까? 신경의 층위까지? 

 

이점과 관련하여 지렁이의 뇌에 대한 언급이 흥미롭다. '한 특정한 지렁이의 특정한 개별적인 세포를 규명한다면 동일한 종의 다른 지렁이의 상응하는 동일한 세포를 확인할 수 있다' 결론은 지렁이들이 동형태의 두뇌를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직 하나의 지렁이만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사고의 위계질서가 높아지고 뉴런의 수가 증가할 수록 개체의 두뇌들이 그런 식으로 1:1로 사상될 수 있는 가능성은 급속히 줄어든다.

 

기억과 두뇌 사이의 연관관계가 존재하는가?

정신적인 경험들이 두뇌에 할당될 수 있다면, 지식이나 정신적인 삶의 다른 측면들이 두뇌 속의 특정한 장소나 물리적인 하위체계로 환원될 수 있을까?

신경학자 칼 레슐리는 미로속의 쥐 실험을 통해 어느 부분에 기억이 저장되는지를 밝히려 했다.  하지만 그는 대뇌피질의 어느 부분에서도 기억을 저장하는 특정한 부분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기억흔적을 찾아서"라는 논문에서 기억이란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결론을 내렸다. 이 실험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주는 듯 하다. 즉 대뇌피질의 어느 곳이나 동일한 기억저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반면에 1940년대 말 캐나다 신경외과 의사인 와일더 펜필드는 전극을 통해 두뇌에 약한 전류를 흘러 보내는 수술을 하면서 '일정한 뉴런들의 자극이 환자의 특정한 심상이나 감각을 창출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런 특정한 사건들을 촉발 시킬 수 있는 장소들의 수효는 극도로 적었으며 근본적으로는 단 하나의 뉴런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 발견은 아마도 국지적인 영역들이 특정한 기억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이 두 사이의 결론은? 기억이 국소적으로 더욱이 대뇌피질의 더욱 더 많은 장소에 분산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명은 기억이란 두뇌 전체에 분포된 동적인 과정들로부터 재구성될 수 있지만, 그 격발은 개별적인 국소적인 지점들로부터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두뇌 처리과정의 위치 할당에 대한 가장 흥미있고 중요한 업적중 몇 가지는 하버드 대학의 데이비드 허블과 토르스텐 위즐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들은 고양이 두뇌에 있는 시지각 경로를 사상해 내었다. 이 연구에 의하면 잘 정의된 신경경로들이 전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시각신호들은 최종적으로 시각피질로 진행하게 되는데, 아직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시각피질은 거시적인 척도의 하드웨어 조각이지만 전적으로 소프트웨어-즉 시각 정보의 처리-를 위해서 동원된다. 대상들의 [인식]에 관한한 시각피질에는 어떤 것도 자리잡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각피질에 있는 복잡세포와 초복잡세포들의 출력이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형태, 공간, 그림, 얼굴 등의 의식된 인식으로 변환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러한 점들은 의식의 존재 장소가 두뇌의 개략적인 해부학적 영역 분할에서 보다 차라리 미시적 분석에서 찾아지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마도 특정한 대상만을 인식하는 고유의 신경망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망에 집중될 "누두작용(깔대기작용)의 과정"이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바로 그러한 신경망이 우리 두뇌 속에 있는 "기호들" 즉 신호를 수신하여 의미로의 변환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든 개념에 대하여, 격발될 수 있는 매우 잘 정의된 모듈- 아주 적은 무리의 뉴런들로 구성된 모듈로서의 "신경복합체"-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두뇌안의 어디엔가 그런 모듈이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 증명되지 못한다. 아마도 모든 모듈의 많은 복제가 두뇌안에 산재해 있을 수도 있고, 아미면 모듈들이 물리적으로 중첩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

 

부류와 사례

두뇌안의 기호(신경복합체)들은 부류를 표상하는가 아니면 사례들을 표상하는가? 부류만을 표상하는 일정한 기호들이 있는가 또는 사례들만을 표상하는 기호들이 있는가? 아니면 개별적인 기호는 자기의 어느 부분이 활성화도었는가에 따라서 제각기 부류기호 또는 사례기호로서 쓰일 수 있는가? 또 한가지의 곤란한 질문은 복수라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개 세마리를 어떻게 상상할까? "개"에 대한 부류기호부터 시작해서 그로 부터 세개의 복제"를 얻어낼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은 개라는 부류기호를 판형으로 이용하는 가운데, 세 개의 새로운 사례기호를 만드는가? 아니면 우리는 셋과 개라는 기호를 결합하여 활성화하는가?

 

아마도 두뇌 속에서는 부류와 사례 사이의 차이를 창출하고 그렇게 해서 다양한 등급의 구체성을 가지는 기호들 및 기호의 조직을 허용하는 방법론의 위계질서가 있을 것이다.

 

두뇌에 존재하는 거대하고 꾸준히 증가하는 기호들을 보면서 우리는 결국 두뇌가 포화상태 즉 더 이상 새로운 기호를 위한 공간이 없는 지점에까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기호들이 중첩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상태가 비교적 빨리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기호들은 중첩되고 완전히 뒤엉켜 있기때문에 모든 뉴런들은 유일한 기호의 구성성분이 아니라, 아마도 수백 개의 기호의 기능적인 일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호들은 결코 공간상으로 자리매김될 수 없다. 모든 기호는 전체 두뇌와 동일시된다. 이렇듯 기호들은 서로 여러 겹으로 얽혀 있으며, 서로 그물을 짜는 것이다.

 

부류기호와 가상세계

우리는 부류들로 부터 사례들을 "추출하는"능력 덕분에 다양한 가상상황을 표상할 수 있으며, 현실세계에 충실하게 머물러야 할 필연성으로 부터 자신을 해방시켰다. 기호가 다른 기호들을 위한 판형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현실에 대한 정신의 일정한 독립성을 부여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부여하고 싶은 만큼 많은 개별 사항들을 가지고서 비현실적인 사건이 일어 날 수 있는 인공 우주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풍요로움을 만드는 부류기호 자체는 현실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절차적 지식과 정언적 지식

어떤 지식이 있을 때 그것을 프로그래머뿐만 아니라 프로그램도 "판독할" 수 있게 만든, 예를 들면 사전이나 연감에 실린 것처럼 저장되어 있는 지식을 정언적이라고 한다. 이것은 국소적으로 코드화되어서 분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서 절차적 지식은 사건이 아니라 프로그램으로서만 코드화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절차적 지식은 통상 조각으로 분산되어 있어, 그것을 호출하거나 고정시킬 수 없다. 이로부터 바로 그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방식은 어떤 국소적인 세부사항을 가지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른 말로 하자면, 순수한 절차적 지식이란 부수현상이다. 그렇다면 두뇌의 사고작용, 의식등은 두뇌의 어떤 부분에도 그 존재장소를 가지지 않는 절차적 성질을 지닌 부수현상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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